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 없는 수상, 다양성 퇴보는 아쉬워
‘오펜하이머’가 오스카 최고·최다의 영예를 가져갔다.
‘오펜하이머’의 수상에 대해 이변 없는 수상이었다고 동의하면서도 다양성 부족을 지적하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들린다.
‘오펜하이머’는 11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LA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편집상, 촬영상, 음악상 7개 부문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주인공으로 한 전기 영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미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오펜하이머를 통해 천재 과학자의 위대한 업적과 동시에 그를 괴롭힌 윤리적 딜레마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펜하이머’의 작품상 수상은 일찍이 점쳐진 바. 이변은 없었고 받을 만한 작품이 받았다는 게 평론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3시간의 긴 러닝타임에도 긴장감과 몰입감을 유지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과, 인물들의 양면적인 부분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 등 ‘오펜하이머’의 작품상 수상에 이견이 없었다.
다만, 이러한 영화적 성취와 더불어 전쟁 위협이 커져가는 국제 정세가 ‘오펜하이머’의 작품상 수상에 힘을 실어 줬다는 분석이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실험 성공 이후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는 오펜하이머를 통해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한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시대적 요구에 귀기울였던 지금까지의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경향에 비춰 보면 전쟁과 맞물린 국제 정세 상황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 정의를 얘기하는 미국을 보여주는 영화인 ‘오펜하이머’가 작품상을 수상하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결과였다”고 말했다.
타이틀롤로 오펜하이머를 연기한 배우 킬리언 머피도 남우주연상 수상 이후”우리는 원폭을 만든 사람의 영화를 만들었고 좋든 싫든 그의 세계에 살고 있다”며 “이 상을 이 세상의 모든 평화주의자들에게 바친다”고 소감으로 반전 메시지를 전했다.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 등의 정치적 배경도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오펜하이머’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퍼스트에 부합하는 영화”라며 미국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아메리칸 퍼스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부각하는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 것을 의미심장하다고 봤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도 “‘오펜하이머’에서 다루는 ‘맨해튼 프로젝트’는 국민적인 자긍심을 가져다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고, 그 핵심에 있었던 인물을 다룬 영화에 작품상을 준다는 건 영화적 성취 외의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한편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다양성에서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우조연상 수상자 데이바이 조이 랜돌프(‘바튼 아카데미’)를 제외하곤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주요 부문의 상이 모두 백인에게 돌아갔다. 량쯔충 주연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시안계 영화인이 대거 수상했던 지난해와 대조적 결과다.
전찬일 평론가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백인 남성들의 잔치’ 오명을 벗기 위해 최근 수상 기준에 다양성 기준을 높여왔는데 올해 시상식은 그러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오펜하이머’가 상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올해는 다른 훌륭한 작품들도 많았는데 한 작품에 상을 몰아준 선택이 아쉽다”고 다양성 문제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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