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방 사형수 40명 중 37명의 형량을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으로 변경하는 감형 지시를 23일(현지 시각) 내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국은 테러와 증오에 의한 대량 살인의 경우를 제외하고 연방 차원에서 사형제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며 “오늘 조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모두에게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형수 감형은 현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수다. 바이든 대통령의 조치로 사형을 면한 37명은 군인, 경찰관, 교도관, 동료 수감자 등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이들이다. 사형제 정보센터에 따르면 이들은 백인 남성 15명, 흑인 남성 15명, 라틴계 남성 6명, 아시아계 남성 1명으로 구성돼 있다. 1993년에서 2019년 사이에 형을 선고받은 이들이다.
◇ 테러·증오 살인 사형수 3명은 감형 제외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증오로 인한 살인, 테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형수 3인의 형량은 낮추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사형수 3명을 남겨둔 것과 관련 “테러와 증오에 의한 대량 살인이 아닌 경우 사형을 집행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살려두지 않기로 선택한 3명의 사형수 중 한 명은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에서 흑인 교회 신도 9명을 살해한 자칭 ‘백인 우월주의자’ 딜런 루프(30)다. 루프는 인종차별적 공격을 가했고 증오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연방 배심원단은 2017년에 루프에 사형을 선고했다. 루프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종신형을 선고받는 대가로 유죄를 인정하겠다고 제안했으나, 법무부는 사형을 구형했다. 루프는 현재 인디애나주 테레호트에 있는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연방 사형수 감방과 사형 집행실이 있는 곳이다.
두 번째 인물은 2018년 피츠버그 유대인 지역 사회 중심부에 있는 유대교 회당을 습격해 예배자 11명을 살해한 로버트 바워스(52)다. 그 역시 증오 범죄 혐의로 유죄를 받았다. 연방 배심원단은 지난해 바워스가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반유대주의 공격을 가했다며 사형을 결정했다. 바워스에 대한 사형 선고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처음 내려인 판결이다. 바워스 역시 종신형을 선고받는 대가로 유죄를 인정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법무부가 거부했다.
마지막 인물은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를 실행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조하르 차르나예프(31)다. 이 테러로 인해 관중 3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차르나예프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주도한 전쟁에 대한 보복으로 동생 타메를란과 함께 압력솥 폭탄을 설치했다. 2020년에 연방법원은 그의 사형 선고를 뒤집었지만, 미국 대법원은 2022년에 사형 선고했다.
◇ 바이든, ‘사형 찬성론자’ 트럼프 의식해 감형 결정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사형수에 대한 감형을 결정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의식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는 첫 임기 동안 연방 사형수 1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또한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 임기를 다시 시작하자마자 사형 집행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것은 물론 마약과 인신매매를 포함한 범죄에 대한 사형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이 사형수 형량 변경을 통해 트럼프 취임 전 사형수의 목숨 구하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의 사면 및 감형을 변경하거나 뒤집을 수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치 일생에 걸쳐 사형제 관련 입장을 바꿨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의원일 당시인 1994년, 자신을 ‘사형 지지자’로 칭했다. 하지만 2020년 대선 운동을 펼치면서 연방 사형제를 종식겠다고 공약했다. 잘못된 유죄 판결, 사법제도의 인종적 불평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바이든 대통령 임기 중에 연방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대신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법무부에 연방 사형 집행에 대한 유예를 내리라고 지시했다.
바이든은 사형제를 지지하는 여론을 의식한 듯 “사형수 감형을 오해하지 말아달라”며 “저는 이 살인자들을 비난하고 그들의 비열한 행위로 인한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상상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겪은 모든 가족을 위해 애도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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