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10시20분경 비상계엄을 선포할 당시 많은 기자들은 취재원과 식사하던 중이거나, 퇴근 후 집에 있었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기자들은 국회, 혹은 보도국·편집국으로 향했다. 이후 이날 밤 11시부로 전국에 발표된 계엄사령부 포고령에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라는 내용이 포함돼 긴장감이 극대화됐다. 미디어오늘이 불과 일주일 전, 비현실적이었던 그날의 밤을 전한다.
계엄 직후 국회로 달려간 기자들·보좌진
일간지 A기자는 “밤 9시 넘어서 편집국에서 어떤 첩보를 입수했다며 대기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밤에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체크하더라. 처음엔 야당을 향한 대국민 호소 같은 건 줄 알았다. 비상계엄을 선포하길래 부서방과 꾸미방(국회 출입기자 단톡방)에 ‘계엄이래!’라고 소식을 알렸다”고 말했다. 일간지 B기자는 “오밤중에 중대 발표한다는 설이 돌았다.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끼리 다들 서로 무슨 내용이냐고 묻고 있었다. 저녁 10시부터 대국민 담화를 한다는 내용으로 좁혀졌고, 계엄이 선포됐다. 회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회사로 뛰어 들어갔다”고 말했다.
방송사 C기자는 “집에서 양말 벗고 있는데 아내가 이상한 게 뜬다고 TV를 보라고 했다. 딥페이크인 줄 알았다. 국회로 오는 중간에 경찰이 막더라. 마포에서 밥 먹다 국회로 간 후배 두 명이 있었는데, 미안하지만 그 친구들한테 담을 넘어서 들어가라고 했다. 저는 국회에 못 들어간 기자와 제 차에서 임시기자실을 꾸려서 (리포트 내용을) 녹음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를 출입하는 권혁철 한겨레 기자도 “국방부 사람들 3명과 약속이 있어서 저녁을 먹고 밤 9시쯤 2차로 소주를 마시러 갔다. 2차에서 국방부 사람 두 명 중 한 명이 밤 10시쯤 사라져서 도망갔나 생각했는데, 다른 한 명도 계속 전화 받으며 왔다 갔다 하더라. 밤 10시30분쯤 속보가 뜬 걸 확인했다”며 “기자실로 바로 향했다. 밤 11시20분에 갑자기 군사경찰이 본인도 지시받아서 하는 말이라면서 나가달라고 했고, 테이저건을 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회사가 위험할 수도 있다. 가능한 인원 최대한 출근해달라.”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남궁욱 JTBC 보도국장은 이날 밤 11시30분 보도국 전체방에 공지했다. 다수 언론사는 출근할 수 있는 사람은 당장 나와달라는 공지가 나왔다.
국회 안팎에 있던 보좌진들도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소속 D비서관도 “퇴근 후 당시 보좌진들끼리 국회 앞에서 밥 먹고 있었다. 사장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큰일 났다고 해서 나가보니 TV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었다”며 “보좌진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국회로 막 뛰어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소속 신진영 비서관은 “집에서 설거지하면서 유튜브 틀고 기다리고 있었다. TV로 보다가 소리를 질렀다. 비상계엄이라고 의원님께 전화했더니 처음엔 의원님도 안 믿었다”며 “아내한테 며칠 치 짐을 챙겨달라고 하고 한동안 집에 못 들어올 것 같아서 씻고 택시를 불러서 갔다. 기사님이 국회로 가도 되는 거냐고 물으셨고, 저는 가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막아선 경찰, 진입하는 계엄군에 공포감
국회 앞에 다다른 기자들과 보좌진은 경찰의 장벽에 가로막혔다. 방송사 E기자는 “총 3명이 (국회에) 갔는데, 한 명은 들어갔고, 다른 한 명은 담을 넘어서 들어갔고, 한 명은 못 들어갔다”며 “헬기가 오고 있다고 국회에서 보고하면 스튜디오에서 앵커가 이 소식을 전하고, 기자들이 폰으로 찍은 영상으로 화면이 나갔다. 국회에 들어간 사람들이 계속 전화 연결 상태에서 소식을 전했다. 당시 너무 긴박해 아무런 체계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D비서관은 “(국회에 들어온 후) 천안에 계신 의원님한테 전화했다. 다시 국회 정문으로 나가보니 경찰이 막고 있었다. 출입증을 보여주면 들여보내 줬는데, 밤 11시부터 막더라. 못 들어오는 사람들이 경찰과 싸우고 있었다”며 “갑자기 머리 위로 헬기가 지나갔다. 3대가 한눈에 보였다. 그때부터 공포감이 들고 몸이 굳었다. 그 순간 누가 ‘본청 사수해야 해’라고 말해서 본능적으로 다들 본청으로 뛰었다. 구두 신고 엄청나게 뛰어갔다”고 말했다. 이 시각부터 경찰은 ‘국회의원도 들여보낼 수 없다는 지시를 받았다’며 진입 자체를 봉쇄했다.
본청 앞은 이미 군인들이 진입하고 있었다. D비서관은 “힘으로 안 되니 계속 구석으로 몰렸다. 공포심이 엄청났고, 계속 헬기 소리가 들렸다. 벽에 몰렸는데, 군인이 저를 막아주면서 ‘여기 위험하니까 건물 밖으로 제발 나가라’고 말했다. 계속 못 나간다고 말했더니 그럴 거면 고개 숙이고 있으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D비서관은 “2024년에 무장 군인이 몰아치는 걸 민간인이 볼 일이 얼마나 있겠나. 며칠 잠을 제대로 못잤다”고도 했다.
신 비서관은 “경찰이 출입을 막았다가 중간에 열어준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들어갔던 것 같다. 로텐더홀에 들어가니까 사람이 꽤 많이 와 있었다. 좀 있다가 후면을 보니 ‘두두두두’ 소리가 들렸는데 창문 밖에 헬기들이 땅으로 내려오는 게 보였다. 이건 영화가 아니었다”며 “다들 우왕좌왕하다가 민주당 보좌진 단톡방에 1층 후면 쪽에 소파 같은 가구를 쌓아 입구를 막자고 공지했다. 밖에 군인들이 총을 차고 있었다. 총을 맞아보지 않아서 얼마나 아픈지 모르고, 쏘면 어떡하지? 싶으면서도 출입구를 폐쇄했다”고 했다.
급박한 상황 속 ‘호외’ 제작 결정
경향신문과 한겨레, 서울신문은 비상계엄 다음 날인 지난 4일 호외(특별판)를 발행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호외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다음날인 2009년 5월24일 이후 15년 만이다. 당시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도 호외를 발행했다.
이주현 한겨레 편집국장은 “보통 밤 10시에 마감하는데, 이날은 중대 발표가 예정돼 최종 마감 시간을 한 시간 늦췄다. 비상계엄 선포 후 1~2면만 바꾸고, 논설위원실에서 긴급히 사설을 작성했다”며 “편집인과 대표이사가 다시 회사로 출근했고 논의를 거쳐 호외를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관철 경향신문 편집국장도 “비상계엄 선포가 반헌법적이라고 보고 호외 발행을 결정했다. 퇴근했던 데스크와 논설위원, 기자들이 속속 회사로 복귀하면서 편집국이 정상화됐다”고 했다. 서울신문 관계자도 “중대한 사건인데 마감이 빨라서 신문에 못 실었다. 어떻게든지 (새로 신문을) 찍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모여서 찍었다. 넘어가기에는 중대한 사건이어서 다들 새로 찍어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현장은 그 어느 때 보다 분주했다. “대부분 화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수요일까지 밤새웠다. 국회, 대통령실, 동부지검, 경찰, 국수본 등 온갖 중계 포인트가 있고, 취재도 해야 하고, 특보 출연도 해야 하고, CCTV도 따고, 총리가 온다니까 뻗치기하고, 뉴스룸 인력을 총동원해도 이 상황을 충실하게 막기는 어렵다. 리포트 제작도 해야 한다. 메인뉴스가 평소보다 길어지니 꼭지 수도 엄청 많다. 탈진 상태다. 그러나 일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E기자의 말이다.
법조를 출입하는 일간지 F기자는 “법학 교수님들에게 전화 돌리고 반헌법적 계엄선포인지 물었다. 밤늦게 전화해서 죄송하다니까 이런 비상시국에 뭘 죄송하냐고 당연히 (전화)할 수 있다고 엄청 상세히 응대해 주셨다. 허탈해하면서도 법적 쟁점을 자세히 말해주더라”고 했다.
E기자는 “보수성향 언론사들도 엄청난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 진영을 떠나 이번 사태만큼은 정말 한마음 한뜻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끝까지 탄핵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보수성향 매체의 기자들이 더 좌절했다”고 했다. 계엄의 절차적 문제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 정황 등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TV조선, 채널A 등 보수언론에서도 여러 단독 보도가 나왔다.
기자들의 고민도 있다. 탄핵안에 끝까지 표결하지 않은 국민의힘에 대한 문제의식이 크지만 ‘기계적 균형’을 지켜야 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E기자는 “직업윤리를 지켜야 한다. 국민의힘의 목소리도 균형 있게 담으려고 노력하는데 힘들다”고 말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