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이 급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6개월 내 대선이 치러질 수도 있다. 이참에 숙원 과제였던 ‘개헌’ 논의가 필요하단 주장도 제기된다. 차기 정부는 문재인 정부처럼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하기에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포함한 미디어기구의 ‘거버넌스’를 재편하기 위한 논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미디어기구를 동원한 방송장악, 계엄을 통한 방송장악 의지를 드러낸 윤석열 정부의 행태가 되풀이 되는 것을 막을 방안도 필요하다.
공영방송·미디어기구개편 숙원
尹정부 거치며 한계점 여실히 드러내
미디어 정부조직 개편 논의는 오랜 과제다. 박근혜 정부 때 방송통신위원회를 인위적으로 분리해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체제로 운영했으나 업무 중복과 혼선, 방통위 규제기능 약화 등 문제가 잇따랐다. 방송의 경우 홈쇼핑과 흔히 케이블채널이라 불리는 유료방송채널(PP)은 과기정통부 소관인 반면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등은 방통위 소관이다. 여야 모두 개선 공감대가 있었으나 정부조직 개편을 못 해 현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여기에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부처 교통정리’ 필요성이 더 커졌다. OTT가 주요 미디어로 부상하는 가운데 방통위, 과기정통부, 문화체육관광부가 모두 자신의 관할이라고 주장했다. 한 OTT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그나마 교통정리가 좀 되는 분위기지만 처음엔 시어머니가 세 명이었다”고 꼬집었다.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미디어기구 제도의 ‘맹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방통위는 대통령 추천 2인 체제만으로 YTN 민영화 등을 졸속 강행해 논란이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에 전례 없는 고강도 중징계를 쏟아내고 있다. 이동관·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도 필요하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계엄을 통해 언론에 사전검열을 부활시키려 한 시도까지 드러났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는 논쟁적이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더불어민주당은 공영방송 여야 추천이사 수를 7대 6으로 하고 사장 선임 시 이사회 3분의 2의 동의를 받는 특별다수제 도입을 추진했다. 현재는 공영방송 이사 수를 21명으로 늘려 정치권 영향력을 줄이고, 100명으로 구성된 시민들이 사장 선임에 참여하는 방안을 입법하려 한다. 해당 법안은 야당 단독으로 지난 7월 국회를 통과했으나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사회적 공론을 통해 논의하자며 ‘방송법 범국민협의회’ 준비모임을 꾸렸으나 여야가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방통위·방심위 ‘수술’, 어떻게?
지난 대선 때 양당은 미디어기구 개편안을 마련했다. 핵심은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 맞는 대대적인 업무 재조정’에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방통위, 과기정통부, 문체부의 미디어 기능을 통합하는 방안을 냈다. 두 정당 모두 독임제 부처에 업무를 통합하되 규제 기능을 가진 별도의 위원회를 둔다는 점까지는 동일하다.
하지만 부처의 성격은 차이가 크다. 민주당은 독임제 부처인 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에서 방통위, 과기정통부, 문체부의 언론·미디어 기능을 통합하는 방안을 냈다. 신문 분야도 통합한다. 방통위는 미디어위원회로 개편하면서도 합의제 기구 성격은 유지하며 방송규제, 인허가 업무를 맡는다. 통신 분야는 방송과 분리해 과기정통부가 맡는다.
전 민주당 관계자 A씨는 “미디어정책을 총괄할 단일 기관이 없다. 이에 따라 정책 정합성이나 일관성이 떨어지고, 예산 집중력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미디어 공공성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하기에 방통위가 그 역할을 담당하면 된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낸 안은 ‘공룡부처’ 설립을 골자로 한다. 독임제인 디지털미디어혁신부가 3개 기구의 미디어 기능을 통합하는 것은 물론 ICT통신 분야도 총괄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등 기능도 미디어 분야에 한정해 흡수한다. 박근혜 정부 이전 이명박 정부 때 만든 ‘통합방통위’보다 큰 규모가 구성되게 된다. 반면 방통위의 후신인 공영미디어위원회는 지상파·종합편성채널·보도전문채널 인허가 등 일부 기능만 남겨 사실상 보조기구로 격하된다.
과거 개헌 논의 때 나온 미디어기구 개편안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2018년 개헌 논의 당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분권형 정부제’를 도입할 경우 ‘방송통신위원회’를 확대해 언론·통신위원회로 개편하는 방안이 담겼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같은 ‘독립기관’의 지위로 언론·통신위원회를 규정해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게 했다.
합의제 미디어기구의 ‘추천 방식’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다. 특히 방심위는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방송을 사실상의 행정기구에서 심의하는 국가는 찾기 어렵다. 시청자 피해구제 차원에서 방송 심의는 유지하더라도 보도 프로그램의 공정성 심의와 같은 정치 심의 소지가 있는 심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여당이 위원 추천을 독식하는 구조를 깨는 제안들도 있다. A씨는 “방통위원을 5명에서 9명으로 확대하고 추천권자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07년 미디어규제기구 개편을 앞둔 가운데 참여정부가 제시한 방통위 ‘초안’은 공직자윤리위원회, 선거방송위원회 등의 선임 방식을 차용해 각계각층의 추천을 받아 방통위원을 구성하는 내용이다. 박만 전 방심위원장은 2012년 “헌법재판소 모델처럼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이 각각 3인씩 추천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개헌 논의가 이뤄질 경우 ‘언론자유’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방통위 상임위원을 지낸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는 “계엄 포고령에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규정이 있었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처럼 언론 자유를 헌법에 강하게 보장하고 제약을 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논의를 해야 한다. 딥페이크 등 역작용은 규제하더라도 언론자유를 더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18년 개헌특위 자문보고서는 헌법 21조의 ‘통신·방송의 시설기준을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을 폐지하는 안을 냈다. 또한 ‘언론·출판은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항도 삭제한다. 이들 조항이 모호하고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언론 매체의 자유와 다원성, 다양성은 존중된다’는 조항을 추가해 언론자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개헌 논의까지 가게 된다면 새 민주공화국 체제 하에서 공영방송이 어떤 임무를 부여받고 어떤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며 “이에 맞는 거버넌스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석회의 꾸려 논의해야”
“민주당 입법, ‘큰 그림’ 봐야”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미디어 관련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류희림 방심위원장 탄핵을 위해 방심위원장과 상임위원을 정무직 공무원으로 바꾸는 법안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를 통과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과 2인 체제 방통위 의결을 막게 하는 방송3법 및 방통위법 재입법도 추진된다.
김동찬 정책위원장은 “불확실성이 높고 유동성이 많은 시기”라며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사회적 논의를 통해, 여야 합의를 통해 법을 만들어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논의하면 갈등의 불씨를 남기는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회가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는 이른바 방심위원장 탄핵 법안과 관련해 “민주당은 방심위 권한과 기능을 축소하는 안을 과거 냈는데 이에 모순적”이라며 “미디어 정책 전반에 관해 국회뿐 아니라 노조, 시민단체까지 함께 연석회의를 꾸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 기구에서 최우선적으로 거버넌스 정비가 필요하고, 공영방송에 대한 재정립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12월 방송 정책의 밑바탕을 그리는 방송개혁위원회(방개위)를 구성해 방송 규제기구 개편방안 등 방송 정책 전반의 로드맵을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전신인 방송위원회가 2000년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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