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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이 내란 아니다? 윤 대통령의 마지막 발악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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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라 14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 이를 두고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상임고문은 “박근혜, 윤석열의 탄핵을 보면 한국 보수의 몰락 또는 민주적 보수세력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박 고문은 “여당인 국민의힘을 비롯해 보수 인사들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 정치가 보수 대 진보가 아니라 민주 대 반민주로 봐야 할 정도 아닌가 싶다”며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헌법에 명시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전두환 초기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같다. 좋게 말하면 보수, 이른바 ‘기득권’ 세력은 기본적으로 냉전시대에 구축된 적대적 분단 구조 속에서 대북 적개심 고취로 여론을 조성하고 정권을 유지해 왔다”며 “이승만의 자유당 계열부터 공화당, 민정당으로 쭉 이어져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상계엄을 내란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은 마지막 발악 내지 절규일 뿐”이라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기 전에 군 쪽의 여러 사람들이 계엄 지시를 받았고 실제 실행했다고 자백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이걸 기각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인용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박 고문은 경제적 여파에 대해 우려했다. 그는 “김현철 전 경제수석은 최근 윤석열 정부의 탈(脫)중국 정책과 비상계엄 선포, 트럼프의 당선 때문에 한국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며 “올해와 내년 1% 대 성장이 예상되는 속에서 우선 대중국 정책 선회를 비롯해 정책적 차원에서 재검토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는 한덕수 총리가 윤석열 정부 하에서 총리를 했기 때문에 정책 지속성이라는 문제로 인해 그대로 갈 가능성도 있다”며 “그래도 명색이 경제 관료 출신으로 평생을 살아왔다면,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마찬가지지만 한덕수 권한 대행이 ‘탈중국 선언’을 번복하고 중국과 관계 개선 쪽으로 조금만 방향을 틀어줘도 경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야 평생 전문가로 살아온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탄핵 이후 들어설 정부에 “윤석열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선을 그어 놓고 ‘저것들은 그냥 습관적으로 반대하는 놈들이니까 어쩔 수 없어, 없애자’는 식으로 갈 것이 아니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며 “논리가 아니라 성의를 보이고 소통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걸쳐 통일부 장관을 하면서 남북 장관급 회담을 가질 때마다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 대표였던 이회창, 박희태, 박근혜 전 대표 등을 찾아가 회담 상황을 설명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정부가 해야 할 도리”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이런 정치 문화를 더 많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치인들끼리 갈등을 줄여야 국민들 간의 갈등, 사회 전체의 갈등도 조금이나마 누그러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정식 취임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새 정부를 위해 트럼프 당선인을 상대해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정부 인사들이 나서줘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정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시절 북핵 문제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던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이나 서훈 당시 국가정보원장 등이 있는데 이들 채널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 민주당 집권을 대비해서 민주당의 소위 ‘올드보이’ 멤버들이 뛰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움직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일본은 아소 다로 전 총리가 미 대선 기간 중에 트럼프 후보를 미리 만나러 가지 않았나”라며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으로 돌아 올 때 미-일 관계를 잘 풀어나가기 위한 사전 공작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 전 장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처럼 미리 아스팔트를 좀 깔아 놓아서 차기 정부가 한-미 관계를 잘 끌어 나가도록 뒤에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냥 이재명 팀들한테만 맡겨서는 안 되고 문재인 팀들이 움직여 줘야 된다”고 주문했다.

대담은 18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본인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한남동 관저에서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본인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한남동 관저에서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인규 :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세계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데 현재 한국은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대외적으로는 뭔가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정세현 : 외교 안보 차원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늪속에 빠져드는 형국이 되었다.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에 속한 국가들의 주한 대사들이 비상계엄 파동 직후인 6일에 모여서 윤석열 대통령이 계속 한국의 대통령으로 남아 있으면 내년 10월 한국 경주에서 열릴 예정인 에이펙(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포함해 모든 정상회의를 보이콧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건 한국을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고 발전해가는 나라로 보기 어렵다는 뜻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이거 다시 회복하려면 지금보다 배는 노력해야 한다. 설사 정권이 교체되어도 윤석열이 늪에 빠뜨려 놓은 민주주의를 맨땅으로 일단 올려 놓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박인규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대외적으로는 적극적 역할을 하기 어려운데, 미국도 좀 곤혹스러울 것 같다. 윤석열이 민주주의, 인권 등을 중시하는 ‘가치외교’ 이야기하면서 미국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줬고, 한미일 군사동맹과 일방적 양보에 의한 한일 관계 개선, 경제적 부문에서의 탈(脫)중국을 실행했는데 정작 친위 쿠데타를 통해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 미국의 대외전략 측면에서 윤석열의 이러한 행보가 매우 필요한데, 정작 그가 미국이 표방하는 민주주의를 노골적으로 유린했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당선인은 북한과 베네수엘라 문제를 다룰 특사에 리처드 그레넬 전 주독일미국대사를 임명했다. 트럼프 당선인 집권이후 북미 관계가 어떻게 될지도 관심인데 우리가 여기에 대비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정세현 : 미국 대외 정책에서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건 중국 문제다. 그 다음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인데 이건 미국이 지원하지 않으면 끝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와 푸틴이 직접 대화하면서 휴전 쪽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그 다음이 이스라엘 문제다. 북한 문제는 이들보다는 후순위다.

물론 선거 유세 도중 트럼프 당선인이 “김정은과 가깝다, 사이가 좋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고 심지어는 김정은이 북미 협상 테이블에 쉽게 나올 수 있을 법한 이야기도 했다. “북한이 핵을 너무 많이 가질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는데, 이건 미국이 비핵화가 아닌 ‘비확산’을 목표로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북한으로서는 ‘핵 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받는 조건에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중국, 우크라이나, 중동 문제 등이 있어서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바로 북미 협상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또 그레넬 특사가 북한만 담당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권한대행 체제에서 우리가 북미 협상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북미 간 협상은 탄핵이 인용되고 대통령 선거가 내년 늦봄이나 초여름에 치러진다고 하면 제일 먼저 챙겨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남한이 북미 협상에 직접 관여할 수는 없을지라도, 미국과 공조를 통해 관련 동향은 미국으로부터 디브리핑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관계는 회복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가 외교장관에게 전화해도 안 받고, 김태효 안보실 1차장도 전화 안 받고, 그래서 한국 정부를 “상종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국무부 본부에 이야기했다는데 이 여파가 상당 기간 갈 수 있다. 신뢰를 못하겠다는 뜻 아닌가. 이렇게 되면 한국에 북미관계 관련해서 귀뜸도 잘 해주지 않을 수 있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조성된 한미 간 불신이 차기 정부가 북미 관계 관련해 상당히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더구나 트럼프의 속셈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비확산’으로부터 북-미 협상을 시작하려고 할 텐데, 우리가 계속 북한의 ‘비핵화’를 고집하면 미국은 북-미 협상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잘 안 해줄 수도 있다.

미국의 이런 경향은 과거에도 있었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비확산조약(NPT) 탈퇴 후 1994년 10월 ‘미-북 제네바 기본협정’이 만들어지기 전에, 북한은 남한이 협상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해서 우리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대신 미국이 협상과 관련해 돌아가는 이야기를 상세하게 해주겠다고 했고, 그래서 제네바에 있던 외교관들이 동향을 보고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누락된 것이 많았다. 핵심은 빠뜨리고 이야기해준 것도 있었다.

또 하나 우려되는 지점은 트럼프가 비핵화가 아닌 비확산을 고집하게 되면 한국 내에서 1991년 내보냈던 전술핵 재배치론 또는 핵무장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소위 ‘힘의 균형’ 정도는 보장 받아야 한다는 한국 내 여론이 있을 때 이를 어떻게 미국에게 설득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1959년에 체결한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에서 미국이 한국의 플루토늄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을 절대로 못하게 묶어놨다. 그거를 이명박 정부 말년에 “우리에게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정도라도 보장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요구를 했지만 미국이 결국 들어주지 않았다.

그나마 당시는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농축과 재처리도 허락을 하지 않았는데, 트럼프 정부가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유지-강화를 위해 핵 비확산을 전제로 북-미협상을 시작해버리면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갖게 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형국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죽어라 하고 미국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까지 가면 우리는 최소한 재처리와 농축 정도는 허용해 달라고 수용 가능한 마지노선 정도는 마련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선례도 있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허락받은 재처리와 농축을 통해 엄청나게 많은 핵물질을 가지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순식간에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 농축과 재처리가 가능한 일본의 선례를 우리한테도 적용해 달라는 식의 협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북-미 협상에서의 또 하나의 문제는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려고 할 때 한국이 협상 당사자로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북한은 우리가 1953년 7월 휴전 협정에 서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한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더라도 그 협상장에 들어올 수 없다, 자격도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2007년 10.4 남-북 정상회담 때 한국도 들어가는 걸로 일단 얘기가 됐다.

‘10.4 평양 남-북 정상선언’ 4항에서 “한반도 관련 3국 또는 4국의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한국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하는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합의가 됐는데, 이걸 북한이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다시 나올 수도 있다.

북한이 남한하고 완전 두 개의 민족으로, 두 개 국가를 고집하고 있고 통일도 안 할 거라면서 남한을 빼라고 고집을 부릴 수 있는데, 이럴 때 미국에 “상종할 수 없는 집단”으로 찍혀 있는 한국 정부를 미국의 실무자들이 넣어주려고 할 것인지 걱정이 된다.

박인규 : 윤석열 정부는 트럼프 당선에 대해서 좀 대비를 한 것 같이 보이나?

정세현 : 윤석열 정부의 장‧차관들, 대통령 비서실의 외교안보실에 있는 참모들의 멘탈리티를 보면 미국에게 무조건 기고 들어가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굽히고 들어가는데 어떡할 거야’라는 식이다.

그러니까 ‘트럼프라고 별 건가, 우리가 일본한테 잘해주는 식으로 해서, 컵에다 물을 반 채워놨으니까 마저 채워 줄 것’이라는 식으로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을 보장받는 등 북핵 문제와 관련해 원하는 것을 끌어낼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본다. 확실히 굽히고 들어가는 전략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같다.

박인규 : 민주당이 야당이지만 차기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데, 특사를 보내겠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정부 간 공식 채널이 아닌 다른 채널에서 트럼프 측과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여지가 있나?

정세현 :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북핵 문제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던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이나 서훈 당시 국가정보원장 등이 있는데 이들 채널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 민주당 집권을 대비해서 민주당의 소위 ‘올드보이’ 멤버들이 뛰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움직이는 것도 방법이다.

일본은 바이든 정부와 공식 관계 끌어 나가는데도, 아소 다로 전 총리가 미 대선 기간 중에 트럼프 후보를 미리 만나러 가지 않았나.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으로 돌아 올 때 미-일 관계를 잘 풀어나가기 위한 사전 공작을 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 미 대선 기간 중 민주당이 정부를 제치고 트럼프와 줄을 댈 수는 없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고 4기 민주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게 됐다. 이럴 때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 정정회담을 주선해 줬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처럼, 미리 아스팔트를 좀 깔아 놓아서 차기 정부가 한-미 관계를 잘 끌어 나가도록 뒤에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냥 이재명 팀들한테만 맡겨서는 안 되고 문재인 팀들이 움직여 줘야 된다. 문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말이 3기 민주 정부였는데 4기 민주 정부를 위해서는 3기 민주 정부의 대미 협상팀들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포함해서 움직여 주는 게 필요하다.

▲ 2019년 4월 11일(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왼쪽)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 2019년 4월 11일(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왼쪽)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박인규 : 물론 우리가 남북 대치 상태이기 때문에 전면에 나설 수는 없으나 배후에서 트럼프 측과 사전 조율 같은 것이 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인데, 트럼프 입장에서도 북미 협상을 통해서 북핵 문제를 어떤 수준에서 해결한다면 상당한 외교적 성과이기도 하다.

정세현 : 노벨 평화상 감이다. 그러니까 임기 중에 그 문제를 해결하고 노벨 평화상을 받으려 할 것이다. 어차피 트럼프는 재선 출마를 못 하니까 상이라도 받고 업적을 쌓으려고 할 텐데, 북핵 문제가 미국 대외 정책에서 1, 2번의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동아시아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심각한 수준의 국제 정치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문 전 대통령은 이를 도울 수 있기도 하다. 지금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저렇게 선을 그어서 두 개 국가, 두 민족으로 나갔지만, 트럼프가 업적을 낼 수 있는 쪽으로 김정은이 협조하도록 뒤에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김정은을 만났던 대북 특사들도 움직일 필요가 있고. 남북관계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측면도 있더라.

박인규 : 비상계엄 선포가 경제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현철 전 경제수석은 최근 윤석열 정부의 탈(脫)중국 정책과 계엄, 트럼프의 당선 때문에 한국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올해 내년 1% 대 성장이 예상되는 속에서 우선 대중국 정책 선회를 비롯해 정책적 차원에서 재검토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세현 :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는 한덕수 총리가 윤석열 정부 하에서 총리를 했기 때문에 정책 지속성이라는 문제로 인해 그대로 갈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명색이 경제 관료 출신으로 평생을 살아왔다면,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마찬가지지만 한덕수 권한 대행이 ‘탈중국 선언’을 번복하고 중국과 관계 개선 쪽으로 조금만 방향을 틀어줘도 경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야 평생 전문가로 살아온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박인규 : 국무위원 중에서는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실제로 계엄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강하게 반대했던 것이기도 하고.

정세현 : 같은 경제 관료 출신인데, 이렇게 되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얘기를 총리는 왜 강하게 얘기하지 못했을까 싶다.

윤 대통령 탄핵이 되고 나니 러시아 쪽에서는 주한 러시아 대사가 한러 관계가 다시 회복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국 측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담화에서 중국 간첩 이야기를 하니 바로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도 한중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더 부드럽게 다가가면 중국도 다가올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지금 한국을 중국 쪽으로 끌어들여야 할 필요도 있다. 한국을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디커플링'(decoupling)을 시켜야 자기들이 미국으로부터 압박을 덜 받는다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이 한국한테 줄 수 있는 반대급부가 있으니 이를 레버리지로 해서 한중 관계를 복원하고 싶어 한다. 중국이 도망가는 형국이라면 몰라도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면 차기 정부가 이를 감안해 한중 관계를 윤석열 정부 이전으로 돌려야 한다.

그리고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까다롭게 굴지는 않는 측면도 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한중 관계는 얼마든지 복원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 다루기 어려운 것이 미국이다. 핵 문제와 관련한 북미 협상이 열릴 때 우리를 데려가지 않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경제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이전에 트럼프 당선인과 전화했을 때 북한 오물풍선 이야기 했더니 트럼프는 조선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에 대우조선하고 현대중공업에게 미국에 공장 지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제 미국은 중국의 해군력 증강을 견제하고 싶어 한다. 지금 중국이 항공모함 2척을 보유하고 있고 2척을 더 만들려고 하는데 그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의 군함 제조를 능가할 수 있는 정도의 해군력 강화를 위해 조선소가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이 인도태평양전략만 가지고, 일본과 한국 호주를 묶어 스크럼을 짜고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자기들의 해군력 강화를 위해 한국에 조선소를 미국에 지으라고 하면 중국과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라 트럼프 당선인은 주한민군 주둔비 분담금 문제 가지고도 한국을 괴롭힐 가능성이 높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트럼프 정부를 맞아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건 ‘자국중심성’이다. 윤석열 정부처럼 ‘가치외교’ 깃발을 들고 대미 편중외교를 하면 안 된다. 가치외교 한다면서 결과적으로 미국의 바람대로 일본 밑으로 들어가게 된 것인데, 새 정부에서는 경제적으로 대중관계 복원해야 한다. 미국에도 “중국에서 돈을 벌어야 우리도 먹고 살고 당신네한테서 무기도 살 수 있지 않겠냐”며 “우리가 중국과 관계 유지하는 것은 한미 관계 원활한 유지 위해서도 필요하다”라고 설득할 줄도 알아야 한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이재호)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이재호)

박인규 : 당장 일본은 트럼프 당선 이후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아베 신조 부인과 식사를 하기도 하고 일본과는 취임 전에도 정상회담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북한과 대화에도 열려있는데, 납치자 문제를 대화의 입구가 아닌 출구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정세현 : 북미관계가 개선될 조짐이 보이면 일본은 조바심을 내고 북한에 달려들 것이다. 일본이 한국 정부 입장 생각해서 속도 늦춘다? 그럴 리가 없다.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2월 말 중국에 가서 ‘미-중 상하이 공동성명’을 통해 앞으로 미-중 간 수교까지 가겠다고 발표했다. 그랬더니 그 해 8월 일본 다나카 총리와 미키 외상이 함께 중국으로 가서 ‘중-일 우호조약’을 체결하고 수교까지 하고 나왔다. 당시 대만으로서는 일본의 그런 행동이 매우 불편했을 수밖에 없다. 갑자기 ‘중공’과 수교했으니까. 그래서 대만에서는 “버스를 놓치기 싫어하는 일본 사람들 특유의 조바심이 발현된 것”이라고 평가했었다. 트럼프 정부하에서 미-북관계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면 일본은 미국보다 먼저 북한 쪽으로 달려 갈 것이다.

일본이 일제강점기 당시 배상금을 미끼로 북한에 다가가면. 북한으로서는 국내 경제도 어렵고 특히 ‘지방발전 20X10 정책’ 추진을 위해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북-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방발전 20X10 정책’ 성공을 위한 재원의 일부라도 확보하기 위해 북한군을 러시아에 파병했다고 본다.

북한이 2002년 8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수교 관련한 협의를 할 때 일본에 300억 달러를 불렀는데 일본이 100억 달러밖에 못 주겠다고 해서 결국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한다. 이시바 총리로서는 북-일관계 개선에 필요하다면 일본 특유의 로비력을 발휘해서 북일 간 배상금 문제는 유엔 대북제재와 무관하다면서 트럼프 미국의 이해를 받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편과 이야기하는 것이 정부의 도리

박인규 : 윤 대통령의 탄핵은 이른바 ‘미국만 바라보는 외교’가 끝나게 되는 것은 기회일 수도 있으나, 내란 시도가 한국을 40년 전으로 후퇴시키고 정치를 망가뜨리고 있으며 경제에도 타격을 주는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여당인 국민의힘을 비롯해 보수 인사들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 정치가 보수 대 진보가 아니라 민주 대 반민주로 봐야 할 정도 아닌가 싶다. 박근혜, 윤석열의 탄핵을 보면 한국 보수의 몰락 또는 민주적 보수세력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정세현 : 전두환 초기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같다. 좋게 말하면 보수, 이른바 ‘기득권’ 세력은 기본적으로 냉전시대에 구축된 적대적 분단 구조 속에서 대북 적개심 고취로 여론을 조성하고 정권을 유지해 왔다. 이승만의 자유당 계열부터 공화당, 민정당으로 쭉 이어져 왔다.

비상계엄을 내란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은 마지막 발악 내지 절규일 뿐이라고 본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기 전에 군 쪽의 여러 사람들이 “계엄 지시를 받았고 실제 실행했다”고 자백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이걸 기각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인용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번 일로 해서 나라의 국격은 떨어졌다. 외교 정책 목표는 안보, 번영, 국위선양 등이 있는데 국위선양, 즉 한국의 위상은 확실히 떨어졌다. 다만 외국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을 높이 평가한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비상계엄이 있던 당일 국회로 모이고 이후 펼쳐진 ‘응원봉’ 시위로 ‘케이 데모크라시'(K-Democracy, 한국식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 같다.

여기에 다수가 20~30대 여성이라는 점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희망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윤 대통령 탄핵 전에도 반윤석열 시위가 상승 곡선을 그리지 못하고 평이하게 그냥 가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개인주의가 심화되니까 국가적 문제에 관심이 없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했다.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많아졌나 보다 싶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일. 즉 자충수를 두니까 다들 거리로 나오게 됐다. 그래서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정치적 무관심이 커졌다”는 제 생각이 잘못됐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 혼란 이후에도 국가의 위상이 바로 회복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의 K-Democracy의 열기가 일어나면 국가위상을 빨리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고 본다. 다음 정부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있다.

▲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이재호)
▲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이재호)

박인규 : 우리나라의 보수세력은 ‘민주’라는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민주적 정치로 국민 여망에 호응하기 보다는 이상한 정치를 하다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해방 이후 남한을 주도해 온 보수세력이 이렇게까지 된 상태에서, 이번 사태가 남남갈등의 분수령이 될 수 있을까?

정세현 : 6.25 전쟁 이후 보수 세력이 50% 이상이었다. 그래서 진보 정권들이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진보 정부에서 대통령 급이 적극적으로 보수층들을 만나고 설득하면 나름 그것이 통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두환 정부 때도, 물론 그 정부가 보수는 아니지만, 손재식 장관 때였던 걸로 기억이 되는데 김동길, 리영희 교수 등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여론 지도층 인사들을 남북 대화 사무국 회의장에 초청해서 “지금 남북 관계가 이렇게 가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풀어나가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국가 기밀을 누설한 건 아니고.

이 때 리영희 교수가 “정부가 이렇게 나오면 우리가 앞으로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비판하기도 어렵게 됐다”고 이야기하더라. 정부가 상대편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면 분명히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선을 그어 놓고 “저것들은 그냥 습관적으로 반대하는 놈들이니까 어쩔 수 없어, 없애자”는 식으로 갈 것이 아니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논리가 아니라 성의를 보이고 소통을 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얘기인데 그때 장관급 회담을 많이 했다. 제가 임기 2년 5개월 하는 동안 각종 각급 회담을 95번 했는데, 회담 끝나고 나면 제가 여야 당 대표들을 찾아가 직접 설명을 했다. 그 때 이회창, 박근혜, 박희태 등 주요 정치인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을 만나서 설명을 하면 그래도 좀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 설명을 하면서 “사실 언론에는 다 설명 못하지만, 이 정도는 대표님께 보고를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면 대부분 다 “알았다, 잘해라” 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더라. 정부가 해야 할 도리를 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런 정치 문화를 더 많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치인들끼리 갈등을 줄여야 국민들 간의 갈등, 사회 전체의 갈등도 조금이나마 누그러질 수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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