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하했지만 내년 금리 인하 속도 조절을 시사하면서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번 결정 이후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치솟는 등 국내 금융 불안은 심화하는 모습이다.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한국은행으로서는 고민이 더 깊어질 전망이다.
◇ 美 연준, 기준금리 4.25~4.50%로 25bp 인하
연준은 17~18일(현지 시각) 올해 마지막으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기존보다 0.25%p 낮은 4.25~4.50%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지난 9월 0.5%p 금리를 내리면서 4년 반만에 통화정책을 전환한 후 3번 연속 인하다. 한국 기준금리(3.00%)와의 차이는 1.75%p에서 1.5%p로 좁혀졌다.
기준금리는 내렸지만 시장에서는 이번 연준의 결정이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이었다고 평가했다. 연준이 공개한 점도표(dot plot·연준 위원들의 기준금리 전망을 취합한 도표)에서 내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를 기존 3.4%에서 3.9%로 높였기 때문이다. 0.25%p씩 금리를 내린다고 가정하면 내년 금리인하 횟수가 4회에서 2회로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연준의 태도 변화는 정책결정문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에서도 나타났다. 종전 정책결정문에 포함됐던 ‘정책금리 추가 조정을 고려함에 있어’라는 표현은 ‘정책금리 추가 조정의 폭과 시기를 고려함에 있어’로 조정됐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지금부터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진전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고 신중하게 정책금리 인하를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면서 금리인하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달라진 기류를 반영해 달러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오전 9시 59분 기준 108.09를 기록하고 있다. 달러인덱스가 108선을 넘긴 것은 2022년 11월 초 이후 처음이다. 달러·엔 환율은 154.8엔을 넘어서면서 한 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으며, 달러·위안 환율도 지난 10월 29일(7.30) 이후 처음으로 7.30위안을 넘겼다.
반면 국내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19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보다 17.5원 오른 1453원에 개장하면서 1450원을 넘어섰다.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선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 번째다. 국고채 시장도 약세다. 이날 오전 9시 45분 기준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 종가(2.53%) 대비 8bp(1bp=0.01%p) 오른 2.61%를 기록하고 있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여 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을 의미한다.
◇ 경기 둔화 악재까지 겹친 한은… 금리 결정 난항 예상
다음 달 16일 금리결정을 앞둔 한국은행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연준의 ‘매파적 인하’로 금융 불안정이 확대된 점을 감안하면 금리를 동결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최근 확대된 국내 정치 불확실성으로 인해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최근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소추안 가결로 국내 소비심리는 크게 위축됐다. 한은에 따르면 주요 실물 경제지표에 1~2개월가량 선행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뉴스심리지수(NSI)는 지난 11일 77.47을 기록했다. 레고랜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회사채 불안 사태 여파가 남아있던 2022년 12월 2일(77.32) 이후 2년여 만에 최저치다.
또 다른 선행지표인 신용카드 일평균 사용액도 감소세다. 12월 일평균 사용액은 지난달 2조6584억원보다 1700억원가량 줄어든 12월 2조4796억원으로 집계됐다. 계절적 요인의 영향을 배제한 전년 동월 대비 증감률도 감소세다. 카드 사용액 증가율은 11월 3.28%에서 12월 3.00%로 작아졌다.
위축된 소비심리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8일 한은 본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2%에서 2.1%로 낮췄다. 당초 1.9%로 제시했던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0.06%p가량 감소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금융 불안과 경기 둔화 우려가 겹치면서 한은의 금리 결정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금융 불확실성이 커지기는 했지만 1월 금통위에서는 금리를 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 등 경기부양 정책이 지연되고 있어 경기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18일까지만 해도 이창용 총재가 1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를 하겠다는 신호를 많이 줬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데 새로운 뉴스(FOMC의 매파적 인하)가 전달됐으니 생각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1월 인하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만, 추가 인하 시점은 지연될 수 있어 보인다”고 했다.
반면 강승원 NH투자증권 채권전략팀장은 “한은의 금리 인하는 2월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오늘 파월 의장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의 불확실성을 인정했으므로, 한은 입장에서도 이를 반영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원·달러 환율이 1450원까지 가면서 환율에 대한 부담도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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