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슨 퍼거슨 경력에 있어, 아내는 기댈 수 있는 사람(a tower of strength)이었습니다.
지난 10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C 전 감독 알렉슨 퍼거슨(Alex Ferguson)의 아내 캐시 퍼거슨이 세상을 떠나자, 맨유가 공식 SNS에 올린 추모 글 일부입니다. 향년 84세. 당시 장례식에는 박지성을 비롯해 데이비드 베컴, 게리네빌, 마이클 캐릭, 대런 플레처 등 맨유의 전설적인 스타들이 집결하기도 했습니다. 맨유는 캐시의 사망 직후 검은색 완장을 차고 경기를 뛰기도 했죠. 퍼거슨은 지난 2013년 은퇴하면서 그간 3명의 자식을 키운 아내의 희생을 은퇴 이유로 꼽기도 할만큼 아내에 대한 애정과 동시에 미안함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타자기_공장에서_첫만남
1941년생인 퍼거슨의 첫 사회생활은 전업 축구선수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타자기 생산공장에서 견습생으로 취직했고, 파트타임으로 당시 유명 아마추어 클럽이었던 퀸즈파크와 세인트 존스터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축구선수는 부캐였던 셈이죠. 무엇보다 퍼거슨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퍼거슨은 무명의 축구선수였지만, 나름 좋은 활동을 펼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퍼거슨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죠.
퍼거슨이 아내 캐시를 만난 곳도 타자기 생산공장입니다. 두 사람은 그곳 직원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퍼거슨은 3살 연상인 아내의 첫인상에 대해 “캐시는 예뻤고, 걸음걸이도 사랑스러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와 달리 캐시는 퍼거슨에 대한 첫인상으로 ‘깡패 같다’고 생각했다 합니다. 이는 퍼거슨을 처음 봤을 때 그가 축구 경기 중 부상으로 얼굴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깡패가 아니라면 복서일 거라고 캐시는 퍼거슨을 보고 생각했죠.
#영화관에서_첫_데이트
20대 둘은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반했습니다. 퍼거슨은 영화관에서 캐시와 첫 데이트를 했는데, 이날 퍼거슨 영화를 보며 혼자서 감초 사탕(liquorice allsorts) 한 상자를 비웠다고 합니다. (퍼거슨은 경기 중 항상 껌을 씹고 있어, 국내 팬 사이에선 퍼껌슨으로도 불렸습니다.) 캐시는 지난 2021년 개봉한 퍼거슨 다큐멘터리에서 첫데이트를 떠올리며 ‘로맨틱한 하루'(romantic day)였다고 회상하기도 했죠. 연애를 시작하며 퍼거슨의 경기력은 오히려 더 상승했습니다.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물오른 공격 실력을 뽐냈고, 아마추어 선수가 아닌 정규선수로 계약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하죠.
그러다 1966년, 첫 만남 이후 2년 만에 두 사람은 글래스고 등기소(registry office, 영국에서 출생·혼인· 사망 기록을 보관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비종교적인 결혼식을 올리기도 합니다)에서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당시 퍼거슨의 나이는 25살이었고, 캐시의 나이는 28살이었습니다. 결혼식 직후, 캐시는 다시 타자기 생산공장으로 출근했고 퍼거슨은 축구를 하러 갔다고 합니다. _
#종교갈등에_선수서_감독으로
결혼 후 퍼거슨은 축구선수로 경력도 화려하게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결혼한 시즌 퍼거슨은 51경기에 출전, 45골을 기록했습니다. 그 덕에 결혼 다음 해인 1967년, 퍼거슨은 당시 최고 이적료인 6만5000파운드를 받고 레인저스로 옮겼습니다.
퍼거슨의 실력을 인정, 최고로 대우해줄 것 같았던 레인저스에서 퍼거슨은 구단에 실망, 축구선수가 아닌 감독의 꿈을 품게 됩니다. 여기에도 아내와 관련 일화가 얽혀 있습니다. 당시 레인저스는 개신교 팀이었는데, 가톨릭을 믿는 아내와 결혼한 것을 문제 삼아 퍼거슨을 차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퍼거슨은 자신의 회고록에서도 “구단에서 아내의 종교에 대해 매우 껄끄러워했기에, 부득이 구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참고로 그때까지만 해도 스코틀랜드는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종교 갈등이 심했고, 셀틱은 가톨릭, 레인저는 개신교를 대표하는 클럽이었습니다.
레인저스에서 폴커크로 이적한 퍼거슨은 본격적으로 감독직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꿈의 클럽이었던 레인저스가 자신이 아닌 아내의 종교를 두고 차별한 것에 큰 환멸을 느낀 것도 선수가 아닌 감독직을 준비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였죠. 폴커크에서 퍼거슨은 코치 자격증을 취득하며 사실상 플레잉 코치(선수 겸 코치)로 재직하기 시작합니다. 명장의 탄생 비화죠.
#명장_탄생_과정엔_아내의_은퇴_거부?!
퍼거슨은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꼽힙니다. 이스트 스털링셔의 임시 감독으로 시작한 그는 2013년 맨유 감독으로 은퇴하기까지, 4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지켰죠.
사실 퍼거슨은 좀 더 일찌감치 은퇴하려던 계획을 세웠습니다. 퍼거슨은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직전 은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의 은퇴 계획은 아내 캐시의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퍼거슨은 자서전에서 당시 캐시가 자신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첫째, 당신의 건강은 좋습니다. 둘째, 당신을 집에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어쨌든 당신은 아직 어려요.(“One, your health is good. Two, I’m not having you in the house. And three, you’re too young anyway.)”
결국 아내의 동의를 구하지 못해, 퍼거슨은 계속해서 맨유 감독을 수행했고 결과적으로 다시 맨유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05/06 시즌 박지성을 비롯해 에브라, 비디치, 판데르사르 등을 영입 이른바 ‘희대의 꿀영입’도 맨유 부활의 출발점이 됐죠.
#아내에게_내가_필요해진_순간_은퇴
퍼거슨의 은퇴는 전적으로 아내로부터 결정됐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2013년 은퇴 후, 2년이 지나 퍼거슨은 텔레그래프와 인터뷰에서 2012년 10월 아내의 쌍둥이 여동생이 하늘 나라로 떠난 이후 아내가 고립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늦은 저녁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천장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봤다고 합니다. 퍼거슨은 그 모습에서 아내가 외롭다는 것을 느꼈고, 그해 크리스마스 때 퍼거슨은 은퇴할 결심을 했죠.
10여 년 전 아내에게 은퇴 계획을 말했을 때, 퇴짜 맞았던 것과 달리 이번에 아내는 퍼거슨의 뜻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퍼거슨은 아내 역시 자신이 은퇴해 옆에 있어주길 바랐던 거죠.
“제 생각에 캐시는 47년 동안 가족의 가장으로서 우리 세 아들을 돌보며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 왔던 것 같습니다.”(퍼거슨)
by 썸랩 윤정선 에디터(sum-la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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