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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내란죄라면 이재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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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상황인식 틀린 게 있었나

‘당의 아버지’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

부정선거 스모킹 건 잡았다고 한들

‘한국의 트럼프’ 행세하는 까닭은?

철도노조 파업 닷새째를 맞이한 지난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철도노조 파업 닷새째를 맞이한 지난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대통령이 헌법상 자신의 권한인 계엄령을 선포했다가 의회의 요구에 따라 즉각 해제한 후 ‘내란수괴’로 몰리고 있는 현실을 이해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도, 해제도 헌법 규정에 따라서 했다. 당시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상황이었는지, 그러므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때’였는지는 법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사법부의 몫이지 야당의 권한은 아니라는 뜻이다.

대통령의 상황인식 틀린 게 있었나

윤 대통령은 계엄선포에 즈음한 ‘긴급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그 요인과 배경을 설명했다.

① 현 정부 출범 이후 국회는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했다. 22대 국회에 들어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이다. 이는 국내외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다.

② 판사를 겁박하고, 다수의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행안부 장관 탄핵, 방통위원장 탄핵, 감사원장 탄핵, 국방장관 탄핵 시도 등으로 행정부마저 마비시키고 있다.

③ 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에서 재해 대책 예비비 1조원, 아이 돌봄 지원 수당 384억, 청년 일자리,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등 4조 1000억원을 삭감, 심지어 군 초급 간부 봉급과 수당 인상, 당직 근무비 인상 등 군 간부 처우 개선비조차 제동을 걸었다. 예산까지도 오로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러한 민주당의 입법 독재는 예산안 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이상의 윤 대통령 현실인식 가운데 사실이 아닌 점이 있는가? 일개 시민인 나의 상식적 판단으로는 없다. 모두가 사실이다. 민주당은 절대다수 의석으로 입법과정을 전횡했다. 정부에 대해 무한태클·무한위협·무한공격을 가함으로써 기어이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심산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범법 혐의의 백화점 격인 이재명 대표를 법적 징벌의 위험으로부터 구해내 차기 대선에 당선시키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지상과제다.

이 같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의 무분별한 입법 폭거를 제어할 제도적 수단은 없다. 헌법과 관련 법률이 이런 상황에 대해 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소수 여당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들에게 정부는 타도의 대상이었다. 윤 대통령을 조기에 쫓아내는 것만이 이 대표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어, 퇴진 압박을 가중시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좌파 세력의 탄핵 및 징벌 경험을 교본으로 삼았을 법하다.

‘당의 아버지’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

민주당 의원 대다수는 ‘당의 아버지’, ‘신의 사제’ 이재명을 위해서라면 의회민주주의의 근본이념과 본령 따위는 짓밟아버려도 된다는 거의 신앙적 확신에 사로잡힌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집단으로부터의 배제에 대한 공포심에 짓눌렸을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이들의 폭주를 제어할 힘은 이 대표에게만 있다. 그런데 그가 누구인가? 자신의 사법적 회생과 차기 대선 출마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황을 이렇게까지 악화시켜 왔겠는가.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무한질주를, ‘자유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정당한 국가 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로 인식했다. 특정 정치세력의 ‘내란 획책’에 대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제어수단으로 ‘비상계엄령’ 말고 달리 뭐가 있었을까? 대통령이 통치권을 포기하고 민주당의 의도를 수용했어야 옳았을까? “정치의 본질은 권력투쟁(struggle for power)”이라고 한 모겐소(Hans Joachim Morgenthau)의 정의에 공감하면서?

민주적 사고방식으로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본다면 즉각적인 ‘내란죄’ ‘내란수괴’ 규정은 옳다고 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의 배경으로 제시한 정치 상황을 먼저 고찰 판단해야 한다. 현실 정치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을 개인적·정파적 편견으로 치부해 버리면 대통령중심제 정치체제는 입지를 상실한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가 이재명의 면죄부(혹은 면벌부)가 되는 황당한 상황을 우리는 감내해야 할 것인가? 그러고도 향후 대한민국의 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믿거나 기대할 수 있을까? 역대 어느 대통령, 어느 독재자도 엄두조차 못 냈던 셀프 사면을 민주당 이 대표는 감행할 게 뻔하다. 자유민주주의 유지에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보다 더 위험한 것이 이 대표의 셀프 사면이다. 민주당은 이에 동의하는가?

윤 대통령이 갑자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민주당이 장악한 국회가 “해제해!”라고 요구하자 “예, 알겠습니다”라며 물러선 그 ‘허무 개그’ 과정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 그럴 것이면서 국회를 ‘범죄자 집단의 소굴’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집단으로 규정했다는 것인가. 그렇게 냉큼 주저앉아 버리면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은 어찌해야 한다는 것인가?

부정선거 스모킹 건 잡았다고 한들

여권 일각과 그 지지자들은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 서울 관악청사, 경기 수원 선거연수원에 진입한 사실에 일말의 기대를 거는 인상이었다. 그렇지만 설령 거기서 부정선거 의혹을 확인시켜주는 스모킹 건이 확보되었다고 해도 만사휴의(萬事休矣: 만 가지 일이 끝장)다. 손발이 완전히 잘린 채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된 윤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자료의 신빙성이 클수록 야당의 윤석열 죽이기는 모질어질 것이다.

더 기가 막힐 일은 민주당 이 대표가 상황을 장악하고 윤 대통령 징벌의 판관으로 나선 지금의 분위기다. 숱한 혐의의 형사 피고인‧피의자가 단지 몇 시간 만에 대통령에 대한 생살여탈권자로 변신할 수 있다니! 이게 법치주의 자유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아연하여서 할 말을 잊게 된다. 이야말로 이 대표와 민주당 내 형사 피고인‧피의자들, 그리고 같은 처지의 주변 정당 유력자들이 벌이는 또 다른 형태의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들은 상황 정리의 전면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정치가 몰가치‧무염치‧후안무치의 장(場)임을 굳이 확인시킬 일은 아니지 않은가.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데도 도가 있고 예가 있다. 자신의 허물을 모르는 체하면서 남의 흠을 부풀려 떠드는 것은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가 아니다.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서울발 인터뷰 기사에 실렸다는 이재명의 언급이 눈길을 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한국의 트럼프’라고 부릅니다.”

자신은 극단적 정파주의자(hyperpartisan)가 아니라‘현실주의자(realist)’이자 ‘실용주의자(pragmatist)’라며 한 말이다.

그는 미국의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에 비유됐다는데 이제부터는 트럼프만을 택하기로 한 모양이다. 민주당에서는 “34개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라는 따위의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이게 바로 그가 ‘한국의 트럼프’ 행세하고자 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국의 트럼프’ 행세하는 까닭은?

이 대표는 이 인터뷰에서 “물은 한도를 넘으면 빠르게 넘친다”라며 “(일단 물이 넘치면) 죽기보다는 함께 살기를 택할 것”이라고 국민의힘 의원들의 탄핵 동조를 압박했다. 이는 점령군 우두머리의 상대진영에 대한 협박이다. “죽기 싫으면 항복하라”라는 이 대표의 최후통첩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공포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적잖은 의원들의 백기투항 시간이 머지않아 보인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들여다볼수록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2017년의 참변을 기억하고 대처했더라면 지금 같은 처지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 아닌가. 21대 총선에서 그처럼 무참히 무너지고도 각성하기는커녕 그 알량한 당내 지위와 세력에 집착해 집안싸움을 벌이느라 22대 총선도 망치고 결국 정권붕괴의 상황까지 초래하다니!

이 정당의 유력자라는 사람들 대부분은 남의 뒤에 숨어서 변죽을 울리는 일에만 능하다. 밖으로 뛰어나가 국민과 직접 대화하고 호소하고 설득하는 수고는 회피한다. 국회의사당 안에서 가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는 게 이들의 ‘노고’ 거의 전부다. 점잔빼기를 누구는 할 줄 몰라 안 하는가?

국민의힘 정권은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안한 말이지만 국민의힘에는 ‘다음 기회’도 없다. ‘폭망’으로 질주하는 고장 난 열차와 같다. 지금은 108명의 소속 의원으로 야당의 대통령 탄핵과 개헌 시도를 막고 있지만 그 둑이 무너지는 것은 금방이다. 이미 마지노선 8석의 일각이 허물어지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당내에는 자기희생을 통해 당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의인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민주 대한민국의 운명은 민주당 대표 이재명에게 달렸다. 그는 여세를 몰아 정권을 장악하고 좌파적 국가로 통치구조를 바꾸기 위한 개헌을 추진할 개연성이 아주 높다.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기 바쁜 국민의힘 의원들의 조력을 받아 가면서!

보수정당의 명은 여기까지다. 한동훈 대표가 당을 수습하고 대응력을 갖추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라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당을 분열시킨 책임의 일단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의 기억에 의하면 그도 대홍수에 떠내려갈 운명을 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다시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의 경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자살에 의하지 않고는 결코 쇠망하지 않는다.”

정당의 경우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의미도 다르지 않다.

ⓒ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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