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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룸메는 여든 살…대학생, 싼 월세·노인, 외로움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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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동 집에서 최의광 씨와 박동현 씨가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성현)
이문동 집에서 최의광 씨와 박동현 씨가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성현)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의 한 아파트에 나이 차가 오십 년이 넘는 ‘룸메(룸메이트)’가 있다. 바로 최의광(80) 씨와 박동현(26) 씨다. 

두 사람은 서울시의 ‘한지붕 세대공감’ 사업을 통해 룸메이트로 맺어져 2년 반째 같이 살고 있다. 

한지붕 세대공감은 빈방이 1개 이상인 노인의 집에 대학생이 저렴하게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노인 고독감 문제와 청년층 주거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지난 2013년 도입됐다.

9월 7일, 가을 햇살이 베란다 식물에 반사돼 푸른 빛으로 거실을 채운 가운데 말끔한 셔츠에 겉옷까지 챙겨 입은 노신사가 소파에 앉아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다.

최의광 씨는 텔레비전의 클래식 전용 채널인 632번을 즐긴다. 한가로운 오후에 드보르자크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최 씨는 클래식 마니아이고 박동현 씨는 성악 전공생이어서 둘은 잘 통한다.

박 씨는 “할아버지께서 학교 수업에서 다루는 곡을 틀어두실 때도 있다”며 “두 배로 공부하는 셈이니 좋다”고 말했다.

최 씨는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 이렇게 클래식을 틀기 미안한데, 동현이는 음악인이라 부담이 없고 오해도 없다”고 말했다.

2013년, 최의광 씨는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한지붕 세대공감 홍보 포스터를 보고 곧바로 동대문구에 전화했다. 아들의 미국 유학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아들이 방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을 때, 한 재미교포가 아들에게 선뜻 빈방을 내준 일이 있었다.

최의광 씨가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방법을 묻자 박동현 씨가 알려주고 있다. (사진=이성현)
최의광 씨가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방법을 묻자 박동현 씨가 알려주고 있다. (사진=이성현)

최 씨도 기회가 된다면 대학생의 월세 부담을 줄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방이 4개인데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세 아이는 출가했어요. 아내랑 둘만 남았으니까, 대학생과 같이 살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 생각했어요” 

그동안 최 씨 집에 살다 간 대학생은 4명이나 된다.

‘한지붕 세대공감’ 같은 세대통합형 주거공유 프로그램은 노인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으면서도 노인 복지는 부족한 실정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7월 기준 국내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전체의 19.5%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한국은 2014년부터 2021년까지 OECD 주요 회원국 노인 자살률에서 1위를 기록했다.

최 씨는 박동현 씨와 함께 거주하며 유대감을 느꼈다. 악기 연주자인 둘째 아들이 떠올라, 성악가를 꿈꾸는 박 씨에게 자연히 호감이 갔다.

박 씨는 공연 때마다 최 씨를 초대했다. 지난번 공연 때는 박 씨의 부모님도 와서 최 씨와 만나 대화를 나눴다. 최 씨는 “요새같이 험악한 세상에 좋은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동현이는 물론이고 인품이 훌륭하신 부모님까지 이웃으로 알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박동현 씨에게 전화번호부 저장하는 법을 배운 후 최의광 씨가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이성현)
박동현 씨에게 전화번호부 저장하는 법을 배운 후 최의광 씨가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이성현)

전체 노인인구 중 독거노인의 비율은 2000년 16.0%에서 2024년 22.1%로 증가했다.

독거노인에게는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안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빌라에 거주하는 김경자(78) 씨도 한지붕 세대공감을 통해 한 대학생에게 방을 제공한 경험이 있다. 해외로 떠난 딸이 썼던 그 방에는 커다란 책상과 프린트 기계, 근사한 책꽂이가 마련돼 있다.

학창 시절부터 줄곧 책상에 앉아 있던 딸을 위해, 딸이 공부하기 편하도록 김 씨가 맞춰준 책상이다.

“이 정도로 갖춰져 있으면 대학생들이 편하게 살 수 있겠지요” 

김 씨는 지금도 대학생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해외에 있는 딸도 연로한 어머니의 안전을 위해서 혼자 있는 것보다는 젊은 사람과 함께 살기를 바라고 있다.

김 씨는 2022년, 함께 살던 윤채원(26) 씨와 코로나19를 함께 앓았던 일을 떠올렸다. “내가 먼저 걸리고 채원이한테 옮겼는데, 꿀물과 도라지 차를 만들어서 지 한잔 먹고 내 한잔 먹고 했지. 혼자 있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대학생에게는 저렴한 주거비용이 큰 장점이다. 박동현 씨는 신입생 때 기숙사 선발에 탈락했다.

“성악 전공이어서 반지하는 탁한 공기 탓에 목에 좋지 않고, 그래서 지상의 방을 찾아 보니 너무 비싸더라고요” 

박 씨는 자취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민하던 중 아버지의 추천으로 한지붕 세대공감 사업에 참여했다. 박 씨가 최 씨의 집을 선택한 이유는 재학 중인 경희대와 가깝기 때문이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2024년 8월 기준 경희대 인근 원룸의 평균 월세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 64만원이다. 박 씨는 보증금 없이, 월세로 34만원을 내고 있다. 

윤채원 씨도 집주인인 할머니가 관리비를 분담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친구들 자취방 월세의 반 정도만 냈다. 윤 씨는 “생활용품도 나눠 쓰는 등 할머니께서 편의를 많이 봐주셨다”고 말했다.

외로움은 사회적 질병이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를 신설했으며 일본도 2021년에 총리관저 내각관방에 고독·고립 대책실을 출범했다.

서울시도 지난 10월 외로움·고립은둔 종합대책 ‘외로움 없는 서울’을 발표했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깊어진 서울시민의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펴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노인정책은 그동안 노인의 소득향상 등 경제적 측면에 집중했으나, 최근에는 정서적 지원도 함께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지붕 세대공감은 이웃과의 유대감을 통해 노인의 고립감을 해결한다는 취지에 적합하다.

서귀숙 숭실대 명예교수(건축학 전공)는 “실적보다 ‘참여자들이 지속적으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퍼블릭뉴스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간 협약으로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이성현 대학생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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