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수요 감소, 글로벌 경제 위기, 중국 완성차 제조사의 공세 등 불확실한 환경이 지속됐다. 글로벌 최대 자동차 제조사들은 업계 전체를 강타한 변수에 발목이 잡히며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완성차업계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인도법인 기업공개(IPO), 일본 토요타자동차와 제너럴모터스(GM) 등과의 협력, 수출 증대, 하이브리드 등 고수익 모델 판매 집중 등을 바탕으로 호실적을 이끌었다냈다고 평가한다. 현대차그룹은 역대급 실적에 이어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내년에도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금융정보업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는 24일 현대차와 기아의 올해 매출액과 영업이익 추정치를 발표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추정치는 각각 279조9102억원, 28조1926억원이다. 이는 기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지난해 대비 매출액 6.6%, 영업이익 5.5% 증가한 실적이다.
이 같은 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수출과 하이브리드 등 고수익 모델 판매에 집중한 결과로 분석된다. 실제로 현대차.기아의 올해 11월까지 누적 수출 비중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 늘어난 83%로 나타났다.
늘어난 실적은 글로벌 신용등급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현대차·기아는 메르세데스-벤츠, 토요타, 혼다에 이어 지난 8월 S&P(Standard & Poor), 무디스, 피치 등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에서 모두 A등급을 획득해 탄탄한 기업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 인도법인 IPO를 진행한 것이 신용등급을 상향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차그룹은 인도시장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일찌감치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인도를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 삼고 현지 시장 공략은 물론 글로벌 시장 확대에 속도를 냈다. 특히 현대차 인도법인 IPO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며 지난 10월 22일 사상 최대 규모로 신규 상장했다. IPO 추진 당시 청약 증거금만 7조5600억원에 달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끌었다.
현대차 인도법인 상장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 인도법인은 인도 진출 이후 인도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며 “인도가 곧 미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도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R&D 역량을 확장, 25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전개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현대차 인도법인은 최고 수준의 거버넌스 표준을 지속적으로 수용하고 이사회를 통해 신중하고 투명하게 시의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협력과 동반성장의 정신에 기반해 현지화에 대한 헌신도 지속하겠다”며 “미래 기술의 선구자가 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이곳 인도에서 계속될 것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불확실한 정세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와 협력하는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 9월에는 미국 완성차 제조사 GM과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이번 협약으로 승용차·상용차, 내연기관, 전기·수소기술 등을 공동 개발하고 생산한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전기차와 수소차 경쟁이 과열될 상황을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경쟁 관계를 협력 관계로 바꾸면서 정책 변화, 기술 개발 비용, 시설 구축 등에서도 이점이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올해 현대차그룹은 수소 산업에도 집중했다. 지난 1월 수소연료전지 브랜드인 ‘HTOW’를 수소 밸류체인 사업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전기차와 동시에 수소에너지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 중 최초로 대형수소전기트럭 엑시언트(XCIENT)를 양산하기 시작했으며 유럽과 미국 등 각국에 실제 투입되며 물류 환경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엑시언트 21대를 투입하고 운송 업무를 시작하기도 했다. 또 메타플랜트 내 이동식 수소 충전소도 설치할 계획도 밝혔다.
올해 단행된 현대차그룹의 파격적인 인사에도 시선이 쏠렸다. 정 회장은 현대차 창사 57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인 CEO를 자리에 앉히는 등 전례 없는 인사를 결정했다. 이는 기존에도 밝힌 바 있던 국적·나이·성별을 떠나 ‘성과 중심’의 인사 기조를 지킨 것이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 글로벌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중남미법인장인 호세 무뇨스(José Muñoz)를 한국으로 불러들였고 현대차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앉혔다. 또 성 킴(Sung Kim) 고문역도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그룹 싱크탱크 수장 자리를 맡겼다.
두 해외 인재를 요직에 투입한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정 회장의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라 불확실해진 글로벌 시장 상황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차후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의 부회장 승진 역시 철저히 성과 중심에 따른 인사다.
정 회장은 윤여철 부회장 퇴임 후 공백이었던 부회장 자리를 장 신임 부회장에게 맡겼다. 장 신임 부회장은 지난 2020년 현대차 사장 취임 후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등 불확실한 정세 속에서도 전동화 전환에 속도를 내며 현대차를 글로벌 ‘톱3’ 자리에 올려놓았다.
정 회장은 장 신임 부회장에게 미래성장동력인 수소 사업까지 맡기면서 향후 사업 확장을 위해 더 큰 힘을 실어줬다. 이를 통해 장 신임 부회장은 상품기획부터 공급망 관리, 제조.품질 등에 이르는 밸류 체인 전반을 관할하면서 완성차 사업 전반의 운영 최적화와 사업 시너지 확보, 미래 경쟁력 확보에 집중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도 괄목할 만한 실적을 기록하며 한 단계 성장했다. 또 파격적인 인사 단행을 통해 여러 중장기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 성장 기반 다지기 작업에 돌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인도 시장 및 글로벌 시장 공략, 수소 사업 확장, 전동화 전환, 사장단 인사를 바탕으로 올해의 성장세를 내년에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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