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비선’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경기도 안산에서 점집을 운영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하다. 12·3 내란 사태에도 역술과 무속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시사한다. 역술·주술을 매개로 남편을 조종하며 각종 국정에 개입해온 김건희씨가 내란 과정에 연루됐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노상원씨의 점집은 내란 사태의 비밀을 풀 여러 열쇠를 지니고 있다.
노상원씨가 함께 동업해온 사람은 무당이다. 지금은 간판을 떼어 냈지만 인터넷 블로그 등에는 ‘아기보살’이라고 적힌 간판 사진이 남아 있다. 죽은 아이의 혼이 실린 무녀라는 이야기다. 무당이 치는 점은 ‘신점’이라고 한다. 신이 점을 쳐준다는 뜻이다. 때로는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 등을 묻지 않고 점을 치기도 한다. 노상원씨는 군에 있을 때부터 사주명리학 등을 공부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 점집은 ‘역술’과 ‘무속’의 시너지 효과를 겨냥한 공동 운영체였던 셈이다.
비상계엄 선포는 윤석열-김건희씨 부부에게는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 도박에는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한다. 앞날을 미리 내다보고 성공을 확신하고 싶어진다. “비상계엄을 일으키면 무조건 성공하게 돼 있다.” 노상원씨는 분명히 그렇게 장담했을 것이다. 무당과 동업자인 그의 호언장담은 일종의 ‘역술-무속 공동 성공보증서’로 윤석열 대통령 부부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게다가 노씨는 유사시 북한 지역에 투입돼 요인 암살과 폭파 임무 등을 수행하는 HID 요원들을 동원할 힘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비밀부대 요원들을 부추겨 ‘농간’을 벌일 수도 있다. ‘예지력’과 ‘실행력’을 갖췄다고 생각되는 노씨가 내란의 기획자로 참여하면서 윤 대통령 부부의 확신과 기대는 더욱 커졌을 것이다. 혹시 그 점집에서 내란 성공을 기원하는 굿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역술에서는 중요한 일을 할 때 택일(擇日), 택시(擇時)를 한다. 음양오행, 천간, 지지의 조합으로 일진을 살피고, 길함과 흉함을 가려 날짜와 시간을 정하는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예정 시간도 그런 결과물일 수 있다. 사실 계엄 선포 시점으로 정했던 ’12월3일 밤 10시’는 여러모로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국회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 저지를 위해서는 의원들이 지역구에 내려가는 주말을 택하는 게 나았고, 중요 시설의 사전 점거를 위해서는 새벽에 기습작전을 펼치는 게 군사적 상식이다. 비상계엄 선포 전날인 12월2일 명태균씨 변호인이 “명씨의 숨겨진 휴대전화를 언론이나 민주당에 제출할 수 있다”고 밝혀 초조해진 것 등 다른 요인도 있었겠지만, 점괘를 보니 12월3일이 가장 좋은 날이라고 나왔기 때문은 아닐까.
역술과 무속의 그림자 뒤에는 늘 김건희씨가 등장한다. 김씨는 지난해 한 명리학자에게 “저 감옥 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한겨레21」 보도). 그의 마음 속에는 특별검사제 도입 등으로 자신의 죄과가 드러나 형사처벌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늘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란이라도 일으켜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는 욕망은 김건희씨가 남편보다 더 절실했을 수 있다. ‘김건희씨와 기관 은퇴 OB 요원들과의 전화 통화’ 이야기가 계속 나도는 것은 김씨의 내란 개입 의혹과 관련해 주목할 대목이다.
김건희씨가 중요한 국정에 개입했음은 최근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명씨는 지인과의 전화 통화 도중 청와대 이전 문제에 대해 “경호고 나발이고 거 내가 (김건희씨에게) 거기(청와대) 가면 뒈진다 카는데, 본인 같으면 뒈진다 카면 가나”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자신이 김건희씨한테 ‘청와대 가면 죽는다’고 말했더니 김씨가 그 말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명씨의 자기과시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청와대 이전 결정에 김건희씨가 깊숙이 관여했음을 보여준다. 김씨는 대선 전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이 기자가 “내가 아는 도사 중에 총장님이 대통령 된다고 하더라, 근데 그 사람이 청와대 들어가자마자 영빈관을 옮겨야 한다고 해”라고 말하자 “응, 옮길 거야”라고 답했다.
하지만 ‘죽음’은 결국 피할 수 없었다. 터를 아무리 바꿔도 마음을 잘못 쓰면 화를 피할 수 없는 법이다. 풍수학자인 고 최창조 교수는 생전에 저서 「땅의 눈물 땅의 희망」에서 이렇게 말했다. “땅은 그저 무대일 뿐이다. 무대는 중요하다. 그러나 무대가 좋아도 엉터리 배우들이 비윤리적 각본을 가지고 공연을 한들 좋은 연극이 될 까닭은 없다.” 풍수든 역술이든 무속이든 마찬가지다. 결국은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곧고 바른 마음 없이 욕망 충족을 위해 사술에 기대면 결국 처참한 끝이 기다릴 뿐이다.
용산 집무실 이전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할 때 윤 대통령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한 말도 지금 와서 보면 매우 역설적이다. 그 말은 좋게 해석하면, 청와대가 입지상 고립돼 있어 대통령이 그곳에 거주하다 보면 은둔, 고립, 불통, 독단에 빠지므로 청와대를 떠나 용산으로 가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용산 시절 모습은 역대 어느 대통령에게도 보지 못한 고립, 불통, 독단의 극치였다. 게다가 용산은 ‘군대의 땅’이다. 대통령이 군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늘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 군 고위 지휘관들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군을 동원해 모든 것을 쓸어버리겠다’는 엉뚱한 발상이 나온 것은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이 결과적으로 맞은 것 같다.
역술이나 무속에서 하는 예언이나 점괘가 우연히 한 번쯤은 맞을 수 있다. 손바닥에 ‘왕(王) 자’를 적고 다녔더니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철석같이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맹신은 화를 부른다. 라스푸틴에게 국정을 좌지우지하도록 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무녀 ‘진령군’을 애지중지한 조선의 민비(명성황후), 점성술과 예언자들을 신뢰한 나머지 자신에게 불리한 예언을 피하려고 정적을 처단한 로마의 네로 황제 등은 결국 자신도 불행한 최후를 맞았고 나라도 망하게 됐다. 윤석열-김건희씨는 최소한 대통령 당선 뒤에는 역술·무속과 손을 끊었어야 했다. 하지만 더욱 그 세계에 함몰됐다. 결국 본인들은 처참하게 몰락했고, 대한민국은 극심한 위기에 빠졌다.
윤석열-김건희씨 부부에게 ‘컨설팅’을 해왔다는 역술인과 무속인들의 행적을 보면 악행과 막말이 넘친다. 윤 대통령 손바닥에 ‘왕 자’를 적도록 조언했다고 알려진 건진법사는 살아있는 소가죽을 벗기는 엽기적인 굿판을 벌였다. 윤 대통령 부부의 멘토를 자처하는 천공은 이태원 참사를 두고 “좋은 기회”라면서 “우리 아이들은 희생을 해도 이래 큰 질량으로 희생을 해야지 세계가 우릴 돌아보게 돼 있다”는 막말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살아 있는 소가죽을 벗기고, 불의의 참사로 숨진 수많은 젊은 영혼들을 욕보이고 어찌 무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사람들을 멘토로 모시고 무속 정치에 빠진 윤석열-김건희씨가 처참한 종착역에 다다른 것은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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