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건축왕’ 등의 별칭까지 생겨난 전세사기 관련 피해는 상대적으로 보증금이 낮은 빌라 등에서 크게 발생했다. 주요 수요층인 청년과 서민 등의 피해가 컸다. 피해 세입자 10명 중 7명은 10∼30대 청년층이었다.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 7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상 9109명의 피해자 가운데 30대 이하가 6553명으로 전체 71.9%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에 여야가 뜻을 모아 지난 5월 전세사기피해자지원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에 국회에선 개정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당시 여야는 6개월마다 특별법을 보완하기로 했지만, 큰 진척은 없는 상황이다.
◇ 전세사기, 전국으로 확대… 건축왕·빌라왕 등장
전국 각지에서 전세 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인천에서는 일명 ‘건축왕’ 일당의 전세사기로 피해자들 중 4명이 세상을 등졌다.
건축왕이라 불리는 남모씨(61)는 인천 지역에서 2700여채 빌라와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건축업자로 2009년부터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토지를 매입해 자신의 건설업체를 통해 소규모 아파트나 빌라를 직접 지어 임대 사업을 벌였다.
이에 검찰은 사기 등 혐의로 건축왕과 이를 도운 공인중개사 등 총 35명을 기소했다. 검찰은 이번에 기소한 전체 피의자 35명 중 남 씨를 포함한 18명에게는 ‘범죄조직’ 혐의를 적용했다. 이들은 바지 임대인과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 자금관리책 등으로 전세사기 범행을 저지른 일당이 범죄조직 혐의로 기소된 건 이번이 최초다.
경찰은 지난 7월까지 1년간 500명이 넘는 전세사기 사건 피의자를 검거하고, 10건에 대한 기소 전 추징보전을 신청해 범죄수익금 35억원을 몰수·추징 보전했다.
전세사기즌 부산 지역에서도 발생했다. 160억원 상당의 전세사기를 벌인 50대 여성에게 검찰이 징역 13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13년을 구형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A 씨는 2020년부터 올해 1월까지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부산지역 오피스텔을 매입해오다 210명의 임차인에게 전세 보증금 164억원 상당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오피스텔은 대부분 대학가에 위치해 있어 피해자 대다수가 20~30대 청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서울 강서‧관악‧구로‧양천, 경기 군포‧부천‧안양, 인천 등 수도권 전역에 걸쳐 오피스텔과 아파트 등 159채를 보유한 30대 남성 ‘수도권 빌라왕’이 등장하기도 했다.
빌라왕 장씨는 본인 명의 재산을 일부러 보유하지 않아 변제할 수 있는 돈이나 현물성 자산을 없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피해자를 소개해 준 중개보조인에게는 2000만원을 제공했다. 또 전세계약서를 쓰는 조건으로 신축빌라를 지은 시공사에게 수백만원의 리베이트를 받는 수법을 썼다. 장씨에게 전세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는 50명이 넘는다.
법무법인 태유에 따르면 장씨는 민사상 전세사기죄가 인정됐으며, 경찰‧검찰이 조사 중이다. 장모씨의 활동 지역은 서울시 ▲강서구 ▲양천구 ▲중랑구 ▲성북구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 경기도 ▲파주시 ▲수원시 팔달구 ▲안양시 만안구 ▲안산시 단원구 ▲의정부시 ▲광명시 ▲군포시 ▲김포시 ▲부천시 ▲시흥시, 인천시 ▲계양구 ▲남동구 ▲미추홀구 ▲부평구 ▲서구 ▲연수구 등으로 확인됐다.
◇ “울며겨자먹기” 전세사기 피해자, 사기주택 떠안아
강서구는 전국 최초로 ‘전세사기 피해자 전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대상은 국토교통부에서 심의가 완료된 피해자 489명과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특별법 제외 대상자 61명 등 총 550명이며, 그중 355명이 응답해 64.5%의 응답률을 보였다.
조사항목은 인적사항, 향후 주거계획 등을 확인하는 일반사항과 함께 ▲우선매수권 행사 ▲우선매수권 양도 ▲새로운 전세주택 이주 ▲공통 지원정책 현황 ▲건물 유지보수 문제 ▲소송수행 경비 현황 ▲법률상담 지원 개선방안 ▲심리상담 지원 개선방안 ▲피해자 단체(모임) 구성 ▲기타 건의사항 등 총 11개 항목, 60개 문항이다.
피해주택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행사했거나 행사 예정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68명이었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낙찰 후 취득세 납부, 전세대출 상환 부담 등의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임대인 부재로 인한 건물 유지보수 문제에 대해서는 피해자 상당수인 225명(70.3%)이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아직 많은 피해자들이 건물 누수, 단전, 단수 등 피해를 해결하지 못하고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은 보증금 회수를 위해 다양한 법적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소송비용 부담과 경제적 손실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 절반 이상은 법률상담 지원을 받았지만 상담 품질이 미흡했다고 답했고, 심리지원 서비스는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이용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특히 피해자 대부분인 89%가 수면장애, 위장장애, 신경쇠약 등 건강 악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은 제도개선 및 지원방안에 대한 요구사항으로 악성 임대인과 공인중개사 처벌 강화, 특별법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 선 구제 후 회수, 피해자 소득기준 완화, 정부의 피해주택 매입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사진제공=참여연대
◇ ‘특별법 보완’ 국회는 여전히 논의중
특별법 시행 이후에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피해 회복이나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피해자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 5일과 6일 전체회의와 소위원회를 열고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피해자로 인정한 수는 9109건이며 928건은 요건 미충족으로 부결, 658건은 자력 구제가 가능해 피해자 인정에서 제외됐다.
지난 6월1일부터 본격 시행된 전세사기특별법은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에게 경·공매 절차, 조세 징수 등에 관한 특례를 부여해 이들을 지원하고 주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정부와 국회는 특별법 제정과 함께 6개월마다 보완입법을 약속했다. 전세사기가 진행 중인 사안이기에 법 시행 이후에도 계속 실태를 조사하고,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경우 이를 수정·보완하겠다는 취지였다.
약속된 6개월이 넘어가면서 피해자들은 제도 보완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의 피해자들은 지난 5일 전국 동시 집회를 여는 등 그동안 현실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특별법 개정과 지원대책을 꾸준히 촉구해 왔다. 피해자들은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부천시에 거주하는 30대 전세사기 피해자 이모씨는 “피해자들은 온전히 정부의 빠른 응답을 바라면서 빚더미를 두고 시간싸움 중”이라며 “전세사기 피해자 선정자체도 최소 3개월은 걸린다. 선정되면 그제서야 임차권등기명령 할 수 있고, 또 몇 달 기다려야 전환대출 신청할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차원에서 노력해준다는 것은 알겠지만, 본인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다고 생각하면서 빠르게 추진해줬으면 좋겠다”며 “사기를 당하고 싶어서 당하는 사람은 없다. 강력한 처벌과 빠른 구제로, 전세사기 피해자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전세사기 피해자 한모씨는 “전세사기꾼이 나쁘지만, 피해자들이 구제해주지 않는 정부도 나쁘다”라며 “피해자라고 국가에서 인정받기도 쉽지 않고,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꺼내놓은 정책들이 일반 직장인들이 진행하기에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한씨는 “달라지는게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더 초조해진다. 사기당한 집을, 이 지옥같은 집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게 더욱더 힘들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5월전세사기 특별법을 통과시킨 지 반년이 지났다. 6개월마다 보완 입법을 하기로 했으나, 지난 6일 여야의 대립 끝에 개정안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최대 쟁점은 ‘선구제 후구상권 청구’다. 피해 임차인들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공공기관이 사들여 피해 임차인들을 먼저 구제한 후 경매나 임대인을 통해 이를 회수하는 방안이다. 야당은 ‘선구제 후구상권 청구’를 밀어붙이고 있다.
주현태 기자 gun131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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