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재투표 끝에 폐기됐습니다.
방송3법은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을 늘리고 이사 추천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 등 행정부와 정치권 영향력을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현재 11명인 KBS 이사와 9명인 방송문화진흥회·EBS 이사 수는 각각 2배취임가량인 21명으로 확대하고 늘어나는 이사 추천 권한은 주로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와 시청자위원회 등 외부로 확대할 계획이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노사 관계에서 사용자와 쟁의행위의 범위를 넓히는 법안인데요.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조합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법안 모두 여야 간 합의에 실패하고 사실상 야권의 단독 표결로 국회를 통과했는데요.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물거품이 됐습니다.
지난 1일 방송3법과 노란봉투법에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두 법안은 국회로 돌아왔습니다. 헌법 제53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다시 의결되기 위해서는 재적 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현재 원 구성상 여야 합의가 없는 한 의결이 어려운 건데요.
예상대로 국회는 지난 8일 본회의 표결에서 부결되면서 법안은 최종 폐기됐습니다. 방송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291명 중 찬성 177명, 반대 113명, 기권 1명으로,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291명 중 찬성 176명, 반대 114명, 기권 1명으로 각각 부결됐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재석 의원 291명 중 가결 175표, 부결 115표, 무효 1표였습니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란?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법률안 재의요구권)이란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송된 법률안에 이의를 달아 국회로 되돌려 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헌법상 권한입니다. 이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의견이 대립할 때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응 수단인데요.
이는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삼권 분립에 따라 행정부가 입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의회를 통과한 법률에 대해 국가원수가 동의하는 것을 거부하며 법률 성립을 저지하는 것이죠.
대한민국헌법 제53조는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헌법
제53조 ①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②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제1항의 기간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국회의 폐회 중에도 또한 같다.
③ 대통령은 법률안의 일부에 대하여 또는 법률안을 수정하여 재의를 요구할 수 없다.
④ 재의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회는 재의에 붙이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⑤ 대통령이 제1항의 기간 내에 공포나 재의의 요구를 하지 아니한 때에도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⑥ 대통령은 제4항과 제5항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된 법률을 지체없이 공포하여야 한다. 제5항에 의하여 법률이 확정된 후 또는 제4항에 의한 확정법률이 정부에 이송된 후 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하지 아니할 때에는 국회의장이 이를 공포한다.
⑦ 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
법안 심의 주요 절차는 △법안 발의 △상임위 심사 △법사위 심사 △본회의 표결 △정부 이송 및 공포입니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정부에 이송됩니다. 여기서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법안 공포를 거부하고 재의결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국회가 다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하면 대통령 거부권이 무력화됩니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지난 1일 오후 출입기자단 공지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방송3법과 노란봉투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는데요. 정부는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헌법 가치에 반하는 법안’이며 ‘이해관계자들 간 갈등이 극심한 법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방송3법이 공영방송의 좌편향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착화한다고 봤습니다.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을 조장하고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국가 경제에 해악을 끼치고 시장 질서를 어지럽힐 우려가 있는 법안이라고 봤습니다.
◇반복되는 대통령 거부권…반헌법 논란도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에도 법률안 거부권을 사용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이 법안들에 대해 “헌법 가치에 반하는 법안, 이해당사자들의 갈등과 대립이 첨예한 법안, 국가 경제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법안 등에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는데요. 특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포퓰리즘적인 법안이며 간호법 제정안은 직역 간 갈등을 일으킨다고 봤습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일정 수준 이상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국회 본회의로 돌아온 양곡관리법 역시 재석 의원 290인 중 찬성 177표, 반대 112표, 무효 1표로 부결됐습니다.
간호법 제정안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 명확화, 처우 개선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역시 법률안 거부권 사용으로 인해 돌아간 국회 본회의에서 폐기 수순을 밟았는데요. 재석 의원 289인 중 찬성 178표, 반대 107표, 무효 4표였습니다.
법률안 거부권은 입법부에 대한 견제수단으로서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규정된 권리인 만큼, 신중하게 사용돼야 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현재까지 70건입니다. 이는 194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양곡매입법안에 대해 첫 거부권을 행사한 때부터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방송3법과 노란봉투법에 대해 행사한 거부권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인데요.
역대 대통령별로 보면 이승만 전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 행사가 43회로 가장 많습니다. 이어 박정희·노태우 전 대통령이 7회, 노무현 전 대통령은 6회를 각각 행사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각각 2회와 1회 행사했는데요. 김영삼·김대중·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거부권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년 6개월 만에 4번의 법률안 거부권을 사용했는데요.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매우 신중한 최근 분위기를 볼 때 눈에 띄게 많은 수치입니다. 이 때문에 거부권 남용 지적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현 정부가 법률안 거부권을 남용해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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