전기차 수요 둔화 현상과 화재 사고로 인한 공포 심리까지 더해지면서 올해는 하이브리드가 국내 자동차 업계를 견인했다. 불확실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국내 차 업계가 내세운 하이브리드로 전략이 먹혀들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와 기아, 르노코리아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앞세워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하이브리드 모델 판매량은 35만2037대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만대 가까이 성장한 수치다. 국내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꾸준히 성장세를 그리고 있다. 지난 2021년에 16만9478대였던 판매량은 2022년 19만3998대로 상승했다.
하이브리드의 가장 큰 수혜를 본 국내 완성차 제조사는 현대자동차와 기아다.
기아의 경우 쏘렌토가 가장 많이 팔린 모델에 이름을 올리며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쏘렌토는 8만5710대가 판매됐는데 이중 하이브리드 모델은 6만1079대로 집계되며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하이브리드 열풍을 증명했다.
현대차 싼타페 역시 하이브리드 모델이 강세를 보였다. 올해 11월까지 싼타페의 누적 판매량은 7만912대였으며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5만947대로 집계됐다.
현대차·기아의 하이브리드 판매 호조는 사상 처음으로 30만대 수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10월 누적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수출 규모는 21만1524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4.3% 급감하며 글로벌 위기에 따른 역성장을 기록했다.
하이브리드는 전기차의 감소세를 만회하며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현대차·기아의 하이브리드 누적 수출 규모는 33만4333대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이브리드 수출 규모가 30만대를 넘어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현대차·기아 하이브리드는 매년 수출 규모를 키워왔다. 지난 2021년에는 14만6093대를 수출했고 2022년과 2023년에는 각각 18만9144대, 22만3837대를 기록하며 매년 성장했다.
현대차에서 가장 높은 수출량을 기록한 모델은 투싼 하이브리드였다. 이 모델은 올해에만 7만7486대가 수출길에 올랐다. 소형 SUV 코나 하이브리드도 6만대 달성을 코앞에 두는 등 하이브리드 열풍에 가세했다. 기아의 경우 니로 하이브리드가 가장 판매량이 높았다. 니로 하이브리드는 5만8648대가 수출된 것으로 집계됐고 스포티지 하이브리드가 3만2422대로 뒤를 이었다.
하이브리드로 최대 실적을 맛본 현대차·기아는 한층 다양한 라인업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앞서 8월 열린 ‘2024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향후 10년간 120조5000억원을 투자해 전기차 성장세가 둔화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차종을 확대 및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이어 “기존 7종인 하이브리드 차종을 14개 차종으로 확대할 것이다”고 강조하며 하이브리드 전략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장 사장은 이미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최근 사전 계약을 실시한 2세대 팰리세이드가 그 증거다. 1.6리터(ℓ) 터보 가솔린 엔진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이어 2.5ℓ 터보 가솔린을 조합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탑재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신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한 팰리세이드는 기존 대비 향상된 판매량을 기록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랑 콜레오스로 승부수를 띄운 르노코리아 역시 하이브리드 호조에 올라타며 기분 좋은 한 해를 맞았다. 4년 만에 공개한 신차 르노 그랑 콜레오스 E-Tech 하이브리드가 화제를 모은 것. 실용성이 강점인 SUV,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등의 조합이 소비자의 구매 욕구에 불을 지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그랑 콜레오스는 등장과 동시에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출시 3개월 만에 누적 등록대수 1만2518대를 기록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나온 KG 모빌리티의 액티언을 크게 앞질렀다. 그것도 모자라 중형 SUV 시장의 터줏대감인 현대차 싼타페, 기아 쏘렌토를 바짝 추격했다. 말 그대로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르노코리아는 그랑 콜레오스에 힘입어 11월 기준 내수 7391대, 수출 7879대 등 총 1만5180대를 판매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내수는 289.4%, 수출은 197.5% 성장한 수치다.
역시나 판매량을 이끈 건 하이브리드였다. 11월 그랑 콜레오스의 모델별 판매량을 살펴보면 E-Tech 하이브리드가 전체의 92%를 차지했고 10월 말 출시한 2.0 터보 가솔린은 500대로 집계됐다. 9월 9일 인도를 시작한 그랑 콜레오스는 11월 말까지 영업일 기준 54일 만에 누적 1만5912대를 기록했다. 이중 하이브리드의 비중은 96.3%인 1만5323대다.
수입차 업계도 하이브리드 특수를 누리기 위해 판매 전략을 수정했다.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모델을 속속 선보인 것.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수입 하이브리드 판매대수는 11만9905대로 전체 판매량 중 50.01%의 비중을 차지했다. 전기차처럼 충전이 가능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더하면 판매대수는 13만대에 육박한다.
업계 관계자는 “2024년은 전기차 수요 둔화와 안전성 문제가 불거짐에 따라 효율성과 각종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 모델의 강세가 두드러졌다”며 “하이브리드의 인기는 내년에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KG 모빌리티의 경우 하이브리드 모델의 부재로 신차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며 “향후 토레스를 시작으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구축할 계획을 밝혔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덕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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