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분해(馬糞蟹).’ ‘말똥게’의 한자 이름이다. 한학자 담정 김려(金鑢·1766~1822)가 우해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1803년에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 나온 말이다. 우해는 지금의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일대다.
‘게’를 뜻하는 ‘해(蟹)’자는 중국 고대 우(禹) 임금의 치수(治水)와 관련한 전설이 있다. 우임금은 강의 물길을 내 홍수를 막고, 논밭에 물을 대는 국책 사업을 벌였다.
우임금은 ‘파해(巴解)’라는 사람을 양쯔강 이남인 강남지역에 보내 이 일을 맡겼다.
밭고랑에 구멍을 내는가 하면 농사꾼을 물어뜯어 두려움에 떨게 했던 골칫덩어리 벌레가 있었다. 바로 게였다.
파해는 게를 꼬여내고는 고랑에 끓는 물을 부었다. 게는 벌겋게 익어 죽었고, 그 맛은 시쳇말로 ‘니들이 게 맛을 알아?’였다.
사람들은 파해의 해(解)에다가 벌레 ‘훼(虫)’자를 붙여 ‘해(蟹)’자를 만들었다.
말똥 냄새가 난다고 해서 이름 붙은 말똥게 무리는 한강하구 경기도 고양특례시 장항습지 갯고랑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몸집보다 큰 굵은 집게와 다리에 난 수북한 털은 보기에도 섬뜩하다. 집게(角)의 날카로움(刀)은 쇠(牛)가죽도 조각낼 만한 위력의 모양새다.
노루가 물을 마시려고 찾던 길목, 장항(獐項) 습지의 매력은 해오라기 번식 장소이자 뱀장어 산란지인 버드나무 숲에 있다.
버드나무 숲의 곡절은 이렇다.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1984년이나 1990년 대홍수 때 떠내려온 버드나무가 이곳 펄과 습지에 뿌리를 내려 번식을 했다는 게 지금까지 유력한 설이다.
빗물조차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곱디고운 펄이 다져져 생긴 장항습지에서 버드나무가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해답은 한강하구 기수 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말똥게에서 찾을 수 있다. 말똥게의 식량은 버드나무 잎이다. 펄에 떨어진 잎을 먹기 위해서 말똥게는 버드나무 뿌리 밑에 구멍을 파고 산다. 버드나무에 산소를 공급하는 생명의 틈새다.
말똥게의 배설물은 버드나무에 소중한 양식이다. 버드나무와 말똥게가 공생의 틀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장항습지(5.95㎢)는 2006년 4월 환경부가 지정한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60.5㎢)에 포함됐다. 재두루미·개리·저어새 등 멸종위기종 33종과 호사도요·원앙 등 천연기념물 24종, 상괭이·붉은말똥게 등 해양보호생물 5종이 서식하고 있다.
장항습지는 2021년 5월 21일 국내 24번째 람사르 습지로 등재됐다. 재두루미·저어새는 전 세계 개체군의 1% 이상이 다시 찾고, 해마다 3만여 마리의 물새가 서식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한 것이다.
장항습지에는 생명의 끈을 잇는 협력, 그리고 평화. 자연의 순리가 온전히 살아있다.
/박정환 선임기자 hi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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