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들 민주당 행태에는 할 말 없나
중앙당 없애야 민주주의 복원된다
민주당, 탄핵소추 하고 또 해보라
“지난 1년간 회원(전 국회의원)들의 의견 수렴과 학계와의 공청회 등을 통해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제왕적 대통령 권한 분산, 국회의 민주성 강화를 위한 양원제, 지방분권 신장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헌 초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정치권에서 이를 적극 반영해 주기를 요청 드린다.”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가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선(先) 개헌, 후(後) 대통령 선거’를 제안하면서 제시한 주요 개헌 내용이다. 여·야 원로 여럿이 기자회견에 참석해서 발표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들 ‘원로’들의 뜻이 거의 전적으로 반영된 회견이고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주 유감스럽다. 정국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앞세웠어야 하는 것 아닌가?
원로들 민주당 행태에는 할 말 없나
민주당의 의정 횡포는 21대 국회 때부터 시작됐고, 지금 절정에 이르렀다. 그 배경에 버티고 있는 사람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그는 도덕성·정직성 등에서 도저히 리더라고 할 수 없을 만큼의 전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다양한 범죄혐의로 재판에 회부됨으로써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진 상황이다. 민주당은 이런 이 대표를 사법적 징벌로부터 구해내 대통령을 만들겠다고 대의민주제 파괴행위를 거듭한다(내가 보기엔 그렇다).
원로들은 대한민국 의회정치의 산 증인들이다. 민주당 이 대표와 그가 이끄는 정당의 이런 행태를 자신들이 정치하던 시절에도 본 적이 있는가. 옛날 권위주의적 통치 시대는 어쩔 것이냐고 따지지는 마시라. 그런 후진정치 시대를 자신들이 앞장서서 극복해냈노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민주주의를 짓뭉개도 된다고 보느냐를 묻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가 몇 시간 만에 해제한 일련의 과정을 두고 민주당은 즉각 내란으로 규정했다. 첫 번째 탄핵소추 결의에 실패하자 바로 또 발의를 해, 국민의힘 일부 의원의 조력을 받아가며 기어이 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는 아예 윤 대통령을 ‘내란 수괴’로 몰았다.
이름이 잘 알려진 유력 언론들이 잽싸게 호응해서 윤 대통령을 내란죄인으로 몰아세우며 그 혐의를 입증해줄(?) 이야깃거리를 발굴해 엮어내기에 바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발휘됐던 그 기민함이다 (대한민국 언론사와 그 기자들의 변신술에는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물론 행세깨나 한다는 일부 언론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도대체 사법적 판단을 받기도 전에 ‘내란 수괴’로 단정하는 근거는 뭔가?
형법 제87조(내란)의 명문 규정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어디에 해당하는가? 대통령이 헌법에 정해진 권한을 행사하고, 헌법이 정한 대로 해제한 것이 왜 ‘내란’이 되어야 하는지부터 설명해줄 일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지휘 아래 탄핵소추를 했으면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리는 게 당연한 순서일 텐데 무슨 자격, 무슨 권한이 있어서 서둘러 ‘내란 수괴’로 규정하는지에 대해서도 국민에게 해명해야 한다.
중앙당 없애야 민주주의 복원된다
민주당은 그간 장관, 검사, 방송통신위원장에다 감사원장까지 대상으로 하는 무제한 탄핵소추전(戰), 특검전(戰)을 전개했다. 노골적으로 내각과 정부기관들의 무력화를 획책한 것이다. 이야말로 ‘국가권력을 배제하고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의석수를 이용한)폭동을 일으키는’ 행위가 아닌지 궁금한데 민주당 의원들과 극렬 지지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헌정회의 여·야 원로라는 분들, 이런 정당, 당 대표, 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전에도 본적이 있나요?
물론 개헌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되긴 했다. 다만 원로 정치인들이라면 일의 선후는 가릴 줄 알아야 한다. 야당의 폭주를 저지하고,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 대해 순리적으로 대응할 것을 먼저 촉구해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개헌의 내용과 관련해서도 고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도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말하는가?
대통령중심제의 종가는 미국이다. 235년 이상 그 제도를 이어오고 있다. 그렇지만 언제나 순조롭게 운영돼 온 것은 아니다. 만약 미국이 연방국가가 아니고 정당체제가 느슨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제의 운명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여타 국가들이라고 순탄했을까. 대통령제가 무난히 이어지는 나라도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집권세력이 임기연장의 유혹에 끌려 정변과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예도 적지 않다.
우리는 그간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5년 단임의 대통령제가 정착단계에 들어섰다고 여길만한 시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변고가 두 번이나 닥쳤다. ‘제왕적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 ‘제왕적 국회와 이를 장악한 제왕적 야당 대표’ 때문에! 지금은 대통령제의 위기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강력한 중앙당체제를 가진 정당과 대통령중심제는 공존하기가 어렵다. 대통령 선거 다음날부터 다시 정당간, 이념집단간의 권력투쟁이 전개된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상시화하는 것이다.
이제는 대통령 1극 체제에서 다극체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 오스트리아식 2원집정부제나 순수 의원내각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대통령제를 유지해야 하겠다면 지금과 같은 중앙당 중심의 정당체제를 벗어던지는 게 우선과제다. 중앙집권제적 정당체제에서는 중앙당이 거대한 권력기관화한다. 정당간 정치세력간의 격렬한 권력투쟁은 불가피하다.
민주당, 탄핵소추 하고 또 해보라
민주당의 예에서 배운 것이지만 국회나 국회의원에 대한 행정부의 대응력 혹은 대항력 확보도 개헌의 주요 과제가 돼야 한다. 국회의원들이야 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의 터무니없이 비대해진 권력을 덜어내기 위해 불체포특권·면책특권을 폐지하고 정당과 국회의원들의 행위에 대한 행정·사법부의 이의 제기권을 제도로서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게 싫으면 대통령중심제를 포기하면 된다.
그 이전에 할 일이 있다. 과도하게 민주당과 이 대표에 실린 권력을 스스로 내려놔야 한다. 중우정치·폭민정치·포퓰리즘 정치를 극복하고 숙의(熟議)민주정치에로 나아가기 위한 제1조건이 그것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협박도 멈추지 않으면 안 된다. 탄핵과 특검의 남발이 바로 국정 파괴행위다. 국회를 주도하는 정당이 폭력적 수단을 구사해서야 되겠는가.
한 권한대행은 야당의 탄핵위협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괄목상대(刮目相對)다. 민주당의 이 대표가 일단은 봐주겠다고 하더니 양곡법 등 민주당이 강행처리한 6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한 대행이 행사하자 즉각 탄핵하겠다고 압박했다. 그러다 내란특검법·김건희 특검법을 24일까지 공포하면 봐주겠노라고 선심을 썼다. 한 대표가 이 협박에 넘어가지 않으니까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내란 대행 한 총리’에 대한 탄핵 절차를 바로 개시해 내란의 잔불을 진압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민주당 당직자들의 교만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내란 잔불’이라니! (민주당은 다시 헌법재판관 후보 3명에 대해 26일까지 임명하는지 지켜본 다음 발의하겠다며 일단 보류했지만 한 대행이 이에 굴복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정부가 마비될 정도로 남발하라고 국회에 공직자 탄핵소추권이 부여된 건 아니다. 한 대행이 자기들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무회의가 마비되는 사태를 초래하는 정당이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킨 후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법안을 자동발효하게 하는 것은 정당독재다. 헌법상의 의회와 정부 관계가 해체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탄핵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위헌이라면 그 책임은 민주당 지도부의 몫이다.
한 대행이 소신껏 업무를 보다가 탄핵 당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위대한 결단이 된다. 언론들이 ‘세계가 놀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복원력’운운하면서 ‘탄핵’을 외치는 집회에 찬사 보내기 바빠하던데, 진정한 민주주의 복원력이 어떻게 발휘되는지를 한 대행이 알려주시라.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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