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며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통’ 핵심 임원을 전진배치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호세 무뇨스(José Muñoz) 현대차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을 CEO인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현대차의 외국인 CEO 선임은 1967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스페인 출신이자 미국 시민권자인 무뇨스 신임 대표는 토요타 유럽법인, 닛산 미국법인 등을 거쳐 2019년 현대차에 합류했다. 이후 북미 법인을 이끌며 북미 지역 최대 실적의 성과를 냈다. 북미 법인 매출액은 무뇨스가 합류하기 전인 2018년 15조원에서 2023년 40조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2022년에는 미주, 유럽 등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는 COO에 보임됐다. 이후에도 실적 향상에 기여해 이번에 CEO에 선임됐다.
또 현대차는 성 김(Sung Kim) 고문역을 국내·외 정책 동향 분석·연구, 홍보·PR 등을 총괄하는 그룹 싱크탱크 사장으로 임명했다.
성 김 사장은 동아시아·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에 정통한 미국 외교 관료 출신의 최고 전문가로 부시 행정부부터 오바마·트럼프·바이든 정부까지 여러 핵심 요직을 맡아 왔다. 미국 국무부 은퇴 후 올해 1월부터는 현대차 고문역으로 합류해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통상·정책 대응 전략, 대외 네트워킹 등을 지원해 왔다.
현대차는 이들 대표이사, 사장 인사를 통해 불확실성이 커지는 글로벌 경영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한화그룹의 방산 계열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역시 글로벌 방산 기업 출신 CEO를 영입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레오나르도 DRS의 마이클 쿨터(Michael Coulter) 전 사장을 해외사업 총괄 담당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할 예정이다.
한화그룹이 외국인 CEO를 임명한 건 2012년 한화케미칼 바이오 부문 폴 콜먼(Paul Coleman) CEO 취임 이후 12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다.
이탈리아 글로벌 방산 기업 레오나르도 DRS에서 글로벌 법인 사장 겸 사업 개발 부문 수석부사장을 지낸 쿨터 내정자는 기업에 합류하기 전 미 국무부 정치군사담당 부차관보, 국방부 차관보 대행, 국방부 국제안보 담당 수석 부차관보 등 정부 핵심 보직을 수행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합동참모본부 등에서 근무한 이력도 있다.
한화그룹은 최근 김승연 회장이 직접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회장직을 새로 맡는 등 대미 방산 수출에 힘을 싣고 있다. 김 회장은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는 등 ‘트럼프 인맥’으로 분류된다. 김 회장이 직접 대미 방산 수출 확대 선봉에 서는 가운데 쿨터 내정자가 미 방산 시장 진출 확대에 힘을 실을 전망이다.
SK그룹의 경우 올해 상반기 북미 대관 총괄 조직인 ‘SK 아메리카스’를 신설하고 대관 총괄에 폴 딜레이니(Paul Delaney) 부사장을 선임했다. 그는 미 무역대표부(USTR) 비서실장, 미 상원 재무위원회 국제무역고문 등을 역임하다 올해 7월 SK 아메리카스에 합류했다.
LG그룹은 2022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지낸 조 헤이긴(Joe Hagin)을 LG워싱턴사무소 공동사무소장으로 영입했다.
헤이긴 소장은 한국에서 파견된 공동사무소장의 퇴임으로 단독으로 소장을 맡게 됐다.
그는 1981년 조지 H.W. 부시 당시 미 부통령 보좌관으로 정계에 진출한 뒤 백악관에서 4명의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 특히 헤이긴 소장은 트럼프 1기 당시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하기도 했다.
재계는 외국인 CEO, 임원 발탁 외에도 총수가 직접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만나 트럼프 2기 행정부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한국 기업인 중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만나 면담을 가졌다. 정 회장은 12월 21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트럼프 당선인과 함께 식사를 했고 별도로 여러 주제에 관해 심도 있는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오는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당선인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성은 기자
se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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