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댓글부대’가 지난달 27일 개봉했다. 영화에서 묘사한 사건들은 실제 사건을 연상케한다. 영화는 곳곳에 사실과 허구를 규정하기 어려운 현실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의도적인 혼란을 만든다. 영화 ‘댓글부대’,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사실들을 정리했다.
*드라마 줄거리와 관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만전의 정규직 댓글부대 실제로 있나?
영화에는 만전이라는 굴지의 대기업에 150명 규모의 정규직 댓글 전담조직이 있다는 증언을 토대로 사회부 기자 임상진(손석구)이 실체 파악에 나서는 모습이 그려진다.
영화 속 만전은 여러 측면에서 삼성을 연상케하는데 실제 삼성에 댓글 여론조작을 하는 정규직 조직이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2008년 CBS에 출연해 “삼성 내부에는 댓글을 다는 팀이 있다”며 “정규직”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 조직은 삼성에 관한 기사에 대응하는 역할을 했는데 150명 규모로 영화와 동일하다.
2012년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대만업체의 스마트폰을 비방하는 댓글로 썼다가 대만 정부로부터 벌금을 부과받으면서 삼성 내 댓글 전담조직이 있다는 의혹이 다시 제기됐다.
이 외에도 댓글조작에 가담하는 등장인물들이 담배회사로부터 일감을 받아 인터넷에 담배 간접광고를 하는데 이 역시 담배 간접광고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현실적인 회사원으로서 기자
영화는 기자 직업 묘사에 공을 들였다. 실제 신문 기자들의 업무 방식을 고스란히 담았고 간부급 기자들(데스크)이 지면을 짜기 위한 회의를 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특종 기사가 지면에서 1, 4, 5면으로 이어지고 새벽에 온라인판이 먼저 올라가는 등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임상진 기자의 캐릭터도 현실적이다. 기존 미디어가 보여준 정의로운 기자 또는 악질적인 ‘기레기’의 모습이 아닌 그 중간 지점의 현실적인 회사원 기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안국진 감독은 실제 기자들을 취재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언론사들이 공동으로 실시한 인터뷰에서 “기자라는 직업도 회사원인데 늘 정의와 싸우는 사람처럼 그려진다. 실제 기자들을 만나보니 그 부분이 판타지, 가짜라고 느낀다고 하더라. 그래서 개인적인 고충과 책임감 안에서 갈등을 다루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손석구 배우는 지난달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기자분들이 어떤 식으로 취재를 하고 우리가 기사를 읽게 되는지 과정을 배워가는 게 재밌었다”며 “(상진이) 나름의 정의감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정의감이 10명의 사람이 봤을 때 다 옳은 정의감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일일이 자문 받아 만든 ‘밈’
영화에는 실제 커뮤니티를 떠오르게 하는 커뮤니티가 다수 등장하고 이용자들 특유의 표현과 밈을 고스란히 담았다. 감독 스스로 커뮤니티를 연구했고 연출부 직원들 중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에게 일일이 자문을 받은 결과물이다. 다만 너무 불쾌한 밈을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인터넷 커뮤니티를 잘 안쓰는 직원들에게도 검토를 받아 균형을 잡았다.
사용 허락을 받기 위해 유명한 밈을 만든 이를 직접 찾아다니기도 했다. 안국진 감독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밈의 저작권까지 찾느라 너무 많은 시간의 공을 들였다”고 했다.
임상진도 속고 관객도 속았다?
영화는 댓글부대의 실체를 폭로하며 사회정의 구현을 하는 대신에 댓글부대의 존재가 ‘사실’인지 ‘허구’인지 혼란을 느끼게 한다. 임상진이 취재한 ‘댓글부대’ 이야기가 허구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인물을 만나는데, 그 역시 또다른 허위제보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지금까지 관객이 사실로 믿은 취재 내용조차 허구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감독은 이를 ‘의도된 혼란’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접하는 인터넷 속 정보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아니면 이 두가지가 뒤섞인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을 부각하는 열린 결말인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완전한 허구보다 허구와 사실이 뒤섞였을 때 사람들은 더욱 잘 속아 넘어간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극 중에선 댓글조작을 하는 방식으로 사실과 허구 뒤섞기를 설명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임상진도 속고 관객도 속은 것일 수 있다.
결말 이후엔 다시 영화 첫 장면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도입부에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사진을 띄우며 이 집회를 주도한 닉네임 앙마라는 누리꾼이 한국 최초의 촛불집회인 PC통신 유료화 반대 집회 제안자와 동일인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이야기는 실화다’라고 한다. 2016년 촛불집회가 일어난 사실과 앙마라는 누리꾼의 존재는 현실과 같지만 실제 앙마가 제안한 집회는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추모집회였고 다른 집회와는 관련성이 없다.
임상진이 쓴 글의 조회수 의미는
임상진은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며 영화는 끝난다. 이때 조회수가 0에서 시작해 숫자가 폭증하는 모습이 나온다. 조회수는 특정 숫자에서 멈췄다가 다시 급증하기를 반복한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의 회차별 참가자 수다. 안국진 감독은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대중은 결국 답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럽지만 그럼에도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때문”
영화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는 화두를 계속 강조한다. 안국진 감독은 제작발표회 자리에서 “영화에 나온 게 대부분 실화에 가깝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마지막에 나온 건 블랙코미디라고 생각했다”며 “허구라고 한 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해외 선진국에선 찾기 힘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감독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의식하면서도 논쟁을 피하기보다는 비꼰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피하려 한다면서도 만전의 로고 디자인은 삼성이 떠오른다. ‘만전’은 ‘삼성’ 또는 삼성전자의 줄임말인 ‘삼전’과 모음이 같다. 극 중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촉구 시위를 하는 등장인물을 배치하는 등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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