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만드는 사람을 메이커라고 한다. 발명가, 공예가, 기술자 등이 손쉬워진 기술을 응용해서 폭넓은 만들기 활동을 하는 활동이다. 기술의 공유와 3D프린팅 등의 발전으로, 메이커 운동은 정보와 지식을 교류하는 문화로 발전하고 있다.
– ‘마크 해치’ 메이커 허브인 ‘테크숍’ 공동설립자
리빙랩과 메이커 운동의 결합을 통한 지역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탐색한 ‘제31차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 포럼’이 ‘메이커운동×리빙랩’이란 주제로, 2월 1일, 충남대학교 융합교육혁신센터 컨퍼런스홀에서 온오프라인으로 개최됐다.
첫 발제를 맡은 유만선 관장(서울시립과학관)은 ‘한국 메이커 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란 제목으로 과거 공공메이커 스페이스 운영 경험을 공유하고 리빙랩 활동에서 메이커 문화가 갖는 의미를 소개했다.
① 메이커운동, 망치질에서 3D 프린터 까지…한국 메이커 문화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메이커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내는 사람메이커스페이스
다양한 기술을 바탕으로 개인이나 그룹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메이커운동
소비자에서 생산자로의 변화에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운동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한국의 메이커 문화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크게 발전해 왔다. 2007년 이후 공직에 몸담고 있던 유만선 관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가 메이커 운동을 처음 시작했다고 회상한다. 당시 국정 목표는 일자리 마련을 중심으로 ‘창조 경제’를 내세웠으며, 국정 과제 24번으로는 과학기술 혁신 역량 강화가 있었다. 이러한 배경하에 과학관에 설치된 ‘무한상상실’이라는 공공 메이크 스페이스 운영이 정부의 지침으로 제시되었다.
한국 메이커 문화의 첫 산실…국립과천과학관 ‘무한상상실’
국립과천과학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첫 번째 무한상상실 설립 업무를 맡게 되었다. 2013년 8월경, 메이커라는 용어가 시민들에게 생소한 시절, 과기정통부는 메이커 운동을 어떻게 브랜딩하고 시민들에게 이해시킬지 고민했다. 당시에는 메이커라는 단어가 대기업의 유명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메이커는 흔한 용어가 되었다. 과학관 뒤편에 모델하우스를 지으며 메이커 문화를 확산시켰다. 이전 이명박 정부에서는 녹색 성장이 주요 테마였으며, 재생에너지만으로 돌아가는 모델하우스를 과천과학관에 짓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의 메이커 문화는 정부의 지원과 다양한 정책들을 통해 점차 발전해 왔으며, 공공 및 사적 영역에서의 창의적인 활동을 장려하는 중요한 움직임으로 자리 잡았다. 메이커 운동의 초기 고민과 도전을 넘어서 현재는 다양한 분야에서 메이커 문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문화는 계속해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무한상상실 v1.0…아이디어를 현실로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시작된 무한상상실 1.0은 이전 정부 시절 사용되던 모델하우스를 리모델링해 최소한의 예산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창작 공간이다. 큐브를 잡고 있는 사람 손 모양을 디자인 요소로 채택하여, ‘상상토의실’과 ‘상상공작실’이라는 두 가지 주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상상토의실에서는 아이데이션과 디자인, 제작법에 대한 교육과 토론이 이루어지며, 상상공작실은 디지털 창작소 형태로 필요한 디지털 제조 장비들을 갖추고 운영되었다.
주요 프로그램은 아이디어를 내고 디자인하고 제작법을 설정하는 과정을 통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특히 인근 발명 특화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작업하며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예를 들어, 여학생이 제안한 아이디어는 많은 콘센트를 꼽을 때 서로 충돌하여 꼽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기존의 콘센트를 변형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의와 실험을 진행했다.
무한상상실 1.0 운영 초기, 좋은 아이디어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당시 학교에서 발명반을 운영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서울 세운상가 같은 곳에서는 발명품 제작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도 발달해 있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무한상상실은 창작과 발명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이후 더 발전된 형태로 진화해 나갈 기반을 마련했다.
무한상상실 v1.0 문제점과 해결책
무한상상실 1.0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시작됐지만, 운영 초기 여러 문제점에 직면했다. 학교에서 받은 예산으로 아이데이션을 마친 후, 기술자들에게 제작을 맡기는 문화가 있었다. 발명 클럽에서 학생들이 아이데이션 활동을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제작 과정에 대한 교육 후에는 제작을 기대했던 참가자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제작을 직접 하고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는 점을 알리자, 수요가 감소했다.
정부에서 시작한 무한상상실 사업에 대해 성과를 원하는 목소리가 컸고, 참가자들을 데려왔지만, 프로젝트에 대한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디어 발상 후 공유해야 한다는 메이커 운동의 정신과 달리, 일부는 특허를 내고 공유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문제들은 제작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큰 걸림돌이 되었다.
해결책으로, 무한상상실은 창작과 네트워킹의 공간으로서 기능을 확장했다. 프리랜서 건축가, 예술대학교 교수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서로 명함을 주고받고 네트워킹을 통해 협력의 기회를 모색했다. ‘페차쿠차’라는 이벤트를 통해 참가자들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짧게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페차쿠차란 일본어로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소리를 의미한다. 영국 출신 건축가들이 동료들과 작품을 공유하고자 도쿄에서 시작한 프리젠테이션 기법이기도 하다.
무한상상실의 확장으로 인해 더 큰 예산이 배정되고, 참여한 메이커들은 필요한 장비와 재료들을 리스트업하여 제공했다. 이러한 접근은 메이크 스페이스가 단순히 서비스를 소비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무한상상실은 창작, 실패, 협력을 통해 학습하고 성장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무한상상실 v2.0…창작과 네트워킹의 공간으로
국립과천과학관 무한상상실 버전 2.0은 미국의 창작소 흥행을 벤치마킹하여 500평 규모의 대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기본 안전 및 사용법 교육을 받은 후 방문객들이 장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고, 서울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 인근에 위치해 접근성을 높였다. 특별 전시장이었던 공간을 전환해 창작 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실과 장비를 갖추었다.
창작자들은 한쪽 입구로 들어와 활동하고, 관람객들은 다른 쪽 입구로 들어와 통창을 통해 창작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창작 활동 자체가 전시의 일부가 되는 새로운 컨셉을 도입했다. 이러한 구조는 처음에는 역작용을 우려했으나, 관람객과 창작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디지털 제조 장비뿐만 아니라 클래식한 장비, 영상실, 음악 부스 등도 마련해 다양한 창작 활동을 지원했다. 샌프란시스코 익스플로라토리움(exploratoriumstore)의 팅거링 스튜디오(Tinkering Studio)를 벤치마킹하여 어린이 창작 공간도 설립, 운영하며 메이크 스페이스의 범위를 확장했다.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됐으며, 참여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활동과 변화를 기록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테이블 제작부터 복잡한 장치 개발까지, 창작자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메이킹 스킬이 돋보였다. 특히, 자산취득비가 없음에도 재료비를 활용해 테이블을 직접 제작하는 등의 유연한 해결책이 도입됐다.
무한상상실 2.0은 창의력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운영 중 일부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문을 닫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했던 많은 메이커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남겼다.
무한상상실 2.0 주목할 만한 사례
#1. 3D 프린터로 큰 스케일의 작품 제작 시도
창작자들은 2미터 길이의 대형 3D 프린터를 만들어 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필라멘트 방식 대신 알갱이 형태의 재료를 사용해 더 큰 직경의 재료를 펌프로 밀어내며 쌓아 올리는 방식을 실험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성공했으나, 풀 스케일로 완성하기는 어려웠던 도전적인 시도였다.
#2. 파손된 3D 프린터를 활용한 창의적 해결책
한 창작자는 망가진 3D 프린터를 받아, 필라멘트를 짜내는 부분을 개조해 김장 비닐을 용접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 장치는 큰 홍수 이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인플레터블 스트럭처(공기를 주입해 빠르게 설치할 수 있는 구조물) 제작의 기초 연구에 활용될 목적이었다.
#3. 아이디어 공유와 네트워킹
창작자들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짧게 발표하고, 이를 통해 다른 참가자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의 기회를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명함이 오가며, 실질적인 협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4. 특별한 가구 제작
예산의 제약으로 인해 테이블 구매가 어려웠을 때, 한 참가자가 직접 목재를 구해 테이블을 제작했다. 이러한 자체 제작 가구는 무한상상실의 창의적이고 자립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사례로, 참가자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5.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문제 해결
엔지니어 부부는 자신의 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수 있도록 돕는 로봇을 제작했다. 이 로봇은 아이가 다가가면 도망가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아이가 걸음마 연습을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러한 사례들은 무한상상실 2.0이 단순한 창작 공간을 넘어서, 창작자들이 자기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서로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중심지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무한상상실 v2.0 문제점과 해결책
무한상상실 2.0이 일반인들을 창작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직접 만들어보는 즐거움을 전달하는 데 있어 일정 부분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기술회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이 공공 메이크 스페이스를 이용할 때 겪는 어려움이나, 주저함은 더욱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이들이 자신의 이름이나 소속 없이 활동하길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독일과 같이 기술을 자유롭게 나누고 즐기는 문화와 비교해 볼 때 한국의 상황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또한, 혁신과 창의성이 주로 청년이나 어린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소공인들이나 전통적인 기술을 가진 이들에게도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고 이를 활용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대문 창신동의 수다공방처럼 오랫동안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해온 이들에게 레이저 커터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소개했을 때, 보여준 긍정적인 반응은 이러한 접근의 가치를 입증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무한상상실은 단순히 기술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세대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기술을 통해 창의력을 발휘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메이크 스페이스와 관련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사업이 축소되거나 사장되는 현상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메이커 운동x리빙랩의 교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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