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스포츠 제주, 박연준 기자) “야구 실력, 팀 성적보다 중요한 가치는 아이들의 행복 아닐까요?”
야구선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감수해야할 조건이 있다. 개인의 행복이 아닌 ‘꿈을 나아가는 길의 일부’로 과대 포장된 지도자의 강압적이고 거친 행동, 또 웃음보다 아픔의 표정을 지어야하는 어려움을 이겨내야한다.
이는 향후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닌 지금 당장의 성과를 나타내기 위한 잘못된 지도 방식에서 비롯됐다. 폭력, 부당한 상황도 견뎌내야하는 아이들의 아픔이다. 여전히 수많은 아마야구, 고교야구 선수들은 이를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한 인내의 시간’으로 둔갑한 생각을 한다. 폭력과 부당함이 꿈을 향한 정당함이 된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선수들이 받고 있는 격이다.
여기, 대부분 학교가 중요시하는 당장의 개인 성적, 팀 성적보다 ‘선수의 행복’ 즉, 야구장에서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곳이 있다. 바로 야구 불모지, 제주의 유일한 고교야구팀인 제주고등학교다.
2002년에 창단한 제주고등학교는 kt 위즈와 삼성 라이온즈에서 수많은 스타 선수를 발굴한 박재현 감독이 사령탑을 맡고 있다. 이어 투수코치는 ‘쌍방울 레전드’로 꼽히는 조규제 코치가 파트를 맡고 있다.
제주고등학교는 박재현 감독 부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특히 지난 2021년 제주고 선수 등록 수는 고작 13면에 불과했다. 선수 수급을 두고 한때 해체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이를 박재현 감독이 노력을 통해 변화를 일궈냈다. 특히 당시 ‘제주 출신’으로만 선수 수급을 해야한다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박재현 감독은 자신의 따듯한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채워왔다.
박재현 감독의 따듯한 리더십의 포커스는 ‘선수의 행복’이었다. 지난 14일 제주고등학교 야구장에서 만난 박 감독은 “팀 성적, 야구 실력이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아이들이 즐기는 야구가 우선이 아니라면, 그건 내가 추구하는 야구와 다르다”며 “선수들이 야구장에서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고는 야구장 시설만 놓고 봤을때 야구 불모지로 불릴 수 없는 곳이었다. 특히 어느 서울의 명문 고교야구부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좋은 인프라를 갖췄다. 또 시간 활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부분의 연습에서 ‘자동화 기계’를 사용하고 있었다. 배팅 훈련, 티 배팅 등 타자 훈련에서 따로 배팅볼을 던지는 선수가 필요 없을뿐더러, 로테이션 방식으로 훈련을 하다보니, 하루 4시간 훈련 짧은 시간에도 선수들이 질 좋은 훈련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특히 자동화 기계들은 박재현 감독이 손수 나서서 후원 기부를 받은 것이다. 그만큼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진심이다. 그는 “우리가 어릴 적에 야구했을 때는 특히 1, 2학년 선수들의 경우, 선배들 배팅볼만 던져주다가 하루가 끝났다. 이를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학년 선수도 똑같은 내 제자들이고, 똑같이 경기 출전 기회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며 “모두 다같이 훈련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모색하다 ‘자동화 훈련 기계’를 아는 후배에게 후원 받았다. 프로에서 했던 지도 방식을 그대로 제주고등학교에 가져온 것이나 마찬가지” 라고 설명했다.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이면 돼” 이런 감독이 있습니다
제주고는 육지에 있는 학교가 아닌, 교명처럼 제주에 있는 고등학교다. 그래서 매주 주말리그나 전국대회 출전을 위해선 비행길에 올라야하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선수가 적은 만큼(현재 22명) 학교 전학을 오면 출전 정지를 받는 ‘전학 패널티(30명 이상 인원시, 전학 선수를 받으면 출전 정지 징계가 6개월) ‘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만큼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출전 기회가 폭 넓은 곳이다. 또 그중 가장 큰 장점은 지도자의 따듯한 마음이 담겨있는 학교다.
선수 부족 문제로 해체 위기를 맞이했을 당시에도 박재현 감독은 외부 선수 모집 공고를 하지 않았고, 선수 추천 역시 아무렇게나 받지 않았다. 오직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 하나로 위기였던 제주고를 일으켜세웠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기존 우리 학교에 계신 학부모님들께서 타 학교 부모님들께 ‘전학 질문’을 받으신다고 한다. 그때마다 우리 학교에 대한 과대 평가가 아닌 확실한 장단점을 말씀 드려달라고 당부드리고 있다. 그럼에도 좋은 선수들이 오는 이유는 ‘우리가 지도자이기 때문에’라기 보다 아이들이 야구장에서 웃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들께서도 인지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다수 서울의 명문 야구부는 총원이 무려 70명에 달하는 곳도 존재한다. 많은 선수 수로 인해 저학년때부터 경기 출전을 하는 것은 고학년 선수들이 있기에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 결국 1학년때는 주구장창 선배들에게 배팅볼만 던져주다, 3학년 진학 이후가 되어서야 자신의 야구를 할 수 있는 것이 통상적인 고교야구 시스템이 됐다.
그 시스템 속에서는 선수들이 ‘내가 야구선수인가, 배팅볼 투수인가’를 헷갈리는 것은 물론, 이는 자연스레 선수들에게 ‘번아웃 증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또한 일부 학교는 당장의 성적을 만들기 위해 여전히 선수들에게 욕설과 폭력을 난무하기도 한다.
제주고는 이런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성적 우선이 아닌 선수들의 ‘즐거운 성장, 긍정적 변화’를 지도 포커스로 잡아뒀다. 박 감독은 “아이들이 아파야 할 것은 연습을 통해 이루어진 통증뿐이어야 한다. 지도자의 욕설, 폭력, 그리고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기회 부족으로 인한 아픔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이 행복하게 야구하는 것이 결국 가장 좋은 변화를 일궈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변화가 지금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아이들이 웃음 짓는 모습을 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수들에게 선수이기전,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것을 주문한 제주고등학교다. 박 감독은 이날 아침에도 오전 7시에 출근하여 선수들의 교복 착용 상태, 학교 지각 등을 체크했다. 박 감독은 “선수이기전에 학생으로서 본분을 지키는 것이 아이들의 인성 교육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며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고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선수가 좋은 선수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차두리 현 국가대표팀 코치의 명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앞서 차두리 코치는 FC 서울 유스 감독 시절 선수들에게 “실수해도 된다, 그저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고 당부한 바 있다. 해당 멘트는 SNS와 유튜브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축구계에서 차두리 코치는 ‘따듯한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박 감독은 “차 코치님의 해당 멘트가 정말 공감된다. 선수들이 노력하는 모습,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감독은 “올해로 제주고 부임 4년차를 맞이했다. 남들은 거기서 어떻게 지도자 생활을 계속하느냐고들 물어본다. 하지만 선수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나 역시 선수들이 순수하게 야구만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언제나 보람과 재미를 느끼고 있다”며 “앞으로도 선수들이 야구장에서 웃을 수 있도록 감독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피력했다.
한편 제주고등학교는 오늘(16일)부터 본격적으로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반기에 돌입하여 황금사자기 전국대회 출전을 두고 열전을 펼친다.
사진=MHN스포츠 제주, 박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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