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안정협의체 李 제안 대번 거절하며
“한 대행 체제는 이재명 섭정 체제 아냐
벌써 대통령 놀음 빠지지 않길 바란다”
사법리스크 관련 신속판결 촉구 결의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정협의체’를 고리로 여당을 압박하고 있지만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초유의 탄핵 정국 속에서도 존재감을 발휘 중이다. 국민의힘이 한동훈 전 대표의 공식 사퇴로 권성동 체제에 돌입한 가운데 민주당이 ‘국회 1당’ 지위를 계속해 강조하자, 권 대행은 아직 국민의힘이 여당임을 강조하면서 좀처럼 틈을 내어주지 않고 있다.
권성동 권한대행은 16일 이재명 대표가 월권성 발언을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대통령 놀음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탄핵 정국에 따라 야권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가려지는 듯한 기류와, 민주당의 차기 집권이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등 대야전선을 강화하는 모습도 보였다.
우선 여야의 주도권 다툼은 이재명 대표가 앞서 제안한 ‘국회와 정부 동반 참여 국정안정협의체’를 놓고 펼쳐지고 있다. 협의체에서 말하는 ‘국회’는 사실상 민주당 주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은 여당이 아닌 제2당이며, 이제는 여당도 야당도 없고 중립적 상태로 돌아간 것이라고 현 정국을 진단하기도 했다.
이에 5선 관록의 권 대행은 민주당이 벌써 여당처럼 행동한다는 점을 들어 “아직 여당은 국민의힘이고 민주당이 국정 운영 책임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반격하는 등 만만치 않은 내공을 과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권 권한대행이 원내대표로 선출됐던 지난 12일에만 해도 “협상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며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재선출을 요구해 오던 상황이다. 하지만 권 권한대행이 협의체 참여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이 대표는 한발 물러나는 모습도 보였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혹시라도 국정 전반에 대한 협의체 구성이 부담스러우면 경제분야에 한정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모든 논의의 주도권은 국민의힘이 가져도 좋으니 국민의힘도 꼭 참여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름과 형식, 내용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또한 이 대표는 “국민의힘 내부 사정이 어려운 것, 정치적 입장이 곤란한 것도 이해하지만 정당의 존재와 정치의 존재 이유는 결국 국가 안정, 국민의 더 나은 삶 아니겠느냐”라며 “계산은 조금 뒤로 물리고 경제 문제에 한정된 협의체든 (이런 것을 구성하는 것에 대해) 신속 결단하고 함께해달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권 대행은 이날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이럴 때일수록 각자의 직분을 흔들림 없이 충실이 이행해야 함을 강조했다.
권 권한대행은 이어진 의원총회에서도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는 이재명의 섭정체제가 아니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법과 법률, 원칙이 정한 범위 내에서 당당하게 권한을 행사해 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뿐만 아니라 “탄핵은 탄핵이고, 이재명 대표의 재판은 재판이다. 대통령의 탄핵이 이재명 대표의 죄를 덮어주는 ‘이재명 대표 대선 출마 허가증’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또 “이 대표는 추경을 신속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본회의에서 본인들 마음대로 감액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지 고작 5일 지났다”는 점도 꼬집었다. 권 대행은 “예산에 대해서도 민주당이 일방 처리한 예산안을 토대로 민생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경제 정책 수립과 예산 집행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10일엔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이 야당 단독 순감 수정을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기 전이었고, 국민의힘은 본회의 직전까지 증액안을 제시하며 더불어민주당과 협상을 시도했으나 끝내 결렬됐다. 민주당은 대통령실·검찰·경찰특활비를 전액 삭감하고 정부 예비비를 크게 줄이고 또 지역구 민원 예산마저 포기하는 감액안 처리를 하면서, 이와 모순되는 ‘추경(추가경정예산)’ 카드를 동시에 꺼내들었다.
민주당에서 나온 ‘추경’ 언급은 사실상 ‘이재명표 예산’으로 수식되는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지역구 예산 등의 증액·복구를 시사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통상 여당이 꺼내들어야 하는 ‘추경’을 민주당이 꺼내든 것이었다.
이날 권 대행은 민주당의 이 같은 여러 ‘월권’ 행위를 지적하는 동시에 국정안정협의체를 경제 분야로 한정해 구성하자는 이 대표의 제안에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전날부터 보여온 이 대표의 제안에 대한 ‘거절’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관련 신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광폭행보를 이어갔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8개 사건, 12개 혐의, 5개 재판을 받고 있다”면서 “본인의 재판을 지연시키고 수사 당국과 사법부를 정치적으로 겁박한 이 대표의 ‘방탄 정치'”라고 수식했다. 나아가 “공직선거법은 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 안에 재판을 마무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지난 11월 15일 1심 선고가 나온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내년 2월 15일까지 2심 판결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여야 수장은 오는 18일 비상계엄과 윤 대통령 탄핵 가결 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주목되는 가운데 회담이 아닌 권 대행의 이재명 대표 ‘예방’이라는 점에서 특정 결과의 도출보다는 단순 ‘상견례’ 쪽에 무게가 맞춰지는 모습이다.
이날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의제를 가지고 만나 합의를 이끌어내는 회동이나 회담이 아닌 ‘예방’으로 봐야 한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다만 잇따른 권 권한대행의 역공을 의식하듯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직무정지됨으로 인해 여당으로서의 직무(지위)도 정지됐다고 보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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