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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고타’ 송중기의 결심으로 이룬 뜨거운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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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개봉하는 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에서 주인공 국희를 연기한 송중기. 사진제공=하이지음스튜디오
31일 개봉하는 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에서 주인공 국희를 연기한 송중기. 사진제공=하이지음스튜디오

‘도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작품을 대하는 송중기의 태도에는 패기가 있다. 2008년 영화 ‘쌍화점’으로 데뷔해 어느덧 15년째 연기자로 살고 있지만 안주하지 않고 여전히 삐쭉 솟아난 호기심의 레이더망을 켜고 주변을 살피며 거침없이 그 안에 녹아든다. 패기와 호기심은 송중기의 얼굴에서 다양한 나이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31일 개봉하는 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감독 김성제·제작 영화사 수박)에서 송중기는 10대부터 30대까지의 한 인물을 소화한다. 이야기는 ‘커피의 나라’라는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머나먼 이국땅 콜롬비아에 뚝 떨어져 적응해가는 더벅머리 소년 국희의 연대기다. 2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중기는 영화의 국희처럼 작품에 갖는 기대와 각오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영화 출연을 결정하고 촬영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 매니저도 없이 처음 낯선 나라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풀어냈다.  

“원래 제작진이 사전 조사차 보고타에 가는 일정이었는데 남미에 가본 적이 없고 어디서부터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함께 따라갔다”는 송중기는 현지 타투숍에서 난생 처음으로 귀걸이를 해보고, 의상도 맞춰가며 국희라는 인물에 동화돼 갔다. 

1997년 대한민국을 떠나 콜롬비아 보고타에 도착한 국희(송중기) 가족의 모습.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1997년 대한민국을 떠나 콜롬비아 보고타에 도착한 국희(송중기) 가족의 모습.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 많았던 현지 촬영, 몸소 배운 것은

‘보고타’는 2015년 영화 ‘소수의견’을 연출한 김성제 감독의 차기작으로, 지난 2019년 말 콜롬비아 보고타 현지에서 크랭크인 했지만 마침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한 차례 촬영이 중단됐다. 제작진도, 송중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을 재개할 줄 알았지만 기약 없이 길어진 팬데믹 여파로 2021년이 돼서야 남은 촬영을 재개할 수 있었다. 변수가 많은 현지 로케이션 촬영에 재난이 겹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흔들림 없이 작품을 완성해 세상에 내놓는다. 

급박했던 당시 로케이션 상황을 회상한 송중기는 “촬영 중이었는데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나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길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며 “갑자기 불안했다. 영화를 준비하다가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엎어진 경험은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돌이켰다. 예상하지 못한 여유가 생긴 송중기는 그 사이 tvN 드라마 ‘빈센조’를 찍었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서도 “(‘보고타’ 촬영이 재개되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났다”며 “지금은 개봉한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송중기와 ‘보고타’의 인연은 사실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인이던 송중기를 발탁해 영화에 캐스팅했던 제작자(영화사 수박)가 시간이 흘러 ‘보고타’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이에 송중기가 다시 합류했다. 그는 “신인 때 제작사의 대표님을 처음 뵈었는데 그분이 가진 프로듀싱 마인드가 좋았다. 영화도 사람들끼리 하는 일이지 않나. 그런 부분이 제가 ‘보고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보고타’의 시나리오에는 콜롬비아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프로듀서의 경험도 녹아있다. 송중기는 그 부분에도 호기심을 느꼈다고 했다. 대부분의 촬영을 콜롬비아 현지에서 진행한다는 사실도 그를 자극했다. ‘보고타’는 현지 올 로케이션 촬영을 실현하면서 규모나 소재의 측면에서 한국영화의 외형을 확장했다. 안정적인 울타리를 떠나 낯선 나라에서 통제를 벗어난다는 사실이 송중기에겐 두려움으로 다가왔지만 한편으론 그를 설레게 했다. 

“콜롬비아 촬영이 주는 매력이 분명하게 있어요. 100% 올 로케이션 촬영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평소에 그런 도전에 끌리는 성격이에요. 콜롬비아 현장의 분위기 때문인지, 저의 기질이 그곳과 잘 만나서인지 모르겠지만 국희 캐릭터도 처음 시나리오보다 네 다섯 배는 뜨거워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콜롬비아 사람들이 흥도 많아요. 길가에서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추기도 하고요.(웃음) 한국 스태프들보다 콜롬비아 현지 스태프가 두 배는 많았어요. 지금까지도 연락하면서 지내는 분들도 있고요.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스며든 부분이 있죠.”

낯선 환경에서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의 작업은 송중기에게 새로운 자극이 됐다. 인터뷰 자리에서 송중기는 콜롬비아 현지 스태프들과 지내면서 생긴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한번은 현지 스태프들과 회식을 하는데 ‘한국 스태프들은 왜 그렇게 스트레이트해?’라고 묻더라고요. 아마도 우리가 지닌 위계질서, 나이 혹은 서열 같은 것들이 그들에게는 다소 딱딱하게 느껴졌나봐요. 콜롬비아 스태프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보면 서로 볼에 뽀뽀를 하고 ‘올라~’라고 말하면서 웃으며 일해요. 저도 회식 다음날부터 배우들에게 볼 뽀뽀를 시도해 봤어요(웃음). 역시 쉽지 않더라고요.” 

국희는 밀수업에 뛰어들어 점차 변해간다.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국희는 밀수업에 뛰어들어 점차 변해간다.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대부’를 떠올리면서 국희를 연기 

영화는 1997년 IMF 금융위기의 어려움 속에서 한국을 콜롬비아에 정착하는 국희와 그 가족의 이야기다. 국희가 처음 보고타의 땅을 밟은 이후 2008년까지 10여년의 시간을 다루는 ‘보고타’에서 송중기는 19살부터 30대까지의 변화를 차분하게 그린다. 1985년생으로 IMF 당시에 초등학생이던 송중기는 영화의 배경인 당시 분위기가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했다. 

송중기는 “저희 아버지도 사업을 하던 분”이었다며 “어릴 때 직접적으로 (금융위기를)느낀 부분이 있다. 김성제 감독님이 영화의 시기를 왜 그 때로 정했는지 이해가 됐고, 한국의 반대편인 남미의 콜롬비아로 배경을 설정한 것도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처음 국희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은 점차 꺾이고 변화한다.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송중기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1973년 영화 ‘대부’를 참고했다. 콜롬비아에서 밀수업으로 부를 축적한 박병장(권해효)와 그의 수하인 수영(이희준)이 머무는 한인 사회에서 국희는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데 이는 ‘대부’에서 마이클 꼴리오네(알 파치노)가 패밀리 비즈니스에 녹아드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말이다.

송중기는 “(‘대부’가) 대단한 작품이라 언급하기 조심스럽다”면서도 “감독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연기에 ‘대부’가 스며든 부분이 있다. 교과서적인 작품이지 않나. 처음에 비즈니스에 관심이 없던 마이클이 아버지의 사고로 비즈니스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와 국희가 한인사회의 실세가 된 표정을 연상지어서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처음부터 송중기가 ‘보고타’에 선뜻 출연을 결정한 건 아니었다. 출연 제안을 받을 때의 나이가 34살. 하지만 영화에서 19살부터 30대까지의 인물의 삶을 연기해야 하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런 송중기의 마음이 움직인 생각은 “더 나이 들기 전에 해보자”는 결심이었다.

“고! 해보자! 그렇게 영화를 받아들인 다음 관객에게 국희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게 할지가 큰 숙제였죠. 외형적인 모습만 바꿔서는 안 됐어요. 제가 잡은 포인트는 ‘국희가 현지에 잘 적응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국희가 영화에서 두 사람 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믿을 놈이 없구나’, ‘나를 믿어야겠구나’를 느끼지 않았을까요? 살아남으려면 내 더듬이를 세워야겠구나. 안타까운 부분은 ‘무능력한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라는 대사처럼, 어린애가 고생을 하면서 세상을 일찍 깨닫았다는 점이었어요.”

10대 소년부터 30대까지 한 인물의 변화를 연기하는 일이 부담스러워
10대 소년부터 30대까지 한 인물의 변화를 연기하는 일이 부담스러워 “처음에는 출연을 거절했다”는 송중기.​​​​​​ 사진제공=하이지음스튜디오.

● 나이가 들며 송중기가 깨닫은 것들

최근 송중기는 드라마 ‘빈센조’, ‘재벌집 막내아들’, 영화 ‘화란’, ‘로기완’ 등의 작품을 연달아 공개했다. 촬영 시기로 본다면 ‘보고타’가 가장 먼저이지만, 이후 촬영해 먼저 공개한 일련의 작품들에서는 송중기의 ‘취향’이 묻어난다. ‘빈센조’에서는 이탈리아 마피아의 일원으로 지략가의 면모를,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과거로 회귀하는 재벌가의 막내 손자 진도준의 치밀함을, ‘화란’에서는 지옥 같은 삶을 버텨내는 치건의 치열함을, ‘로기완’에서는 벨기에에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탈북자 기완의 절심함을 그려냈다. 일련의 캐릭터들은 ‘보고타’의 국희와 겹쳐치기도 한다. 

“기시감이 든다는 점에서는 저도 분명 우려가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취향의 작품들을 골랐을 테니, 제 기질이나 성향이 묻어났겠죠. 꼭 취향이 아니더라도 작품이 제 마음을 끌지 않거나 공감이 안되면 출연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비슷하다는 시선과 평이 있다면 그걸 맞닥뜨리고 새로운 도전을 할 것 같아요. 고여있는 건 너무 무서워서 새로운 걸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송중기는 활발한 작품 활동의 가운데 단란한 가정도 꾸리고 있다. 2023년 영국 배우 출신의 케이티 루이스 사운더스와 결혼한 송중기는 같은 해 6월에 첫째 아들을, 올해 11월에는 둘째 딸을 얻었다. 이번 영화는 개인적으로도 송중기에게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장모님이 콜롬비아 출신이라는 송중기는 “(‘보고타’ 개봉에)엄청 반가워하셨다. 아마도 스페인어를 잘했는지 지켜보실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면서 “한국에서 극장 개봉을 하면 자막이 없으니 나중에 OTT에 공개될 때 볼 것 같아 떨린다. 극 중에서 스페인어를 잘하고 싶었던 이유였는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첫째 아이를 낳고 거의 1년을 쉬었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더 바쁘게 살았는데 지금은 예전보다 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가열차게 작품을 해온 삶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요즘은 숨을 고르면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아이들이 금방금방 크더라고요. 첫째를 보면 벌써 깜짝깜짝 놀라요. 분명 둘째도 금방 클 것 같아요. 뭔가 주어졌을 때 책임감이 큰 성격이라서 아이들이 더 소중한 것 같아요.”

송중기는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는
송중기는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는 “가열차게 작품”을 해왔지만 “요즘은 숨 고르면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도 소중하다”고 달라진 모습을 이야기했다. 사진제공=하이지음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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