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유럽과 영국 등 주요 탄소배출권 시장이 올해 침체기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에 두 시장 편입 비중이 높은 탄소배출권 ETF도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배출권 시장도 배출권 수요 부족 현상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측돼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 기후대응자금 마련에도 적신호가 들어왔다.
12일(현지시각)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은 ‘2023년 탄소 시장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세계 배출권 시장이 침체를 겪을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유럽연합 배출권 거래제도(EU-ETS)의 침체가 클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는 “유럽에서 경기 침체가 지속돼 유럽연합 탄소 배출권 거래제도에서 배출권을 구매하는 많은 산업 분야의 수요가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유럽연합 배출권 시장은 2023년 세계 배출권 시장에서 87%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파울라 반 라닝햄 런던증권거래소그룹 탄소시장 연구 대표는 영국의 친환경 비즈니스 전문 매체인 비즈니스 그린을 통해 “경제 성장률, 국제 정세, 천연가스 수요 등을 고려하면 올해도 침체기를 벗어나길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출권 가격 하락은 유럽연합과 영국 탄소 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유럽연합 배출권 가격은 지난해 2월 100유로를 달성한 뒤 연말에는 60유로 선까지 떨어졌다.
SK증권에 따르면 13일 기준 유럽연합 배출권은 1톤당 56.9유로(약 8만1천 원)에 거래됐다. 지난 1월과 비교해 13.6% 감소했다.
가장 큰 원인은 천연가스 가격 정상화와 유럽 경기 침체에 있었다.
권경락 플랜1.5 활동가는 “이렇게 된 이유는 배출권 가격이 글로벌 가스 가격과 연동돼 움직이기 때문”이라며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유럽 지역 가스 가격이 급등했었다가 지금은 천연가스 가격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럽에서 경기 침체가 지속된다면 산업계 쪽에서 배출권 수요도 줄어들게 돼 향후 단기간 내에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세계 탄소 시장에서 4%를 차지하는 영국 배출권 거래제도(UK-ETS) 배출권 시장의 시장 가치도 2022년과 비교해 지난해 22%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영국 배출권 가격은 13일 기준 1톤당 34.5파운드(약 5만7천 원)로 지난 1월과 비교해 4.6% 감소했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은 “지난해 리시 수낙 정부가 친환경 정책을 일부분 철회한 것과 수요 대비 지나치게 높은 배출권 공급이 가격을 떨어뜨렸다”며 “향후 영국 정부가 전면적으로 관련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 한 영국 배출권 가격은 더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실상 세계 탄소 배출권 시장 가치에서 91%를 차지하는 시장들이 부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 주요 배출권 시장의 부진은 배출권에 투자하는 ETF에도 영향을 준다. 국내 투자자들이 투자할 수 있는 대표적 상품으로는 SOL 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ICE(합)와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ICE(H) 등이 있는데 13일 기준으로 가격은 각각 10946원, 8620원이다.
다만 기후와 연관된 탄소배출권 특성상 예상치 못한 변수로 변동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국내 전문가의 의견도 있었다.
정연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즈니스포스트의 이메일 질의에 “유럽연합 경기가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높아 유럽연합 배출권 가격 약세가 단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은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 연구원은 “다만 유럽연합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반등하거나 기후와 관련된 예상치 못한 변수 발생으로 배출권 수요가 다시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장기적 관점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조가 이어진다는 가정 하에 배출권 수요는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본다”며 “대부분의 국가 또는 지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배출권 시장에서는 더욱 강한 움직임이 중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유럽, 영국과 달리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배출권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반 라닝햄 대표는 “지난해 탄소 배출권 가격 하락에서 예외는 미국과 중국이었다”며 “특히 중국은 기존 배출권 기한이 만료됨에 따라 급격한 수요 증가가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미국 주요 배출권 거래 가격은 RGGI 기준 19달러, CCA는 35달러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SK증권에 따르면 13일 기준 각각 17.0달러(약 2만2천 원), 43.3달러(약 5만7천 원)를 기록했다.
미국은 유럽이나 한국과 달리 지역별로 온실가스 이니셔티브가 있어 RGGI(Regional Greenhouse Gas Initiative)는 미국 동부 지역에서, CCA(California Carbon Allowance)는 캘리포니아에서 배출권으로 거래된다.
중국 배출권도 지난해 10월 기준 80위안(약 1만5천 원)을 넘어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국내 탄소 배출권(K-ETS) 시장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침체기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제 시장과 상관 없이 국내 배출권 수요 부진 때문이다.
권 활동가는 “현재 배출권 시장은 각 국가나 지역 간 투자 및 상품 연계를 허용하고 있지 않아 국내 ETS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며 “다만 국내 배출권 가격은 정부의 느슨한 배출권 할당으로 실질적 수요가 없어 1톤당 1만 원 이하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규제 강화가 없다면 이 같은 가격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박현신 에코아이 팀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개인적으로는 해외 배출권 가격이 당분간 하락한 상태에서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국내 배출권도 올해 안으로는 큰 상승 요인이 없는 상태”라며 “당분간은 하락하거나 가격을 유지하는 침체기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13일 기준 한국 배출권 시장정보 플랫폼에 따르면 한국 배출권(KAU23) 종가는 9100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날 가격 16050원과 비교해 43.3% 감소했다.
탄소배출권 가격 하락은 각국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전환에도 영향을 준다. 각국 정부가 탄소배출권을 통해 자국의 기후대응이나 저탄소기술 투자, 저개발국 기후대응 지원에 쓰고 있다.
한국 역시 탄소배출권 매각 수입으로 기후대응기금 일부를 조달하고 있다. 기후대응기금이란 정부가 탄소중립 실천과 녹색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설립한 기금으로 산업 분야 친환경 전환과 기업 온실가스 감축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권 활동가는 “한국은 기후대응기금 수입의 약 25~30%를 배출권 유상 할당 경매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배출권 가격이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올해 기후대응기금 세수 부족은 어느 정도 명백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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