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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보다 빨랐던 박장범 KBS의 ‘임명동의제’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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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범 KBS 사장이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박장범 KBS 사장이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박장범 사장 취임 이후 KBS 뉴스가 일부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극단적 성향의 인사가 두드러진 박민 사장 시절과 달리 ‘무색무취’가 주요 인사 키워드로 꼽히기도 한다. 동시에 KBS 내부에선 근본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은 지금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제작자율성 보장을 위한 기초 장치조차 되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KBS ‘뉴스9’는 지난 17일을 전후해 12·3 내란사태 등 권력비판적 단독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단순 전달하며 사실상 축소하거나 적극적으로 취재하지 않았던 때에 비하면 전향적 변화로 볼 수 있다. ‘뉴스9’는 17~19일 내란사태 주동자로 지목된 인사들, 23일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 관련 단독 보도를 앞단에 배치했다.

KBS 기자협회가 요구해온 탄핵 관련 특별취재팀(TF)은 지난 16일께 구성됐다. 노태영 KBS 기자협회장은 24일 통화에서 “박민-최재현-김성진 체제 뉴스가 형편 없었다는 건 주관적, 객관적으로 입증이 됐고 그에 대해선 다들 ‘공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고, 새로 국장이 된 분들도 최소한 그 정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며 “빨리, 어떻게, 뉴스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와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서야 평범한 뉴스로 들어섰다”며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는 주요 보도·제작 책임자들이 무난하다는 평가와도 연결된다. 이재환 보도시사본부장, 정인성 통합뉴스룸국장(보도국장), 이재정 교양다큐센터장(옛 제작1본부장) 등은 전임자 대비 정치적 색채가 짙지 않다. 직전 장한식 보도본부장과 최재현 통합뉴스룸국장은 과거 KBS 보도를 자성하는 기자협회를 압박하며 ‘KBS기자협회 정상화모임’을 결성했다. 이제원 전 제작1본부장은 5·18 민주화운동,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을 폄훼했다. 이들 모두 박민 체제 KBS 요직에 오른 직후 제작자율성 침해 문제를 불렀는데, 현 책임자들은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박민 사장 때 KBS 라디오 진행자로 발탁된 고성국 평론가가 윤 대통령 내란사태를 옹호했다는 비판 속에 최근 하차한 일도 변화상으로 꼽힌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그러나 대통령 탄핵에 이은 조기 대선 가능성이 점쳐지는 국면에서 핵심적인 취재 부서 인사가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도 있다. 곽희섭 신임 정치외교부장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출입하며 대통령에 우호적인 보도를 해왔다고 평가 받는다. 2013년 9월 청와대가 미공개 동영상을 공개했다는 리포트에서 박 대통령을 “아이돌 그룹 못지 않은 인기” “감춰뒀던 중국어 실력” 등으로 띄워준 기사가 일례로 꼽힌다. 복수의 KBS 구성원들은 정국이 급변 중이고 평사원 인사를 앞둔 지금보다, 향후 대선 국면에서의 KBS 보도를 살펴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KBS의 한 기자는 “최재현 국장 체제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며 “상대적으로 업무 환경이 나아졌다고 느낄 여지는 있으나 그게 더 위험하다. 뉴스의 전반적 방향은 안 바뀌었는데 조금 편안하게 느껴지는, 무리해서 비유하면 일제시대 ‘문화 통치’ 때처럼”이라고 말했다. 그는 “‘탕평의 선’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 것 같다”며 “계엄보다는 명태균 (보도) 쪽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짚기도 했다. 실제 윤 대통령 부부 공천개입 의혹 등 명태균씨 관련 보도는 KBS 창원총국에서 주력하고 있다.

그는 이어 “일단 국장이 과감하게 임명 동의를 거쳐야 한다. 임명동의는 단순히 투표가 아니라 국장이 보도국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 뉴스를 어떤 방향으로 편집할지 구성원들에게 밝히고 구성원들이 동의를 표하거나 반대되는 지점을 가감 없이 얘기해 소통하는 과정”이라며 “임명동의제를 거치지 못하겠다면 보도위원회를 열어 평기자들의 문제 의식이라도 청취를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KBS의 제작 기능 회복도 시급하지만 개선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다. 박민 전 사장 재임기인 1년여 간 KBS 내부에선 ‘더 라이브’ ‘역사저널 그날’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하루아침에 폐지됐고,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인사이트’ 불방 사태 등이 잇따랐다. 내란사태 이후 MBC ‘PD수첩’이 9%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두각을 드러낸 반면, ‘추적60분’은 3%대 시청률로 고군분투 중이다. ‘옥탑방의 문제아들’ ‘홍김동전’ 등 예능 영역에서도 상당수 프로그램이 사라지면서 제작 역량 회복이 쉽지 않을 거란 우려도 전해진다.

관련해 KBS의 한 구성원은 “전체적으로 ‘KBS 디스카운트’가 있다. 그건 다 같이 움직여야 되는 거지, 쉽게 회복되기 쉽지 않다”라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난한 듯한 인사 뒤에는 ‘임명동의제 무력화’와 ‘박민 체제 계승’으로 요약되는 문제도 남아 있다. 박 사장은 취임 첫날인 10일 방송편성규약과 단체협약에 따라 임명동의를 거쳐야 하는 주요 취재·제작 국장을 일방적으로 임명했다. 박민 전 사장은 임명동의 대상을 공석으로 두다 취임 2개월 여 만에 임명했는데, 박장범 사장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임명동의제를 무력화했다. 박민 사장 체제에서 시작된 KBS 노사 간 ‘무단협’ 사태도 장기화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구성원 절대 다수가 반대해온 ‘박민표 조직개편안’이 시행됐다. 방송 매체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 받은 기술조직 통폐합이 이뤄졌고, 시사교양PD 등이 시사·보도물을 만들어 온 ‘시사교양국’이 ‘교양다큐국’으로 바뀌었다. 시사교양 PD는 윤석열 정부 KBS의 ‘1호 낙하산 사장’으로 불린 박민 사장 체제에 강하게 저항한 직군으로 꼽힌다.

특히 ‘밀실’ ‘불통’ 비판 속에 KBS 여권 이사들 주도로 임명된 김우성 부사장, 민필규 전략기획실장 등 KBS의 핵심 임원들의 ‘노조 탄압’ 이력도 우려를 부르고 있다. 김우성 부사장은 언론노조 KBS본부에 의해 2015년 조합원 해고 사태의 주역이라 비판 받아왔다. 민필규 실장은 직전 이사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동안 노조 부착물을 무단 훼손한 혐의로 고발 당해 지난 9월 약식기소됐다.

김세원 KBS PD협회장은 박장범 사장 체제를 두고 “인사에 대해선 생각보다는 무난하다. 군데군데 눈에 안 띄는 곳에 정치적으로 편향적인 사람들을 많이 넣어줬다. 일종의 ‘진영 보은 인사’”라며 “국내 정세를 보며 인사 자체도 물타기 되어 있지 않나”라고 평가했다. 임명권자인 윤 대통령이 내란사태 피의자이자 탄핵심판 대상이 된 지금, 박 사장 스스로 “어떻게 하면 자신이 드러나지 않을까” 연구하는 것 같다는 해석이다.

▲2024년 12월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들이 박장범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2024년 12월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들이 박장범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박 사장 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관건이다. 박 사장을 임명제청한 KBS 이사회 구성과 그 결정, 이사진을 임명한 방송통신위원회 체제와 의결에 대한 법정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박 사장 인사청문회에선 대통령실이 사장 인사 관련 결정을 전임 사장에게 사전 통보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KBS 내부의 기자협회, PD협회, 방송기술인협회 등 직능단체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KBS 같이노조 등은 박 사장이 부적격하다며 그의 사퇴를 요구해왔다.

김 협회장은 “(박 사장) 본인이 KBS 명예를 실추시킨 부분은 원죄처럼 안고 가야 한다”라며 “방통위 자체의 위법성, 방통위 통해 추천된 KBS 이사들의 적법성도 법적으로 다투는 과정에서 임명되었기에 임기를 보장 받은 사장들과는 다르지 않나. 잠정적 사장이지 온전한 사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KBS본부는 매주 박 사장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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