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주기] 영화는 어떻게 참사를 ‘기록’하고 ‘기억’해왔나
10년이 지났지만 기억의 힘은 세다.
10년 전 오늘, 차디찬 바다 한가운데서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올해로 10주기를 맞았다. 비극적인 참사를 잊지 않으려는 목소리와 움직임은 10년간 이어졌다. 영화도 예외일 순 없었다.
세월호 참사를 직접적으로 그리거나, 은유적으로 다루면서 그날의 비극을 애도하고 다시는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 영화들이 10년간 꾸준히 제작됐다. 극영화부터 다큐멘터리까지, 참사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동시에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 ‘생일’… 떠난 아이들을 함께 기억하는, 위로와 연대
전도연과 설경구가 주연해 2019년 개봉한 영화 ‘생일'(제작 파인하우스필름)은 세월호 참사를 전면에 다룬 극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2014년 4월 이후 남겨진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 길에 나섰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아들 수호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사는 순남(전도연) 가족의 이야기다.
깊은 슬픔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남 가족은 매년 돌아오는 아들의 생일에 더 큰 슬픔에 빠진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닫은 순남과 남편 정일(설경구)은 수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통해 용기를 내기 시작한다. 영화는 순남 가족을 통해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고 이해하고, 연대하는 힘으로 나아간다.
연출을 맡은 이종언 감독은 참사 이듬해인 2015년 안산에서 유가족을 위로하는 ‘치유공간’에서 활동했다.
개봉 당시 감독은 “아이의 생일이 다가오면 엄마들이 많이 힘들어했는데 그 아이를 기억하고 가까이 지냈더 사람들이 아이의 생일을 함께 보내는 모임을 했다”고 밝혔다. 영화 ‘생일’은 그렇게 시작됐고, 애도와 추모를 넘어 함께 나눈 소중한 시간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이야기로 확장했다.
● ‘악질경찰’… 범죄 장르 안에 숨은 세월호 이야기
겉으론 비리 형사를 둘러싼 범죄극처럼 보이지만, 결말에 이르러 책임감 있는 어른의 존재를 묻는 영화도 있다.
2019년 개봉한 ‘악질경찰'(감독 이정범·제작 청년필름)은 비리 경찰 조필호(고 이선균)가 창고 폭발사고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거대한 권력자들의 음모에 휘말린 비리경찰의 이야기로 보인 영화는 사건의 목격자인 소녀 미나(전소닝)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끝내 미나가 세월호 참사로 친구들을 잃은 상처를 지닌 인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를 둘러싼 무책임한 어른들의 세상을 비추면서 목소리를 낸다.
‘악질경찰’은 ‘생일’과 달리 시사회로 이야기 전체를 공개하기 전까지 세월호와 관련한 영화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덕분에 영화 공개 직후 작품이 숨긴 마지막 이야기에 적잖이 놀란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 ‘너와 나’… 두 소녀의 사랑과 이별 통해 참사 그린 수작
지난해 개봉한 배우 조현철의 연출작 ‘너와 나'(제작 필름영)는 세월호 참사를 은유적으로 담아낸 수작이다.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근간에 두고 두 소녀의 사랑과 가슴 아픈 이별을 그리고 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오후, 이상한 꿈에서 깬 세미(박혜수)는 부상으로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단짝 하은(김시은)에게 향한다. 오늘 꼭 해야할 말이 있어서다.
영화는 두 소녀가 보내는 꿈결 같은 하루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지만 직접적인 표현이나 묘사 대신, 가슴에 남은 상처를 위로하고 애도하는 수려한 연출로 지난해 개봉 당시 장기 상영을 통해 관객의 호평도 이끌어냈다.
조현철 감독은 2015년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에서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면서 남긴 “꿈에라도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감독은 지난해 영화를 내놓으면서 “‘너와 나’를 찍기로 결심한 2016년만 해도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이야기’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떠올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알아채지 못하더라”고 말했다.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이 잊히지 않도록 감독은 작품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집 밖에 나가기 못했던 엄마들
다큐멘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기록해왔다. 2014년 공개한 ‘다이빙벨’부터 지난 4월3일 개봉한 ‘바람의 세월’까지 매년 다양한 방식으로 참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품은 이어졌다.
지난해 개봉한 ‘장기자랑'(감독 이소현·제작 영화사연필)도 그 중 한편이다. 10년 전 겪은 비극으로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서기 어려웠던 7명의 엄마들이 용기를 내고 뜻을 모아 시작한 연극으로 무대에 오르는 이야기를 담았다.
‘장기자랑’은 참사를 기록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먼저 떠난 아이들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자 나선 엄마들의 도전, 그 과정에서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 ‘눈꺼풀’과 ‘파미르’… 오멸 감독의 깊은 애도
제주 4·3 사건을 다룬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를 통해 한국영화 최초로 선댄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오멸 감독은 그만의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애도해왔다. 2015년 완성해 2018년 개봉한 ‘눈꺼풀’과 지난해 장편으로 완성한 ‘파미르’를 통해서다.
‘눈꺼풀’은 죽은 자들이 마지막으로 들르는 고립된 섬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작품이다. 섬에는 먼 길을 떠나기 전, 이승에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전해주는 노인이 산다. 바다에 폭풍이 몰아친 날, 그 섬으로 선생님과 어린 학생들이 찾아온다.
이후 오멸 감독은 영화 ‘파미르’로 세월호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파미르 고원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여정을 다룬 영화다. 당초 단편으로 완성했다가 장편으로 확장해, 현재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는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먼저 선보였다. 당시 영화제는 ‘파미르’에 대해 “치유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치열한 노력으로 생을 살아가는 남겨진 그들의 이야기”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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