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뉴스프리존]편완식 기자=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희림)에서 운영하는 갤러리 라루나에서 내년 1월 24일까지 남경민 작가의 개인전, ‘초대받은 N – 내면의 풍경으로’전이 열린다.
남경민 작가는 고흐, 피카소, 세잔, 호크니 등 시대를 대표하는 서양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그렸다. 창작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작가들의 작업실이 남경민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재탄생했다. 거울에 비친 장면, 창문 너머의 정원, 그리고 작품 속에 걸린 거장의 작품을 통해 공간은 무한히 확장된다. 한 캔버스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풍경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든다.
당시 작가의 작업실을 상상으로 재구성한 실내풍경에 영혼의 흐름을 상징하는 나비, 시간의 유한함과 덧없음을 상징하는 해골, 모래시계나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유리병 날개 등 오브제를 그려 넣었다. 최근들어선 영국 소설가이자 수필가이 버지니아 울프의 작업실 풍경도 등장한다. 이 모든 과정은 남경민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 풍경에 이르기 위한 긴 여정처럼 보인다. (이하 작가와의 문답)
## 왜 화가의 방을 그렸나?
=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듬 해 2001년에 안양의 석수동에 낡은 7층 건물 7층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이전 생활했던 남부터미널역 인근 깨끗한 오피스텔에 비해 낡고 오래된 건물이었다. 어느 여름 장마철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비가 새서 작업실 바닥이 비로 흥건했다. 빗물에 젖은 작품들을 품에 안고 한참을 멍하니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 허물어져가는 오래된 작업실은 나의 안식처가 되어갔다. 그 초라하기 그지없던 작업실에서 나의 첫 번째 고흐의 작업실이 그려졌다. 초등학교 방과후 미술시간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받은 강의료로 물감과 붓 캔버스를 사고 어찌나 기뻐했는지. 당시는 나를 믿고 지지해주셨던 엄마가 살아계실 때였지만 집에 생활비를 보태기는커녕 내 물감 사는 일에만 자족했던 철 없던 무명시절이었다.
사실 그 시절 나는 불투명하고 암울하기만 내 앞 날에 대한 막막함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던 회색빛 청춘이었다. 그 즈음 친구에게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고흐의 책을 생일선물로 받았고 그 책은 내 삶을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 주었다. 빈센트 반 고흐, 살아생전 단 한 점의 유화와 드로잉 몇 점을 팔은 세계 최고로 유명하면서 가장 불운했던 화가, 동생 테오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창작열을 불태운 사나이, 괴팍했지만 둘째 가라면 억울한 지상 최대의 순수한 영혼의 예술가, 이 것이 우리가 알고있는 일반적인 고흐에 대한 선입견이다.
그러나 선물받은 책에서 내가 읽고 느낀 고흐는 아주 특별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했고 연민의 마음은 신과 같았으며, 자연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가히 자연을 만든 창조자만큼이나 컸다. 괴팍하고 강팍해 보이기만하는 그의 얼굴 느낌과는 너무도 다른 큰 반전매력이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연민이 컸고 자연을 유달리 사랑하는 나와 교집합도 컸다. 그 책을 아니 고흐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진심으로 그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들에도 크게 애정을 갖게 되었다.
삶과 예술을 바라보는 그의 견해는 철학자 칸트가 울고 갈만큼 박식하고 지적이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한 나는 그의 책을 읽고 내 안에 가지고 있던 그저 신화화된 고흐의 이미지 때를 벗기고 한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새로운 재발견이 어찌나 기뻤는지 그 때를 회상하면 고흐를 다시 알게되어 참으로 감사하다. 고흐는 살아생전에 유명하지도 않았고 그림도 한 점만 팔았으며 정신병으로 늘 온전치 못했음에도 그의 불과 같은 의지 하나로 화가가 되었으며 죽기 직전까지는 불행하기도 했지만 행복하기도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동생 테오에게 후원을 받으며 창작생활을 이어 간 고흐의 심경은 어찌나 때로 처참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문득 고흐의 삶에 비해 나는 참으로 편하구나, 비록 엄마집에 살고 있지만 작업실 세를 내고 그림도구는 내가 살 수 있으니. 한 없이 초라했지만 광기어린 고흐와 그의 예술에 대한 신념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호의가 내게로 전해져오던 어느 날 불현 듯 용기가 생겼고 나의 작업실은 초라함에서 편안한 나만의 창작의 온실이 되었다.
고흐가 고갱을 불러 함께 창작공동체를 하려고 꾸민 아를의 침실과 지붕위로 들어오는 빛이 아련한 고흐의 방이자 작업실도 그 만의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듯 , 또 그 방은 고흐임을 보여주는 공간이며 누가뭐래도 고흐의 방이다. 나는 그러한 따스한 고흐의 온기가 살아 숨쉬는 방을 그리고싶었다. 나의 창작의 동력이자 작가로서 살아갈 이유를 고흐는 나에게 선물한 셈이다.
##화가의 작업실과 방을 그리며 얻은 것들은?
= 나의 작업실이 내가 좋아하는 물건과 내 그림으로 채워지고 있던 어는 날 나는 고흐의 책에서 읽은 고흐의 방 이미지를 상상하며 떠올려보았다. 막연했지만 내가 그의 방을 그려 그의 영적인 에너지와 만나고 교감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그의 방을 그리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고흐의 방을 그리기를 시작으로 그 간 내가 좋아하고 동경하던 서양미술사의 거장들이 내게 차례차례 말을 걸어왔다.
세잔느, 마티스, 베르메르 , 프리다 칼로 ,호크니. 모두 하나같이 필연처럼 말을 걸어오고 나는 그들의 방과 작업실을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재미있고 즐겁게 그려갔다. 누군가 말하는 창착의 고통같은 것은 없었다. 그들과 만나는 곳이 되어주는 그들의 방을 그리는 일은 그야말로 유희와 같았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작업실을 그려가며 나는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지는 듯한 충만감과 신선함만이 있었다. 그렇게 화가의 작업실시리즈는 그려졌고 그 때의 그 그림들에 미술계는 열광했으며 나를 빛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대가의 방을 그리며 진정한 나 자신과 소통하고 거짓 없고 순수한 나와 마주하게 되었음은 아마도 하늘에 계신 그 분들과 캔버스를 통해 만나는 일이라 생각해서였던것 같다. 그 시도는 스스로 솔직하고 작가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이어가리라는 다짐이었다. 늘 성실할 것 , 진정한 것을 그릴 것,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한 그림을 그릴 것, 예술자체의 숭고함을 늘 기억 할 것, 어떤 어려움이 와도 붓을 놓지 않을 것, 대학원 졸업 후 작업을 이어간 실내 풍경, 나비채집시리즈에 이어 화가의 작업실을 그렸는데,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화가가 된 것도 전부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강한 이끌림의 에너지가 있었음을 느끼곤 한다.
##화가의 방시리즈에 이어서 정원과 수영장, 밤의 정원의 작품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근원엔 자연풍경이 자리하고 있는 느낌인데….
= 내게 작가로서의 빛을 부여하고 작가로서 살아가게 한 화가의 작업실과 나비 풍경작업은 창과 문, 창과 문 저 편의 자연을 지속적으로 그려왔다는 것이다. 화가의 방을 그리면서도 창 밖에는 끊임없이 숲과 나무 풀 꽃 등의 자연을 그려온 것은 내가 예술가로서 살아오면서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과 큰 위안을 준 자연에 대한 오마주이기도하다. 내가 화가의 작업실을 그리면서 서양미술사의 많은 거장들이 자연에서 많은 창작의 영감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알게 됐다.
아주 어릴 적 유년시절로 돌아가 추억하나를 꺼내보려 한다. 6살 때 서울 용산의 우리 집이 불이 났고 나는 김포의 외가댁에 맡겨졌다. 외가댁 뒷산의 김포성당은 숲이 우거지고 나무들이 많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었다, 그 곳이 좋아 나는 아침 밥을 먹고 매일 올라가 주변을 뛰어 놀며 생의 기쁨을 느꼈다. 어린 마음에 불이 난 집이 잠시 걱정도 되었지만 그 것도 잠시 나무와 풀, 꽃 , 바람과 새 등의 자연은 나에게 큰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내가 사촌들과 어울리며 사촌들과 뛰어 놀 때 내 빰을 스치는 바람이 어찌나 싱그럽던지 그 기분에 취해 한 없는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그 때 바람은 흔들리는 나무의 이파리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 바람이 내 마음을 포근하고 따뜻하게 감싸 어루만져 주었다고 느꼈던거 같다. 그 때의 자연과 함께 한 아름다운 기억은 평생 나의 뇌리에 남고 나는 자연을 동경하고 늘 그리워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 때의 그 기억으로 인해 나는 작가가가 된 것은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자연에 대한 그리움과 순수한 교감에 대한 향수는 나의 영원한 노스텔지어와같은 그리움의 대상이면서 친구이면서 스승이다. 어떠한 힘듦과 어려움이 있어도 자연 속의 나무 아래 서면 진정이 되고 평화가 찾아오니 자연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나의 실내풍경 속의 창을 통해 화가의 작업실의 창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미미하게 보여주는 숲과 정원을 확 트인 외부로 가지고 나와 그리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인게다.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화가는 일반 사람들에게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이라고 쓴 글이 있다.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 예술가나 화가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는지 세잔, 마티스 , 고갱, 모네 등의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우리선대 화가인 겸재 정선 , 김홍도 , 신시임당, 신윤복의 작품세계를 통해 알 수 있다. 나 역시 나의 실내풍경 작품에 보이는 문이나 창 밖의 자연풍경을 그리며 최근에는 실내를 벗어나 정원과 숲 풍경을 그리고 있다.
정원과 수영장이 있는 풍경도 화가의 심리적 풍경이면서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의 내적인 풍경이다. 최근에 그린 문인의 방 ‘버지니아 울프의 침실에서 그녀의 집필실을 바라다보다’는 울프가 집필활동을 해가며 그녀의 정원을 가꾸고 거기서 얻는 에너지를 침대 위에 놓여있는 대표작 ‘자기만의 방’ 등의 책을 쓰며 오롯하게 쏟아 부었음을 알 수 있다. 창 밖 정원 건너편 숲에 그녀의 집필실이 보인다.
그녀가 정원의 나무들과 꽃을 어찌나 살뜰하게 돌봤는지 그 애틋한 마음은 그녀 관련 책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시공을 초월해 나도 울프의 자연사랑과 그 안에서 받은 영감과 에너지로 오롯한 자기자신으로 살아가며 집필 생활을 이어갔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작가로서 화가의 방과 작업실을 그리던 원동력을 자연과 밤풍경, 수영장 밤풍경으로 스펙트럼을 넓혀온 것은 어찌 보면 숙명적이고 자연스런 흐름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서양미술사에 이어 우리 전통 선대화가의 작업실, 코로나시기 때 방역으로 사람들과 만나지 못했던 그 시기에 그린 스타의 방 시리즈로 연결이 되었다. 긴 시간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코로나 초기의 외로움을 떨치고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만의 고독감을 사랑하고 창작생활을 해가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 시기를 지나오면서 침묵마져도 내 편인 듯 그 고요함을 사랑하게 되었다. 또한 낮보다는 밤에 모든 에너지는 한 곳으로 모이고 내적인 에너지도 충만해짐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밤의 고요한 정적감은 작가로서의 내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간 살아온 작가로서의 삶도 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대가의 작업실을 그리며 그 캔버스의 공간을 통해 나를 비춰보는 성찰에서 자연의 거대한 품이라는 큰 스승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는 일은 작업의 내용과 형식도 바꾸게 해준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고요히 나를 들여다보고 토닥거려주며 내 자신에 관대함과 아량으로 대해주고 사랑으로 대해줄 때 그 사랑이 내 가족과 타인에게 옮겨 갈 수 있다. 낮도 좋고 밤이면 빛이 한 곳으로 모이기에 내적에너지도 한 곳으로 모임으로서 내적인 사유의 힘도 커진다.
##덜어내고 비워내며, 내적인 사유의 풍경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있는 인상을 받는다. 어떻게 생각하나?
= 고요한 정원과 수영장을 그리며 마치 나 자신이 수영장 물에 반사되면서 물 속의 깊은 곳을 통해 나의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는 경험을 한다. 내 그림을 바라보는 이도 그러한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화가의 작업실이 대가의 작업실을 통해 투영되는 나 자신의 민낯과 만나는 일이라면 이 번 전시를 앞 두고 가장 최근에 그린 ‘밤의 풍경’은 화가의 작업실이 밤의 고즈넉한 풍경으로 바뀐 것이다.
2022년 이화익 갤러리 개인전 때 선보인 ‘스타의 방, 화가의 작업실’에서 화면 가득 채운 오브제와 가구 사물들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나의 작가 의식이 극에 달한 그림들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전시 이후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처럼 나의 작업을 면밀히 돌아보고 그 간 그려왔던 작품들에서 캔버스에 꼭 필요한 것만을 그림 안에 넣음으로서 비우고 빼는 간결함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과정은 작가로서의 그림작업 뿐만이 아니 내 삶에도 적용이 되면서 내 의식 속의 불필요한 생각들, 묵은 먼지와 같은 생각들을 하나하나 비워가야 함을 느끼고 지금도 실행해가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집 안의 물건도 잘 버리지 못하는 나로서는 마음을 먹은 것 만으로도 변화로 가기위한 첫 걸음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내의식의 표현은 ‘마티스의 여인들’ 과 해바라기가 있는 ‘ 고흐의 방 4’로 이어지며 빛을 강조하면서 어두운 공간을 모아주고 그 공간 안의 빛의 에너지를 어둠속의 고요함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세개의 공간- 네면의 풍경을 거닐다’ 역시 전 작업의 꽉 체운 공간을 비워내고 덜어내면서 내 생각의 핵심만 표현한 작품이다. 덜어내니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다.
##앞으로의 다짐이 있다면….
= 작가는 늘 좋은 작업을 하고 싶어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 미래에도 늘 새롭고 싶은 작가의 마음은 작가가 제일 많이 알지만 때로는 스스로 그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늘 마음먹은 듯 제대로 되지않는 삶이기에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참으로 녹록치않은 삶이 또한 작가의 삶이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삶이 작가의 삶이라 피카소가 말했던가. 작업이 잘 풀리면 천국, 잘 안되면 지옥이라는 그의 말은 창작하는 사람의 심경을 잘 표현해준다.
나의 이 번 출품작 ‘세 개의 풍경- 내면의 풍경을 거닐다’도 그러한 예술가의 의식 속의 천국과 지옥 그리고 위안을 얻는 또 다른 세계인 자연 풍경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매일의 창작이 기쁨과 동시에 불행을 준다면 셈셈이다. 창작생활을 하며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고 오늘은 어제보다 캔버스를 더 많이 채웠고 붓질을 많이 했으며 생각에 따른 선택도 더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 속에서 느끼는 몰입과 명상의 순간들은 신과 함께 하는 순간이기에 그 충만한 과정을 겪으며 나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쌓이고 어느 날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을 본다면 그보다 큰 민족이 있을까 . 최근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인 정원과 숲, 수영장, 자연의 작업 이후 다시 화가의 작업실 풍경을 그리게 된다면 분명 그 이전과는 또 다른 작업실 풍경을 그리게 될 것이다. 내가 느끼는 자연 속에서 내적인 고요와 충만감이, 나를 더욱 성숙시키고 그로인해 더 빛나고 성장해가는 나의 작업실 풍경에 이르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도 스스로에게 주문과 마범을 걸어본다. 화가는 연금술사와 같은 사람들이기에.
(갤러리 라루나는 인천 국제 공항을 지은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의 투자를 받아 2022년 개관했다. 제 1회 전시 방혜자 작가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9회의 전시가 진행되었다.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소속 건축가들과 VR팀이 함께 가상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가상전시속 작품을 실제로 즐길 수 있도록 청담동에서 오프라인 갤러리도 함께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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