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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마음을 이해하면 타인도 이해할 수 있어요.”
지난 10일 대구 지산초등학교 5학년 2반 교실의 ‘마음학기제’ 수업시간. 학생들은 수업 시작부터 안예은의 노래 ‘문어의꿈’을 신나게 부르며 노래 속 문어의 불편한 감정을 찾아냈다. 이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우울하고 불편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요?”라고 하자, 학생들의 저마다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을 앞다퉈 말한다. “좋아하는 과자를 먹으면서 유튜브를 봐요”, “혀에 불이 날 정도로 매운 걸 먹거나 인형을 막 때려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등 각자 다른 해소법에 친구들은 웃기도 하고 “OO이의 방법은 저도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등으로 공감하기도 했다.
대구시교육청이 시범운영 중인 ‘마음학기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 학교 폭력을 예방하는 대책으로 실시되고 있다. 대구교육청은 지난 코로나 팬더믹 이후 학교폭력과 교내 갈등 등이 증가하자, ‘마음 교육’을 교과에 넣는 계획을 세우고 ‘마음교육’이라는 개념 정립과 교사들을 위한 교수·학습 워크북을 완성했다. 마음교육의 목표는 감정조절력과 ‘회복탄력성’을 향상시켜 마음의 힘을 기르는 데 있다. 보통 심리학과 사회학에서 불안, 우울, 좌절 등에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인 ‘회복탄력성’ 개념을 제도권 교육으로 안착시킨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지난해 12곳, 올해 지산초등학교를 포함해 50곳을 선도학교로 선정했다. 내년부터는 대구 시내 모든 초등학교·중학교에서 시행될 계획이다.
‘마음학기제’는 한학기 동안 15차시로 이뤄진다. 사춘기 등으로 심리 정서적 변화가 큰 시기가 발달 단계상 초 6학년, 중 2학년인데, 초 6학년과 중2학년이 되기 전에 미리 초 5, 중 1 때 실시해 정서적 안정을 꾀하는 것으로 설계했다. 초 5는 ‘나’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나의 정서조절능력을 키운다면, 중학교는 사회적 ‘관계’에 초점을 두어 타인과의 긍정적인 관계 형성를 형성하는 ‘사회정서역량’을 함양하는 데 집중한다.
대구교육청은 마음학기제 운영 후, 실제 학교폭력 피해가 줄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 1차 학교폭력실태조사에서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 0.9%로 전국 최저를 기록했고, 학교폭력 피해율도 전년 대비 56.6% 감소했다. 이에 ‘마음학기제’는 교육부에서 실시한 ‘2024년 시·도교육청 평가’의 국가시책 추진실적 정성평가 중 ‘학교 폭력 근절노력’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9차시 수업인 이날은 학급일지 속 친구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보는 시간도 이어졌다. ‘문화예술경연대회에서 상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받지 못해 속상하고 상 받은 친구가 부럽다’ ‘OO가 자기 주장이 강해 다른 친구들과 의견 조정이 잘 안 돼 불편하다’ 등의 고민이 나왔다. 4~5명씩 모인 모둠으로 발표한 해결방법에 학생들은 공감을 가거나 좋다고 생각이 들면 스스럼없이 엄지를 만들어 ‘따봉’으로 ‘좋아요’를 표현하기도 했다.
학생들 역시 변화를 느끼고 있다. 화가 날 때 ‘자책’하던 게 습관이었던 박세훈군은 “친구들과 감정을 공유하면서 ‘괜찮아 다음에는 잘할 수 있을거야’라고 긍정적 생각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허강율군은 “전에는 친구랑 싸울 때 막 치고받고 싸웠는데, 수업 듣고 나서부터는 말로 하고 서로를 배려한다”고 자신의 변화를 기뻐했다. 유채희양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곤 했는데, 이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나’ 생각하고 감정을 다스리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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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사는 “학교폭력은 서로 이해가 안되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내 마음과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고 서로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학교폭력이 예방된다”고 말했다. 이어 “‘도덕 교과’가 있는데 ‘마음학기제’가 필요한가 생각도 들 수 있는데, 아이들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지지받는 게 가장 큰 변화”라며 “내가 이렇게 표현해도 선생님은 내 감정을 이해해 주실 거야라는 믿음 같은 게 생긴다. 초등 마음 교육에서는 가장 큰 목적이 정서 조절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사는 “내성적인 아이들은 발표가 힘들 수 있으니 모둠끼리, 짝끼리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가정에 어려움이 있는 등 보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교육청이 운영하는 위센터(아동·청소년상담센터)의 도움을 받도록 안내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구교육청은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갈등 조정과 관계 회복을 위해 ‘관계회복지원단’,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기관인 ‘마음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관계회복지원단은 갈등 조정자 연수를 이수한 교원을 중심으로 꾸려진다. 희망자에 한해 학교폭력으로 인한 전학이나 자퇴 등 징계를 밟기 전에 학생의 잘못을 알려주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지원단에서 올 1학기에 6개월 동안 대화 모임을 57건 진행한 결과 1건을 제외한 56건이 당사자간 관계 회복이 돼 자체해결 및 소송취하가 됐다. 관계회복지원단 주축교사는 8명과 현장실천가 50여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마음봄센터는 교육부의 시범사업으로 대구와 광주, 전국에 2곳 있다. 하루 3~6시간, 최대 3개월간 이용이 가능하다. 아이들은 그림, 모래놀이 등을 통해 마음을 표현하고 긍정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
강은희 대구교육감은 “최근에는 갈등 관리, 감정 조절이 잘되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 “학교 폭력을 겪은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가면, 대학교에 가면 마음이 괜찮아질까. 여전히 앙금이 남을 수 있다. 우리는 교육자들이기 때문에 교육적 해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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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관계회복지원단에 대한 학교와 학부모의 수요가 많지만 교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강 교육감은 “학교 폭력이 담임선생님 등 개인에게 매몰되서는 안 된다”며 “철저하게 학교 시스템을 정비하고 현장에 도움을 줘야 하는데 인력에 보다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교육감은 교육부를 향해 “관계획복지원단 교원 TO를 꼭 좀 고려해서 넣어주시길 바란다”며 “그것만 지원해 주시면 일은 우리가 또 열심히 할 수 있다”고 거듭 관계회복지원단의 교원 지원을 요청했다.
교육부는 대구의 모범사례를 바탕으로 학교폭력 예방 차원에서 관련 교재 개발과 사회정서역량 교사 연수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이해숙 학생건강정책관은 “교육부는 좋은 사례들을 바탕으로 제도화하는 게 역할인데, 내년에 5년마다 세우는 ‘제5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을 수립하는데 우수 사례로 잘 담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구에서 시작한 마음교육도 내년에 전국적으로 확산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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