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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탄핵 집회 이색 깃발들은 ‘제3의 세력’, 민주당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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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집에누워있기연합’, ‘전국 치즈냥 연구회’.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응원봉만큼이나 주목받았던 재치 있는 깃발들. 언론은 깃발 문구가 보여주는 해학성에 주목했다. 사회학자 신경아 한림대학교 교수는 그 재기발랄함 속에 숨어있는 결연한 태도를 읽어냈다.

“‘우리는 윤석열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도 아니야. 우리는 어떤 특정 정치 세력이 아니야. 우리를 민주당으로 보지 마’라는 걸 보여주려 한 것이다. 제3세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신 교수는 특히 이번 집회에서 거대 정치 세력으로 급부상한 청년 여성들에 대해 “공이 어떻게 튈지 아무도 모른다”며 “만약에 민주당이 계속 반여성 기조로 간다? 그럼 여성들은 돌아설 것”이라며 “여성계는 이미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못지않게 반여성 기조로 흘러가고 있는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는 “민주당은 자신들의 메시지에 동조해 주고 자신들이 원하는 광장을 만들어 줬을 땐 환호한다. 그런 그들은 여성의 요구를 얼마나 들어주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은 모든 민주주의 운동의 바탕”이라며 페미니스트와 민주주의자를 분리시키려는 민주 진영 내 움직임을 꼬집었다.

신 교수는 이번 집회 특징 중 하나인 ‘비폭력성’이 다수 여성의 참여로 인한 여성성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여성의 시위는 비폭력이어야 해’ 이렇게 재단하기 시작하면 여성이 정치 세력화할 수 있는 역량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동덕여대 학생들의 집회가 폭력성을 띠었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선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다수가 분노하기 시작하면, 그리고 그 분노가 누적된 것이었다면 일정한 파괴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나는 동덕여대 사태를 폭력으로 정의하는 데 매우 반대한다. 동덕여대 사태는 기성세대가 학생들을 굉장히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본 결과라고 본다”고 했다.

다음은 신 교수와 지난 18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신 교수 사무실에서 나눈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동덕여대 사태와 윤석열 탄핵 집회에 대한 비교 분석과 더불어, 민주당과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해 두루 짚었다. 지난 편에서는 여성 운동과 보수 정권 백래시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전편 보기 : “윤석열, 페미니즘 장벽 무너뜨리고 보편화시킨 일등 공신”)

▲신경아 한림대학교 교수. ⓒ프레시안(박상혁)
▲신경아 한림대학교 교수. ⓒ프레시안(박상혁)

“동덕여대 사태를 ‘폭력’으로 정의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윤석열 탄핵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민주주의의 보루’라며 칭송받고 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동덕여대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비난받고 있다. 이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비폭력과 폭력의 차이로 봐야 하나.

신경아 : 동덕여대 사태와 관련해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다. 동덕여대 사태는 학교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다. 학교 측이 남녀공학 전환 문제 전부터 계속해서 학생들을 무시하고 권위주의적인 행태를 보였고, 그래서 학생들이 터진 것이다. 갈등이 불거졌을 때 그것이 제도화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억누르는 권위주의가 행태가 나타나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폭발해 버린다. 그런데 그 폭발력이 강렬하다. 지금 폭발의 주체가 특히나 열정 넘치는 20대 청년들 아닌가.

동덕여대 사태를 언급할 때 항상 ‘폭력’이라는 표현이 따르는데, 나는 그 정도로는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명 피해도 없었다. 다수가 분노하기 시작하면, 그리고 그 분노가 누적된 것이었다면 일정한 파괴가 나올 수밖에 없다. 기물이 깨질 수 있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충돌이다. 동상 테러? 이화여대에서도 초대 총장이었던 김활란 동상에 계란 던지고 래커칠 했다. 왜 그땐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충돌을 막을 칼자루를 누가 갖고 있었나. 학생이 아니라 학교다. 학생들이 계속 소통하자고 나오라고 했는데 나오지 않은 게 누구인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방법이 없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 강자가 나오지 않을 때 약자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나는 동덕여대 사태를 폭력으로 정의하는 데 매우 반대한다. 동덕여대 사태는 기성세대가 학생들을 굉장히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본 결과라고 본다.

프레시안 : 많은 이들이 이번 탄핵 집회가 비폭력으로 진행된 이유가 여성의 참여가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분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신경아 : 여성이 비폭력이면, 남성은 폭력인가? 그럼 남성들은 집회 나오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러한 이분법에도 반대한다. 이런 젠더 이분법은 서로에 대한 모욕이다. 그리고 ‘여성의 시위는 비폭력이어야 해’ 이렇게 재단하기 시작하면 여성이 정치 세력화할 수 있는 역량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여성들도 어떤 경우에는 폭력이 필요하다. 방어하기 위한 폭력은 필요하다. 수많은 여성이 젠더 폭력에 희생당하고 있는데, 여성은 비폭력주의자니까 맞고만 있어야 하나. 미투가 한창일 때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에게 다그쳤던 질문이 ‘왜 너는 저항 안 했냐’, 가정폭력 피해자들한테도 ‘왜 맞고만 있었냐’ 아니었나.

여성이 나와서 비폭력적이었다기보단, 집회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계엄 옹호 세력들이 폭력 문제를 트집 삼아서 걸고넘어질까 봐 조심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동덕여대 재학생들이 11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운동장에서 '공학전환 반대한다', '민주동덕 지켜내자'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덕여대 재학생들이 11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운동장에서 ‘공학전환 반대한다’, ‘민주동덕 지켜내자’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동덕여대 사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사태의 원인이 학교 본부 측의 권위주의적 태도에 있다고 했지만, 남녀공학 전환 이슈에 대한 학생들의 상당함 거부감이 있었던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신경아 : ‘여대가 필요한가’ 이 문제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여대가 몇 개 더 있지만 일단 동덕여대만으로 좁혀 이야기하면, 동덕여대에 입학한 학생들은 여자 대학을 선택해서 온 것이다. 보통 ‘성적 맞춰 가는 거 아니냐’ 하는데, 동덕여대와 비슷한 수준에서 갈 수 있는 공학 대학 선택지가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그중에 굳이 동덕여대를 골라서 간 것이다. 동덕여대 학생들 상당수가 여자 대학이 가진 장점을 보고 간 것이다.

만약 아무도 여대를 선택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공학으로 바꿔야 하겠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여대를 선택하고 있다면 그 교육에는 수요가 있는 것이다. ‘수요자 교육’,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란 말 참 많이 하지 않나. 학생을 중심으로 놓고 교육을 생각해보자. 학생들이 선택한 여자 대학을 이렇게 함부로 없애도 되는 건가? 이 중요한 문제를 밀실에서 논의했다는 것 아닌가. 반민주적인 행태다. 그래서 학생들이 분노한 것이다.

대학 사회의 일원으로서 말하자면, 대학은 특별한 공간이다. 사회 밖으로 나가면 오만 종류의 이상한 사람들, 이상한 일들이 많은데, 그런 현실에 부딪히기 전에 민주주의를 미리 학습하고 훈련하는 공간이다. 초‧중‧고등학교 때는 입시에 매달리느라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민주주의 학습 공간이 바로 대학이다. 그런 곳에서 교육 주체인 학생들이 자기 결정권을 박탈당하는 상황에 처했는데, 그래서 표출하는 분노는 매우 정당한 것 아닌가.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회는 좀 더 다양해져야 한다. 대학의 다양화 차원에서라도 여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 계엄 사태만 해도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꼽는 서울대의 법대 나온 사람들이 지금 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놓지 않았나. 특정 고등학교 또는 특정 대학의 특정 전공 코스를 밟은 사람들만 모인 세계에서는 반대를 못 한다. 그 안에 서열화가 분명하고, 서열의 힘이 매우 강력할 수밖에 없다. 그 질서를 흐트러뜨리려면 다양해지는 수밖에 없다. 나는 한국 사회의 낮은 생산성이 다 다양성의 부족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이 기회에 다양한 교육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낮다. 성평등 지표를 보면 여전히 성별 격차가 큰데 해소가 안 되고 있다. 여자 대학이 이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갈 주체들을 키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왜 여대에만 질문하는가. ‘여대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나는 이렇게 돌리고 싶다. ‘공학대학에서 여성의 지위는 어떤가. 공학 대학은 성평등한가?’. 총장‧보직 교수‧교수 비율 다 남자들이 높다. 그런데 강사 선생님들 가운데는 요즘은 여성이 많다. 그리고 학생은 남녀 반반이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무의식적으로 ‘우리 사회는 남자가 위야. 남자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면화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대학이 딥페이크 온상으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공학 대학에서 과연 성평등 교육을 제대로 했는가. 남학생들의 불균형한 젠더 의식을 교정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을 하고 있나. 결코 아니다. 그러니까 여학생들이 여대를 가는 것이다. 나 같아도 여대에 갈 것 같다.

“민주당, 여성 표는 원하는데 페미니즘 싫어해…여성들, 돌아설 것”

프레시안 : 지금 청년 여성들이 광장에서 보여준 거대한 정치적 에너지가 어떻게 흘러갈지 좌우할 중요한 기로에 있다. 이 흐름을 어떻게 해야 잘 끌어나갈 수 있을까.

신경아 : 청년 여성들은 이미 잘하고 있다. 누군가 앞길을 막지만 않으면 된다. 결국 우리 삶이 바뀌려면 제도가 바뀌어야 하니 정치와 정책을 담당하는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거대 양당 중에 여당은 망하기 직전이니, 아무래도 민주당 역할이 막중하다. 그런데 과연 민주당은 지금까지 여성 운동 진영과 어떻게 관계 맺기를 해왔나. 시민사회에서는 이제 여성 운동은 힘이 세져서 여성계 눈치를 많이 본다. 그런데 민주당과 여성 운동 진영 사이에는 많은 불화가 있어 왔다고 본다. 문제가 뭘까. 민주당은 여성의 표는 원하는데, 페미니즘이 싫은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페미니즘은 생물학주의가 아니다. 성 불평등의 해소라는 과업을 실천해 나가려는 움직임인데, 그게 민주당 내에 최근에 매우 정체돼 있다. 문재인 정부 때도 한 게 많지 않다. 하도 스토킹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으니까 스토킹방지법 만들고 그런 거지, 별로 한 일이 없다. 그런 민주당이 지금 와서 ‘광장에 있는 청년 여성들을 보니 놀랍다. 감동스럽다’고 한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메시지에 동조해 주고 자신들이 원하는 광장을 만들어 줬을 땐 환호한다. 그런 그들은 여성의 요구를 얼마나 들어주고 있는가. 그것을 판단하는 단적인 잣대가 정당 내 여성 정치 세력을 얼마나 조직적으로 키우고 있느냐, 다르게 말하면 ‘페미니스트 블록화’인데, 민주당은 그런 노력이 매우 불충분한 상황이다.

2022년 대선 이후에 민주당 청년 여성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한 4~500명 정도 왔다. 그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설명했는데 다들 놀라더라. ‘페미니즘이 이런 거였냐’고. ‘우리가 알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내가 더 놀랐다. 민주당의 지지자들조차도 페미니즘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페미니즘을 아마 ‘워마드’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대학에서도 여성학 교육이 안 되고, 그런데 민주 정당이라고 하는 정당의 당원 교육에서조차 그런 내용이 없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여성 의제를 개발하고 수렴하고 개발할 의지와 역량을 가진 집단을 키워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이른바 보수 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 정당의 대표 격으로 간주되는 민주당 내에서도 반페미니즘 기류가 상당히 강한 것 같다.

신경아 : 여기 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그 안에 1만 개의 페미니즘이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페미니즘의 갈래가 정말 다양하다. 그런데 워마드, 메갈을 다 하나로 묶어버리니까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생긴다고 본다.

86세대가 주축인 민주당이 지금까지 페미니즘에 대해 가져왔던 생각은 유시민 작가 말대로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는 수준이다. 이들의 의식 속에 여성 운동은 ‘부문 운동’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서구 부르주아 운동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걸 깨뜨리겠다. 여성 운동은 부문 운동도 부르주아 운동도 아니다. 지금 여성 운동은 그 어떤 운동 아래 들어갈 수 없는, 가장 높은 수준의 ‘프라이머리 아젠다’다.

나는 전태일을 보고, 똥물 투쟁으로 알려진 동일방직 투쟁 보고 여성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나뿐 아니라 많은 여성 운동가가 대개 여성 노동자 운동에서 출발한 사람들이다. 87년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세력 가운데 여성 운동 세력이 굉장히 중요한 세력이었고, 또 그 가운데 핵심이 여성 노동자 운동이었다. 결코 부르주아 운동이 아니란 이야기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이제 페미니즘을 부문 운동이라고는 안 하는데, 아예 분리시킨다. ‘너 페미니스트야? 그럼 민주주의자는 아니겠네, 노동운동가는 아니겠네’ 이런 식이다. 생물학주의에 입각해서 여성만 챙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내에 아주 소수의 일탈적인 집단만 생각하고 페미니즘을 낙인찍고 고립시키고 있다. 그런데 지금껏 여성들은 모든 반폭력 운동을 해왔고, 통일‧평화 운동에도 가장 앞서왔다. 지금은 환경을 넘어 생태 운동으로까지 가고 있다.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쭉 뻗어나간다. 내가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서 모든 약자와의 연대로 나아가는 게 페미니즘이다. 그리고 비주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그 비주류들이 불편해하는 그것들을 바꿔나가는 게 철학에서 말하는 ‘진보’다. 진보를 향한 운동과 페미니즘을 분리시키면 안 된다.

페미니즘은 모든 민주주의 운동의 바탕이다. 예를 들어 한 남성이 밖에서는 ‘민주화 투쟁, 노동 운동’ 외치다가 집에 와서는 부인에게 ‘네가 밥 차리고 설거지해’라고 하면, 그 사람을 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은 차별로 만드는 수많은 기제들에 대해 반대하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문제의식인데, 그 시작점이 젠더인 것이다. ‘여성은 광장 어디에나 있었다’고 말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여성은 민주주의의 현장 어디든 구석구석에서 싸워왔다.

프레시안 : 응원봉 집회 문화가 주목받으면서 아이돌을 비롯한 팬덤의 정치 집회 참여가 고무적인 현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선 그렇지 않아도 정치권의 병폐로 꼽혀왔던 팬덤 정치가 더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민주당 내 ‘개딸’ 현상도 그런 이유로 비판받아 왔다.

신경아 : 아까 대선 직후 민주당 지지자들 대상으로 페미니즘 강연한 적 있다고 했지 않나. 내가 그때 강연 막판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민주당은 분명히 당신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고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절대로 흔들리지 말고 판단을 잘해야 한다”고. 최근 유입된 2030 여성들이 민주당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주류 세력이자 이른바 ‘노무현 세대’인 4050 세대가 그들을 흔드는 것이다. 4050 주류 집단 가운데 반성평등주의자로 보이는 이들이 많은데, 그들 세력이 ‘개딸’의 플랫폼을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민주당에 그래선 안 된다고 이야기해왔는데, 지금 지도부가 과연 청산 의지가 있는지는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민주당 내에서 청년‧여성 의제 담당하신 분들도 22대 총선 때 다 조국혁신당으로 넘어간 걸로 안다. 그래서 총선 끝나고 내가 어디서 발표할 때 ‘이제는 우리가 민주당만 바라보지 말자. 다른 당도 좀 보고 투표를 좀 분산시켜서 우리 민주당 안 찍어줄 거라고 한 번 운동을 해보자’고 말했다. 동의하는 분들이 정말 많았다. 윤석열이 반여성 정책만 안 했으면 총선 전에 이미 그렇게 운동을 하려고 했다. 민주당이 김준혁 같은 반여성 후보만 안 내보냈어도 나는 200석 넘겼다고 본다. 이번 총선 투표율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안 나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집회에서 응원봉 말고 내가 주목했던 것은 다양한 깃발들이었다. ‘전국 집에누워있기연합’, ‘전국 치즈냥 연구회’, 그런 깃발이 나오게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윤석열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도 아니야. 우리는 어떤 특정 정치 세력이 아니야. 우리를 민주당으로 보지 마’라는 걸 보여주려 한 것이다. 제3세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내가 만나는 많은 여성이 그렇게 생각한다. 민주당은 정말 죽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찍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민주당이 계속 반여성 기조로 간다? 그럼 여성들은 돌아설 것이다. 그리고 여성계는 이미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청년 여성이라는 공이 어떻게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에 촛불 행동 김민웅 논란도 여성들이 굉장히 재미있게 싸웠지 않나. 집회는 촛불행동이 주최하는 데로 가지만, 돈은 퇴진운동본부 쪽에 내고, 이렇게 현명하게 싸우고 있지 않나.

그리고 하나 더. 팬덤은 엄청난 힘을 가진 이들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우상에게 돈 모아 선물 바치고 추종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자기들이 그 우상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트럭 시위, 화환 시위 많이 하지 않나. 팬덤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무서워해야 한다. 이번에 뉴진스, 아이유가 집회에서 ‘선결제’한 것도 그 때문인 것 아닌가. 그들을 돌아서게 해선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이 아주 무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싶다.

프레시안 : 이번 집회에서 청년 여성이 크게 주목받으면서 함께 광장을 지키고 있었던 성소수자들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데 대해 섭섭해하는 분위기도 있다.

신경아 :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 가운데 약간의 갈등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페미니스트들 때문이야’라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서운함은 정치권을 향해야 한다. 지금 여성들이 주목받은 것은 정치권 남성들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고, 그 시야에 아직은 성소수자가 안 보였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부턴 그들의 눈에 성소수자도 보이게끔 여성들은 같이 싸울 것이다. 장혜영 정의당 전 의원도 말했지만 이제 22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밀어붙일 때가 됐다.(끝)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일인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촛불집회에 '전국낭만해적단, 무적의 오빠들, 그냥 고양이 자랑하려고 깃발만든사람, 전국아늑한쓰레기통민연합, 생파못연대' 등등 이색 단체의 이색적인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일인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촛불집회에 ‘전국낭만해적단, 무적의 오빠들, 그냥 고양이 자랑하려고 깃발만든사람, 전국아늑한쓰레기통민연합, 생파못연대’ 등등 이색 단체의 이색적인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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