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밤을 딛고,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국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이뤄낸 시민들이 1주일 만에 다시 모여든 곳은 서울 도심 광화문 앞이었다. 국회의 시간을 지나고도 지난하게 이어질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수사기관의 엄정한 수사, 이를 위한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의 결단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윤 대통령의 ‘탄핵’에서 ‘파면’으로 구호는 바뀌었지만, 제각기 다채로운 모습으로, 서로를 지원하고 응원하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21일 오후 3시부터 열리는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범시민대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시민들은 영하의 칼바람에도 이날 이른 오후부터 광화문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탄핵안이 가결된 기쁨도 잠시, 지난 한 주 이어진 윤대통령과 여당이 행태에 대한 분노가 컸다. 김아무개(52)씨는 “탄핵안 가결이 된 상황에서도 수사에 불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아 화가 더 난다”며 “지난주 국회 앞 범시민대행진에 참여했다가 몸살이 났는데 오늘도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검찰이나 공조수사본부(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국방부조사본부)의 잇단 출석요구에 불응하는 한편, 대통령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도 가로막힌 상태다. 수원에서 ‘무인도주민대표연합’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친구와 범시민대행진를 찾은 조은지(22)씨도 “체포도 압수수색도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진실이 점점 묻혀버릴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계엄의 공포와 내란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시민도 있었다. 박아무개(53)씨는 “아들이 군대에 가 있어서 유혈 사태가 벌어질까 봐 겁나서 계엄 이후 잠을 잘 못 이루고 있다”며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의 벌인 일에 사과는커녕 지금도 이해득실만 따지는 국민의힘에도 화가 난다. 이 기회에 보수 세력이 재정비해서 민주주의를 함께 지켜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도 다양한 모습으로 거리에 선 시민들은 간식과 먹거리, 방한용품, 공간을 나누며 거리에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집회 현장에는 여지없이 ‘방구석 베짱이 연합’, ‘후딱 탄핵하고 잠이나 자고 싶은 시민 연합’ 등 다채로운 깃발이 나부꼈다. ‘마스크 무료나눔’ 손팻말을 든 김아무개(25)씨는 “춥고 독감이 유행하는 데다 얼굴을 가리고 싶은 젊은 여성들에게도 필요할 것 같아 마스크를 나누러 나왔다”며 “윤 대통령이 서둘러 탄핵 돼 민주주의가 바로잡혔으며 좋겠다”고 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교사들은 ‘무지개떡’을 나눴고, 산타 복장을 한 청년 노동자들은 과자가 담긴 선물꾸러미를 전했다. 이태원 유가족들은 적선현대빌딩 1층에 있는 추모공간 ‘별들의집’을 이날 영유아와 보호자들의 쉼터로 꾸몄다.
오후 3시께 범시민대행진은 이제는 집회의 주제곡이 된 ‘다시만난세계’를 부르며 시작했다. 이날 시민들은 집회 발언과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등의 공연을 본 뒤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안국동 사거리와 종각역, 을지로입구역을 거쳐 명동까지 행진한다.
한겨레 정인선 기자, 김가윤 기자 /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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