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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의 모든 공식 깼다” 민희진의 도발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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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모습. ⓒ연합뉴스 

프로보커터(Provocateur)는 ‘도발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도발로 확보한 주목을 밑천으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유튜브는 프로보커터의 무대다. 영향력 있는 방송사도 유튜브 생중계에선 대부분 장면을 여과 없이 전달한다. 뉴스의 상당수를 유튜브에서 소비하는 한국사회에서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이 같은 플랫폼의 특징을 최대치로 활용했다. 편집된 방송 화면, 정제된 기사 문장으로는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을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민 대표는 25일 기자회견이라는 미디어 이벤트를 기자들과의 신경전으로 시작했다. 플래시와 셔터 소리가 불편하다며 기자회견을 시작하지 않았다. 돌연 “사진을 찍지 않을게요”라고 선언하더니 촬영감독 등 취재진을 향해 “저를 인간으로 생각 안 하시는 것 같다. 다 내가 죽기를 바라나”라고 쏘아붙였다. 셔터 소리에 피의자처럼 위축당할 수 있는 상황을 바꾸고, 언론을 상대로 기세를 잡기 위한 대응으로 보였다. 그의 작정한 태도는 초반부터 시청자를 몰입시켰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은 120분 분량의 유튜브 방송과 같았다. 상스러운 말이 거리낌 없이 등장했다. △“내가 경영권 찬탈을 뭘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어 이 XX들” △“개저씨들이 나 하나 죽이겠다고” △“나 쫓겨나도 상관없어. 솔직하게 다 얘기해서 차라리 시원해. 내가 나쁜 X이지만 않으면 돼요” △“제가 XX이라서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에요” △“저 3일 동안 미친X 된 거 아시죠?” △“저 개 싸이코 됐었잖아요” △“제 성격 보니까 저 X 장난 아니다 이런 생각 들잖아요? 근데 저 마음 약해요. 마음 약하니까 XX 이렇게 열받은 거지”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어 XXXX들이 너무 많아 가지고…죄송해요 근데 저도 좀 스트레스를 풀어야죠” △“들어올 거면 나한테 맞다이로 들어와 어? 비겁하게 뒤에서 XX떨지 말고” △“아니 무슨 개소리야” △“내가 개 같이 일했는데”…. 울다가 정색하고, 그러다 웃는 표정은 변화무쌍했다. 반말 속 “X밥” 같은 표현까지 나왔다. 동석한 변호사들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기존 기자회견에서도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경우는 많았지만 민희진 대표처럼 거침없이 욕설과 비속어를 내뱉는 경우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이날 기자회견 현장에 있었던 이한길 JTBC 문화팀장은 26일 JTBC ‘뉴스가혁’에 출연해 “제가 못해도 1000번 정도의 기자회견을 가본 것 같은데 기자회견의 모든 공식을 깼다. 기자회견장을 뒤집어 놓았다”고 평가했다. 이렇듯 종잡을 수 없는 언행 속에 ‘르세라핌’, ‘여자친구’, ‘피프티피프티’가 나왔고 뉴진스가 서사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시청자들은 ‘유퀴즈’ 무삭제 버전을 보는 느낌이었다. 날 것의 기자회견이 계속되자 시청자들은 방시혁과 하이브를 향한 민 대표의 도발에 어느 정도 호응했다. 여기에 민 대표 기자회견 직전 하이브가 배포한 ‘민희진 주술 경영’ 보도자료는 역효과를 일으키며 민 대표 동정 여론에 영향을 줬다. 

한겨레는 “민 대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방식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전한 뒤 “(기자회견 이후) 애초 ‘경영권 탈취’ 의혹으로 민 대표에게 비판적이었던 여론이 변화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하이브와 어도어 간의 진실 공방과 별개로 민 대표가 노골적으로 드러낸 울분이 직장 생활의 고충을 토로한 것으로 비쳐지면서다”라고 풀이했다. 같은 날 한국일보는 “기자회견 전까지 중립을 지키던 뉴진스 팬들은 민 대표의 입장을 들은 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서 우호적인 글을 쏟아냈다”고 보도했다. 

▲뉴진스. ⓒ어도어
▲뉴진스. ⓒ어도어

언론 대응에서는 처음부터 민희진 대표보다 하이브가 조직적으로 앞서나갈 수밖에 없었다. 연예․문화 담당 기자들도 하이브 쪽 관계자와 스킨십이 더 많았다. 민 대표 입장에선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기존의 기자회견과는 다른 콘셉트의 기자회견이 필요했고 결론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하이브를 떠나고 싶은 건가 남고 싶은 건가?”라는 어느 기자 질문에 “생각이 없다니까요? 그거 얘기하면 또 시비 거실 거잖아요”라고 쏘아붙이듯 답한 것이 상징적 장면이었다. 이는 기자들을 불신하는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효과도 거뒀다. 이런 가운데 디스패치 보도 스타일로 익숙한 ‘카톡 공개’도 빼놓지 않았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보낸 “에스파 밟으실 수 있죠? ㅎ” 같은 카톡을 공개하며 가십거리를 듬뿍 던졌다. 엇갈린 평가 속, 그가 도발에 성공한 건 확실해 보인다. 

방송사로서는 유튜브 생중계의 위험성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유튜브 생중계의 경우 방송심의 대상이 아니고, 통신 심의로는 제재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기자회견에 나서는 당사자는 지상파 3사를 포함해 주요 방송사 생중계에 올라탄 것 같은 효과를 거두게 된다. 플랫폼의 우위가 고정형TV에서 스마트폰 유튜브로 넘어온 결과다. 이날 기자회견은 방송사들에게 숙제를 남겼다. 민희진 대표의 ‘퍼포먼스’를 모방한 ‘선 넘는’ 기자회견이 지상파 뉴스 유튜브 채널에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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