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최근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이 선정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도 꼽혔다. 몇 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 통치하기 가장 힘든 나라라는 평을 받던 이탈리아의 수장이 전세계 외교 무대에서 ‘핵심 인물’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 2022년 10월 취임한 멜로니 총리는 극우 성향 이탈리아형제들(FdI)을 창당하고 유럽연합(EU) 탈퇴와 반(反)이민 등 정책을 주장해 취임 당시만 해도 ‘여자 무솔리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집권 후 이민자·성소수자 억압 등 극우 성향 정책을 펼치면서도 온건 실용주의 노선을 타 유럽의회 내에서도 중도파 및 극우파 모두에게 ‘러브콜’을 받고 있다. 멜로니 총리의 FdI은 올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30% 가까운 득표를 해 이탈리아 정당 중 1위를 차지했다.
멜로니 총리의 부상은 다른 유렵연합(EU) 회원국들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무관치 않다. EU를 주도하던 프랑스에선 지난 4일 하원이 미셸 바르니에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키면서 62년 만에 정부가 붕괴됐고, 또 다른 EU 중심축인 독일은 지난달 사회민주당(SPD) 올라프 숄츠 총리가 자유민주당 소속 크리스티안 린트러 재무장관을 해임하면서 지난 2021년 꾸려진 연합정권이 깨졌다. 반면,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정부는 비교적 안정된 상태다.
더구나 멜로니 총리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인물로 부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도 친밀한 관계다. 머스크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에서 “멜로니 총리와 로맨틱한 관계는 없다”고 열애설을 해명할 정도다. 머스크는 지난 12월 이탈리아 집권당인 FdI의 정치 행사 ‘아트레주’에서 기조연설자로 등장했고, 이번 주말 열리는 동일 행사에도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CNN이 전했다.
머스크와의 친분 덕분인지 멜로니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과도 가까워지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지난 7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식 기념식에서 트럼프, 머스크와 만났다. CNN에 따르면 멜로니 총리는 ‘극우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등과 함께 오는 1월 예정된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식에도 초대를 받았다. 1874년 이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외국 정상이 참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로마 루이스대의 지오바니 오르시나 정치학과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에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이고, 프랑스의 현 상황을 미뤄볼 때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오면 이탈리아는 EU에서 안정적인 정부를 가진 유일한 국가로서 일종의 독점권을 갖게 될 것”이라며 “멜로니 총리는 머스크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트럼프-머스크의 허니문 기간이 지속되는 한 머스크는 멜로니와 트럼프 모두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멜로니 총리는 이민자와 성소수자에 대한 강경한 입장에서 트럼프와 의견이 일치한다. 멜로니는 선거 과정에서 해안을 봉쇄해서라도 불법 이민 유입을 차단하겠다는 공약을 앞세웠고, 지난달 한 언론 인터뷰에선 “성폭력 사건의 경우 이민자들, 특히 불법 이민자들에 의해 더 많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성소수자들을 겨냥해서는 해외 대리모 원정 출산을 불법화했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편을 든다는 점에선 트럼프와 반대 노선에 있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는 최근 이탈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멜로니의 태도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바뀔 것이며, 트럼프가 멜로니를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오랜 ‘심복’으로 알려진 배넌은 지난 2018년만 해도 아트레주 전당대회에 참석할 정도로 멜로니 총리와 돈독한 관계였지만, 멜로니가 집권 후 온건파가 된 후 관계가 멀어졌다. 외신들은 멜로니 총리가 트럼프 행정부와 유럽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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