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배우 전효성이 지난 1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국인이라면 벅차오를 수 밖에 없는 영화”라는
글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게재했습니다.
공개된 사진 속 그녀는 영화 ‘노량’ 시사회에 참여한 모습을 보이며
환한 미소와 여전한 미모로 시선을 사로잡았는데요.
그러나 환한 미소 때문에 밝아 보이기만 한 그녀도
영향력 있는 연예인이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찍 철이 들어 주변 관계자들로부터 ‘성숙하다’ 라는 평을 듣는 전효성은
어떤 성장기를 거쳐왔을까요?
전효성은 청주시에서 태어나 부모님과 언니, 동생을 두고 있었으나 부모님이 세 자매를 양육해야 하다 보니 그녀의 집안 사정은 좋지 못했습니다.
전효성은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부모님들을 도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새벽 신문 배달을 시작했습니다.
힘들 법도 한데 어린 전효성은 새벽 공기를 맞으며 신문 배달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죠.
불우했던 환경 속에서 전효성을 즐겁게 만들었던 것은 춤과 노래였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서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가수를 꿈꾸기 시작했죠. 중학생이 됐을 땐 댄스 동아리 리더를 맡아 축제 때마다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전효성은 가수가 되기 위한 도화선에 불을 붙였습니다.
허나 부모님은 그녀가 가수가 되는 걸 반대하고 지원을 거부했는데요. 하지만 서울에서 열리는 오디션을 가기 위해 알바를 하며 차비를 버는 전효성의 모습을 보고 결국 허락을 하게 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전효성은 오디션에 참가했지만 2차에서 탈락하고 말았죠.
그러나 전효성을 눈여겨본 한 관계자의 권유로 그녀는 엠넷 <배틀신화> 공개 오디션에 참가했고 참가자 200명 중 12명 안에 들면서 우승까지 하게 됐습니다.
우승 후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된 전효성은 데뷔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3인조 걸그룹으로 데뷔할 예정이었지만 중간에 기획 취소를 당했는데요.
그 뒤에 5인조 걸그룹 ‘오소녀’의 연습생으로 1년간 대기했지만 소속사 재정 문제로 또 데뷔가 무산됐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효성의 아버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 당시 전효성은 우울증과 조울증을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전효성은 오랜 좌절을 딛고 TS엔터테인먼트에서 다시 연습생 생활을 거쳐 2009년 ‘시크릿’으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반지하 숙소 생활을 하며 전효성은 그룹과 자신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그리고 1년 뒤 시크릿은 ‘Magic’이라는 히트곡을 내놓으며 대한민국 대표 아이돌 반열에 올랐습니다.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순 없었던 것일까요? 2013년 전효성은 말실수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라디오에서 “시크릿은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는 발언을 하면서 ‘민주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극우 성향 커뮤니티의 회원이 아니냐는 오해를 샀습니다.
발 빠르게 사과문을 올렸지만 세간의 반응은 싸늘했죠. 전효성은 자신의 무지에 대해 반성하기 위해 한국사 검정 3급을 취득했습니다.
이에 대중들은 “민주화 논란 직후 언급한 게 아니라, 4년 후에 공개했으니 언플이 아니라 진심이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이돌이었던 전효성은 현재 다양한 활동을 통해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습니다. 방송 활동뿐만 배우로서의 커리어도 쌓아가고 있죠.
최근 전효성은 2년 여만에 다시 연기 활동을 재개하였는데요. 넷플릭스 ‘셀러브리티’에 출연하여 주인공 ‘서아리’의 학창시절 친구이자 떠오르는 SNS 인플루언서 ‘오민혜’ 역으로 등장했습니다.
극 중 전효성은 겉은 화려한 선망의 대상이지만 과거의 열등감을 지닌 캐릭터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선을 유연하게 표현해내며 생동감 넘치는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 활동을 통해 더 다양한 모습의 전효성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활동 중단한 아이돌 안타까운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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