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뒷이야기] 드레스 터진 엠마 스톤, ‘빨간 단추’ 의미까지
올해도 어김없이 뜨거웠다.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시선이 향한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다양한 이야기를 남기고 막을 내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7관왕을 차지하면서 ‘올해의 주인공’이 됐고, 엠마 스톤은 ‘가여운 것들’을 통해 7년 만에 또 한번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특히 올해는 아내와 가족을 향해 애틋한 마음을 표하는 수상자들의 소감이 줄을 이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각각 감독상과 남우조연상 수상 직후 아내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신뢰를 표했고, 어머니와 레드카펫을 밟은 브래들리 쿠퍼는 시상식 내내 옆에 앉은 어머니를 챙기는 모습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두고 두고 거론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이야기들을 모았다.
● 라이언 고슬링 무대 보다가 드레스 터진 엠마 스톤
엠마 스톤이 ‘가여운 것들’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순간, 그는 무대에 올라오면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자신의 드레스 뒷 부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내 수상 소감을 위해 마이크 앞에 선 엠마 스톤은 또 다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드레스가 뜯어졌다”며 “켄(영화 ‘바비’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맡은 역할)의 공연을 볼 때 너무 신이 났다. 분명 그때 찢어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카메라가 비춘 그의 드레스 뒷 부분은 이음새가 약간 튿어진 상태였다. 이에 엠마 스톤은 수상 소감을 하기 전 드레스를 꽉 부여 잡고 마이크 앞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두 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의 영광스러운 순간은 흔들림 없이 즐겼다.
드레스를 튿어지게 만든 원인 제공자인 라이언 고슬링의 사실 엠마 스톤과 인연이 깊다. 둘은 2016년 영화 ‘라라랜드’의 주연을 맡아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다. 그 작품으로 엠마 스톤은 이듬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처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날 라이언 고슬링은 핑크색 의상을 입고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바비’의 주제곡 ‘아임 저스트 켄'(I’m Just Ken)을 직접 불렀다.
● 황금종려상 받은 ‘개’ 등장…’추락의 해부’ 주인공
올해 시상식에는 ‘특별한 개’가 객석에 앉았다. 각본상을 수상한 ‘추락의 해부’에서 안내견 스눕 역을 소화한 개 메시가 시상식에 참여했다.
메시는 지난해 열린 칸 국제영화제에서 개에게 수여하는 황금종려상을 받은 주인공이다.
칸 국제영화제는 매년 상영작에 출연한 개들을 대상으로 가장 뛰어난 연기를 펼친 주인공에게 ‘팜도그상'(Palm Dog Award)을 수여하고 있다. ‘팜도그’는 황금종려상을 뜻하는 단어 ‘팜 도르'(Palme d’Or)에서 따온 명칭. ‘추락의 해부’는 지난해 황금종려상과 팜도그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메시의 활약이 빛나는 ‘추락의 해부’는 이날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차지했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이번 수상이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추락의 해부’는 남편의 추락사로 한순간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유명 작가 산드라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비롯해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후보에 올랐다.
● 레드카펫 장식한 ‘빨간 단추’의 정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찾은 배우들 가운데 가슴에 빨간 단추를 단 이들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여운 것들’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마크 러팔로부터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마허샬리 알리, 가수 빌리 아이리시까지 빨간 단추를 달았다.
이들이 선택한 빨간 단추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중지를 촉구하는 예술가들의 요구를 상징한다. 휴전을 촉구하는 예술가들의 모임인 ‘아티스트 포 시스파이어’는 지난해 10월 시작해 극단으로 치닫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멈춰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아카데미 시상식에 빨간 단추를 달고 참석해 ‘반전’의 목소리를 높였다.
배우 라미 유세프 역시 빨간 단추를 달고 레드카펫에 오른 뒤 “우리는 모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의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한다”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지속적 정의와 평화를 원한다”고 밝혔다.
● 근육질 존 시나, 알몸 등장에 화들짝
프로레슬러 출신의 배우 존 시나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민망한’ 장면을 연출했다. 수상자가 적힌 종이로 주요 부위만 가린 채 알몸으로 시상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발걸음으로 무대를 오간 그를 바라보는 객석은 순간 술렁였고, 이를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전 세계 영화 팬들도 깜짝 놀랐다.
이날 의상상 시상자로 나선 존 시나는 1974년 제46회 아카데미 시상식 도중 나체의 남성이 무대 위로 난입한 사건을 패러디하는 차원에서 ‘알몸 연출’을 불사했다.
근육질 몸매를 드러낸 존 시나는 시상 도중 숨겨 놓은 의상을 입었고, “영화에서 의상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도 말했다. 이날 의상상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이 차지했다.
● ‘날카로운’ 수상 소감… 2024년 현재를 돌아보게 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사회의 부조리와 역사의 퇴행, 정치적인 탄압 등에 맞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왔다. 불의의 굴하지 않는 창작자들의 목소리는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국제 영화상을 수상한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은 “우리는 지금 무고한 사람들을 분쟁으로 이끈 점령, 홀로코스트를 반대하는 사람들로 이 자리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벌이는 전쟁과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언급하면서 “10월7일의 희생자(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일)나, 현재 진행되는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에 우리가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라고 되묻기도 했다.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의 엠스티슬라브 체로느프 감독은 “이 상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지 않은 역사와 바꿀 수만 있다면 바꾸고 싶다”고 바랐다.
이 작품은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됐을 때 포위당한 우크라이나의 도시, 마리우폴에 갇힌 이들이 기록한 전쟁의 참상에 관한 이야기다.
감독은 객석에 앉은 영화인들을 향해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며 “당신들은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사를 바르게 기록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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