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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오스카, 최고의 순간 활짝 웃던 이선균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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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배우 이선균이 세상을 떠났다. 믿고 싶지 않았다. 커리어 정점에 오르던 현장에서 함께하며 취재해온 기자로서 안타깝고, 기사를 쓰는 일을 하는 기자로서 미안했다. 아주 사적인 취재 소회를 담은 영화기자의 부고노트 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사진 보내드릴게요.”

지난 5월 칸영화제가 열리던 뤼미에르 극장. 영화가 끝나자 주연배우 이선균은 기립박수를 받았다. 턱시도 차림으로 환하게 웃으며 그도 손뼉을 쳤다. 멋진 모습 뒤로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는 아들이 보였다. 그 옆에서 아내 전혜진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앞자리 앉은 나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으로 담았다. 지난 8월 말 인터뷰로 석 달 만에 마주한 그에게 칸에서 찍은 그 사진을 설명했고, 그는 반색하며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 일정으로 서두르느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제 그에게 영영 보내지 못하게 됐다.

이선균은 세계적인 배우였다.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2019) 영향이다. 한국영화 최초로 72회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품었다. 이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도 들어 올렸다. 작품상·감독상 등 4관왕을 휩쓸었다. 지난 5월 열린 76회 칸영화제에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가 비경쟁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다시 칸을 찾았다. 그를 보러 온 현지 관객이 상당했다. 해외 무대에서 인지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2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또 한국에서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여러 번. 연기인생 정점에 오르던 순간을 취재했다. 처음 그를 대할 때는 힘들었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좋고 싫음을 분명히 내비쳤다. 기자 앞에서는 여려겹 가면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싫어도 좋은 척, 대인배인 척, 거절할 거면서 고민해보는 척, 상냥한 사람인 척. 자신의 이득을 위해 계산된 행동을 하는 배우·감독이 많다. 그러나 이선균은 그러지 않았다. 그 결기가 참 좋았다. 꼿꼿한 배우였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2019년 ‘기생충’으로 칸영화제를 처음 찾은 이선균은 한껏 긴장했다. 세계 각국 취재진이 모인 공식 기자회견에서 목 끝까지 치미는 긴장감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덤덤한 척 고개를 들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 모습이 참 자랑스러웠다. 다음날 국내 기자들과 만나자 비로소 치아가 보이게 활짝 웃었다. 한국에서 보던 딱딱한 모습과 달랐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당시 여러 외신은 ‘기생충’을 두고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 호평했던 터. 기분 좋은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칸이니까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자”는 말을 먼저 건네기도 했다. 칸은 이선균도 춤추게 했다.

해외 무대에서 유독 빛났다. ‘기생충’은 이듬해 2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을 들어 올렸다. 한국영화사에서 전무후무한 4관왕이었다. 시상식이 끝난 후 베벌리힐스 한 호텔에서 마주한 이선균의 얼굴은 상기됐다. 한국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는데, 그는 송강호와 함께 가장 끝자리에 위치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과 제작사 대표, 여성 배우들과 최우식에게 영광을 몰아줬다. 오스카상을 한번 들어보고는 “무겁다”며 치아가 끝까지 보이게 웃었다. 그 행복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모습이 유독 잊히지 않는다. 이선균은 함께 초청된 배우, 감독을 챙기는 여유도 보였다. ‘탈출’ 시사회에서 쏟아지는 기립박수를 뚫고 김용화 감독이 귀에 대고 “언제까지 손뼉을 치냐”고 묻자 “그냥 치라”며 주지훈과 껄껄 웃었다. 비로소 칸을 즐기는 듯했다. 그의 뒷자리에 두 아들과 아내 전혜진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빠와 마찬가지고 턱시도를 차려입었고, 전혜진도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자리했다.

이선균은 올해 가족들과 긴 휴가도 보냈다. 칸영화제 일정을 마치고 바로 귀국하지 않고 며칠 더 현지에 머무르며 가족들과 여행을 즐겼다. 그는 “아이들은 칸영화제가 어떤 곳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언제 또 칸에 와보겠냐.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서 시간을 내서 다 함께 왔다. 다행히 두 작품으로 와서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며 행복해했다. 그게 마지막 여행이 됐다는 사실에 목이 멘다.

지난 9월 개봉한 ‘잠’에서 이선균은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사실상 정유미가 주인공이었지만, 극 중 남편인 이선균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그의 연기에 따라 정유미와 극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영리하게 배역을 이해했다. ‘잠’을 통해 정말 영리한 배우라는 걸 다시 느꼈다. 칭찬을 건네자 “배우만이 느끼는 쾌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연기는 숙제 같다. 계속 저를 돌아보게 해주고 움직이게 해준다.”

마지막 인터뷰가 묘했다. 2001년 시트콤 ‘연인들’로 미디어 연기에 도전했던 때를 소환했다. 데뷔한 지 22년이 넘은 배우에게 새삼스러운 질문이었다. 이선균은 “대사가 몇줄 안 됐는데, 촬영 끝나고 혼자 운전하고 가면서 그 대사를 다시 해보고 그랬다”며 웃었다. 연기 초심을 언급하며 열정도 불태웠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을 묻자 “여태 그런 질문에 없다고 답했는데, 히어로물을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별거 없어 보이는 데 능력을 지닌 히어로를 연기해보고 싶다.”

많은 대중이 인생작으로 꼽는 작품에 유독 많이 출연했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하얀거탑'(2007) ‘나의 아저씨'(2018) 영화 ‘기생충'(2019) 등 여럿이다. 그 중 인생작을 꼽아달라고 물었다. “나를 칭찬해주고 싶은 건 그나마 작품을 잘 쌓아오고 있어서다. ‘나의 아저씨’는 나의 40대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고맙다.”

이제 이선균의 연기를 더는 볼 수 없다. 재능 있는 별이 졌다. 그가 마지막 인터뷰에서 꼽은 ‘나의 아저씨’ 명대사로 그를 애도해본다. ‘편안함에 이르렀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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