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이 외환시장에 미치는 후폭풍이 커지자 정부가 ‘선물환포지션 한도 확대’·’은행 유동성커버리지 비율(LCR) 규제 완화’ 등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외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운영해 온 단기외채 유동성 규제를 대대적으로 풀어, 시장에 달러 공급을 원활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12일 한국은행·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외환당국은 이르면 이달 중 ‘외환 유입을 촉진하기 위한 구조적 외환 수급 개선 방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이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 자금이 대규모로 빠져나가고 원·달러 환율이 치솟은 데 따른 조치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장중 달러당 1440원 안팎으로 튀어 오른 바 있다.
정부는 ▲선물환포지션 한도 확대 ▲은행 LCR 규제 완화 등을 검토하고 있다. 선물환포지션 한도는 은행 등이 자기자본 대비 보유할 수 있는 선물환 한도를 뜻한다. 은행이 외환 선물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금액(선물 외화자산-부채)의 한도를 늘려주게 되면, 은행들의 외화자금 공급 여력이 확대돼 달러 공급이 느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이 한도는 국내 은행의 경우 자기자본 대비 50%, 국내 외은지점은 250%로 제한되고 있다. 2010년 10월 도입 당시와 동일하다. 과거 국내은행 30%·외은지점 150%로 한도가 조여진 적은 있어도, 현행인 50%·250% 이상으로 한도가 완화된 적은 없다.
또 다른 카드인 LCR 비율은 앞으로 30일간 은행이 순외화 유출에 대비해 쌓아둬야 하는 달러·미국 국채 등 고유동성 자산을 일컫는다. 만약 LCR 비율이 80%라면, 30일 동안 순유출 외화 예상액을 10억달러로 가정 시 8억달러 이상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 비율을 하향 조정해 완화하게 되면, 달러 확보에 대한 압박이 줄어 달러 공급이 원활해질 수 있다.
현행 은행들의 외화 LCR 규제 기준은 80%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은행들의 외화유동성 사정이 나빠져 2020년 3월 70%까지 낮춘 적이 있다. 정부는 이와 함께 통합(원화+외화) LCR 규제도 시행하고 있는데, 이 비율은 97.5%로 내년 1월 1일부로 이것이 100%로 정상화될 예정이었다. 이런 정상화 일정을 중단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런 제도들은 우리나라의 ‘외환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10여년간 구축해 온 것들이었다. 특히 선물환포지션 제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단기외채가 급증해 외환시장 불안 요인이 되자, 과도한 자본 유입을 막아야 한다며 도입됐다. 도입 당시엔 장기적인 원·달러 환율 하락, 즉 원화 강세에 대비하려는 조치였지만, 이를 반대 방향으로 구사하는 것이다. 단기외채라도 유입시켜 시장 수급을 개선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외환당국은 이같은 조치가 비단 비상계엄 사태 때문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같은 트라우마 여파로 우리나라의 외환 수급 정책은 그간 ‘들여오는 건 어렵고, 나가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방향 일색이었는데, 지금은 이런 구조를 전환해도 될 만한 기반이 충분히 갖춰졌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비대칭적인 외환 수급 정책을 개선하기 위한 완화책은 2~3년 전부터 고민해 오던 것”이라며 “이번 규제 완화는 어느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그런 방향으로 나가야 했을 정책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좀 더 속도감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규제 완화로 외환 건전성이 악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외환 부문의 건전성을 평가할 땐 단기외채 규모뿐 아니라, 여러 기준을 살핀다”면서 “만약 규제 완화를 통해 국제 신용평가사나 IMF에서 한국의 잠재적 외환 부문 건전성이 취약해졌다는 평가를 내린다면 그건 득보다 실이 많은 셈이기에, 그런 점은 충분히 감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에 따라 과거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규제 완화 카드가 나올 수도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과도한 시장 변동성에 대해서는 시장 심리 반전을 거둘 수 있을 만큼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아예 선물환포지션 제도 폐지 등도 고려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규제 완화가 시행되면, 외환당국이 외환 수급 안정화에 힘쓴다는 시그널을 준다는 점에서 ‘심리적 안정’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비상계엄이라는 정치적 상황의 중대성·특수성을 고려하면 언제까지나 단기적인 대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관련 기관들과의 논의를 거쳐 이달~내년 초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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