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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꽃의 영화뜰] 황정민이 이길 줄 알면서도 정우성의 승리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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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사태.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인 1979년, 40대 후반의 군인 전두환이 쿠데타로 국가 실권을 장악한 날이다. 무려 18년을 장기 집권한 절대권력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당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권력의 빈자리를 꿰찬 것이다. 명목상 최규하 전 대통령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이 경계한 건 힘 없는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의 야욕을 꿰뚫고 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그에게 임명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었다.

개봉 첫 주에 189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겨울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서울의 봄>은 바로 그 시절 그날 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주인공들은 가명으로 등장하지만, 관객은 ‘전두광’ 보안사령관(황정민)이 1979년 12월12일 밤 얼마만큼 공격적이고 탐욕스러운 실행력으로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성민)을 납치하고 수도 서울을 지키던 ‘이태신’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정우성)을 제압했는지 보여주는 극의 흐름 안에서 역사 속 실제 인물을 망설임 없이 떠올릴 수 있다.

▲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극 중 전두광의 과감성은 최전방에서 북한군을 경계하던 공수부대까지 서울로 끌어들일 정도다. 여기에는 사조직을 엄격히 금지하는 군의 규칙을 무시하고 ‘하나회’라는 이름으로 세를 불리며 전두광을 뒷받침한 ‘노태건’(박해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역할도 적지 않다. 당시만 해도 엄연히 북한과 체제 경쟁 중이었던 우리나라가 군인 몇몇의 명령에 따라 적군 방비까지 포기하고 정예부대를 서울까지 진격시켰다는 사실에, 관객은 새삼 그 야망이 얼마나 저돌적이었는지 가늠하게 된다.

<서울의 봄>은 그러나 전두광, 노태건과 같은 이들이 ‘멋진 악역’으로 묘사되는 걸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도리어 ‘조국을 지킨다’는 원칙을 무기 삼아 그들을 막아서는 소신 있는 군인들에게 더 마음을 내어주도록 이야기를 설계했다. 특히 반란을 주도한 이들을 뚝심으로 막아섰던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의 존재감은 여러모로 압도적이다. 실존 인물이라는 모티브에 김성수 감독의 창작, 배우 정우성의 이미지가 결합해 한층 극적인 캐릭터로 완성됐다.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로 대변되는 엘리트 출신도 아니고, 하나회로 상징되는 ‘권력 곁에 선 군인’도 아니다. 그야말로 줄도 빽도 없는 그는 ‘이미 전두광의 세상’이라는 기울어진 판세에서도 유불리를 재지 않고 원칙대로 행동한다. 관람객 사이에서 회자되는 대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남들이야 내 알 바 아니야, 각자 소신대로 인생 사는 거니까”

▲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그런 면에서 전두광 일당에 맞서는 ‘이태신의 일생일대 대결’로 묘사된 <서울의 봄>은 김성수 감독이 이 시대에 던지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바뀌는 절체절명의 하룻밤을 박진감 있게 묘사한 뒤에는, ‘세상에는 어떤 사람이 필요한가’라는 본질적인 질문까지 던지기 때문이다. 세계의 질서가 힘의 논리에 따른다는 현실 자체를 부인할 수야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힘의 논리에 손쉽게 고개를 조아리지 않는 올곧은 인물의 가치가 한층 더 귀하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었던 셈이다.

배우 정우성은 그렇게 완성된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이라는 인물의 매력을 한층 강화한다. 오랫동안 쌓아온 그의 이미지가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한결같은 캐릭터와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정우성은 지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정치적인 표현으로 반대 진영의 미움을 샀고,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아지는 때에도 국제 봉사를 지속하면서 대중의 빈정거림을 듣기도 했다. 타인의 호감을 밑천 삼아 먹고 사는 직업으로서 그다지 좋은 전략은 아니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다만 그런 모습 덕에 그가 꽤 큰 영향력을 지닌 유명 배우로서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려 하는, 흔치 않은 심지를 지닌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좀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가 믿는 가치를 대변하려는 태도. 그건 설령 군인으로서의 모든 지위를 잃게 될지언정 수도 서울을 지키는 책임자로서 맡은 소임을 다 하겠다는 <서울의 봄> 속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의 면모와 닮은 데가 있다. 물론 그건 옳고 그름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 상대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지조’가 있느냐 없느냐를 구별하는 하나의 기준에 가까울 것이다. 그 멋스런 지조에 매료된 관객은 기꺼이 극 중 이태신의 결단을 지지하게 된다. 스크린으로 돌이킨 1979년 12월 12일 밤, 전두광 보안사령관이 이길 줄을 다 알면서도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이 승리하기를 바라 마지않았던 이들의 마음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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