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안타까워하며 무사 구조를 기원하던 TV 속 사연 깊은 멍냥이들. 구조 과정이 공개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면 어떤 반려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호자와 어떤 만남을 갖게 됐는지,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 입양을 가지 못하고 아직 보호소에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새 가족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 줄 수는 없을지..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당연히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
한낮의 보호소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수십 마리의 개들이 짖는 소리가 귀를 찔렀습니다. 점심밥을 먹은 뒤 망중한을 즐길 법한 시간에 불청객이 찾아온 탓인지, 개들은 한껏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한 마리는 유독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낯선 이가 들어오면 강하게 짖어서 쫓아내려고 하든, 관심을 끌기 위해 달라붙어 애교라도 보여줄 법한데, 이 개는 그럴 기색은 전혀 없이 구석에서 고개만 내밀며 동태만 살폈습니다.
“우리가 들어갈 때도 저래요.”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동물자유연대 강아지 보호소 ‘온독’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은 그 강아지를 보며 뒷조사 전담팀에게 귀띔했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구석 깊이 박혀 몸을 숨기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간식이라도 주면 좀 나아질까 싶어 건네봤지만, 간식만 재빠르게 먹고는 다시 구석에 몸을 구겼습니다.
“네이비, 간식 먹자.” 활동가가 불러도 역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낯선 사람이 들어와서 더 긴장하는 걸까 싶어서 카메라를 놓고 자리를 비워보기도 했지만, 네이비는 웬만해서는 몸을 잘 움직이지 않는 친구였습니다. 가까이 다가오면 몸을 숨길 뿐, 공격성을 드러내며 접근을 막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쫄보’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이 친구는 과거에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 걸까요?
철거촌에서 연명하던 떠돌이견 가족 구조기
지난 2022년 3월, 강원 원주시의 한 재개발구역. 철거가 예정돼 사람이 모두 떠나간 자리에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작은 생명의 흔적들이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CCTV를 통해 작은 강아지들 몇 마리가 종종거리며 걸어 다니는 모습이 포착되더니, 성견 두어 마리가 아무도 없는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도 발견됐습니다.
당시 구조팀이 현장을 살폈을 때, 개들은 온기도 없는 빈 집에 버려진 가재도구에 몸을 숨기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밖에 나올 때도 조심스럽게 서로를 확인하며 돌아다녔죠. 새끼들은 계속 거처를 옮기며 지내고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까닭에 구조팀은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새끼들이 발견된 장소를 가보니 새끼들이 어디 갔는지 사라졌더라고요.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부모견을 먼저 포획할 기회가 생겼고, 그다음 새끼들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송지성,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장
인적이 드문 곳에서의 동물 구조란 수색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목격자도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은 CCTV도 철거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근 지역을 전부 수색해 동물의 생활 흔적을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고, 이 작업은 아직 철거되지 않은 건물 구석구석을 수색해야 구조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수색 과정에서 인기척을 느끼는 동물이 놀라 도망간다면, 수색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또 다른 장애물도 있습니다. 바로 재개발 조합, 혹은 시행사와의 갈등입니다. 특히 철거 일정이 정해져 있을수록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집니다. 동물을 구조하려는 사람들과 최대한 빨리 철거를 진행해야 재개발 진행이 가능한 시행사의 입장 차이가 있는 겁니다. 송 팀장은 “이번 사례 역시 시행사 측의 협조를 특별히 받을 순 없었고, 그래서 더 빠른 구조가 필요했다”며 “다른 현장의 경우 철거가 임박한 상황이라 수차례 설득한 끝에 구조를 진행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물론 어떤 현장에서는 직접 동물단체를 찾아와 ‘고양이를 구조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곳은 올무를 설치하거나 마취총으로 직접 동물을 잡으려는 곳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부모견이 포획된 뒤, 부모를 찾아온 새끼 강아지들도 하나둘씩 포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마리만 유독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구조대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동물보호소에 가 있는 건 아닐까?’ 유기동물 구조 앱을 찾아보자 그 직감은 적중했습니다. 흰색 강아지 두 마리가 원주시 동물보호소에 새로 들어온 겁니다. 그렇게 형제들과 함께 보호소로 간 강아지가 바로 네이비였습니다.
“조금 늦게 뜨는 무지개지만.. 그만큼 행복하기를”
보호소에서 재회한 7남매들은 새로운 이름을 받았습니다. 바로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7남매가 된 겁니다. 이 중 ‘레드’를 제외한 6마리는 모두 파보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동물병원에서 제때 대처한 덕분에 모두 무사히 목숨을 건지고 가족들을 만나러 떠날 수 있었다고 하네요.
다행히 이 강아지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입양 문의도 꽤 있는 편이었고, 그렇게 속속 새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몇몇 친구들은 해외 입양에 성공해 캐나다 토론토, 밴쿠버 등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쁜 소식들 사이에서 안타까운 사실은 네이비만 홀로 보호소에 남아 있다는 겁니다.
네이비도 다른 형제들처럼 해외입양을 한차례 추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심한 성격 탓에 해외입양은 끝내 무산되었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것부터 시작해 입양 과정이 모두 네이비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겁니다.
그렇다고 네이비가 홀로 갇혀서 교감조차 없이 지내는 건 아닙니다. 강아지들끼리 있을 때는 아직 2세밖에 안 된 만큼 활발한 성격을 보여줍니다. 낯선 사람에게 지레 겁먹고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게 문제일 뿐, 보호소에서 지내며 사람과 접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이미 대부분 해결한 상태라고 합니다. 사람만 마음을 먹는다면, 충분히 가정생활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마음을 먹는다’는 건 가벼운 생각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네이비를 위해 상당 부분 생활도 바꿀 생각도 해야 한다는 뜻이죠. 동물자유연대 김민희 활동가는 “네이비에게는 집에서 상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성격이 맞는 다른 강아지도 함께 지낼 수 있는 집이라면 적응에 도움이 더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른 아이들도 보호소에서는 다소 소심해 보였던 친구였는데, 막상 나가고 보니 해맑게 변한 친구도 있었다”며 네이비도 환경에 따라 다른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다면, 네이비를 가족으로 맞아들일 사람의 마음가짐은 어때야 할까요?
일단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성급하게 다가가기보다 네이비가 사람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서 조금씩 다가왔을 때 교감을 시도하면 곧 사이좋은 가족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김민희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활동가
아직, 무지개는 완전히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조금 늦게 떠오르는 남색 강아지가 가족을 찾을 때 7남매가 한꺼번에 재회하는 아름다운 광경도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네이비의 가족이 하루빨리 나타나주기를 기대해봅니다.
동그람이 정진욱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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