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는 ‘대가족’이 ‘강철비’보다 더 치열한 이야기였어요.”
11일 개봉하는 영화 ‘대가족'(제작 게니우스)은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는 휴먼 드라마이다. 권력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권 변호사 시절을 그린 영화 ‘변호인’과,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경고한 ‘강철비’ 그리고 그 후속편인 ‘강철비2: 정상회담’과 비교하면, ‘대가족’은 스케일이 작은 영화처럼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출자 양우석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양 감독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변호인’부터 ‘대가족’까지 모두 같은 결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가족’이 다루는 가족이야말로 앞선 작품보다 더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했다”면서 제목인 ‘대가족’ 가운데 ‘대’는 ‘크다'(大)가 아니라 ‘대하여'(對)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설명했다. 가족에 대해 다 함께 이야기 해보자는 의도라는 의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족은 굉장히 천천히 변화해왔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불과 한 두 세대 만에 가족의 규모, 형태, 의미가 달라지고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세계적인 석학들도 한국의 저출산율을 언급하면서 비명을 지르잖아요. 누구의 잘못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대가족’을 선택한 배경이죠.”
‘대가족’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출가로 대를 이을 수 없어 애타는 이북 출신 중년 남성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그의 앞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손주들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배우 김윤석이 연기한 주인공 함무옥은 핏줄에 집착하는 인물. 전쟁을 겪은 세대로, 피난 길에 동생을 잃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무옥은 핏줄과 가족에 대한 갈망이 큰 인물이다. 반면 이승기가 연기한 무옥의 아들 문석은 아버지와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진 인물로, 승려의 길을 걷기로 선택을 하면서 핏줄을 비롯한 세속적 인연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영화는 두 인물의 갈등을 통해 가치관이 충돌하는 부모와 자녀 세대의 모습을 드러낸다. 양 감독은 이를 위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2000년으로 설정했다. “20세기와 21세기의 가치관이 혼재하고 충돌하는 해”라는 설명이다.
“무옥은 20세기 가족관을 가진 사람이고, 문석은 21세기 가족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정말로 가족이 필요한 아이들 민국(김시우)과 민선(윤채나)이 나타나서 가족에 대한 이들의 욕망, 결핍이 치열하게 부딪치죠. 그 결과로 무옥과 문석, 민국과 민선이 다 함께 성장을 합니다. 이를 통해 ‘가족의 본질은 무엇인지’ ‘가족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가족의 구성원만 책임지면 되는 건지, 다 같이 힘을 보태야 하는 건 아닌지’ 질문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에는 문석이 의대생 시절 수백여 차례 정자 기증을 하게 된 사연이 나온다. 민국과 민선이 문석을 가리켜 자신들의 아버지라며 무옥을 찾아오는 이유이다. 이러한 설정이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양 감독은 “영화는 결코 현실을 뛰어넘을 수 없다”며 자신의 작품 속 설정은 단 하나도 허투루 만들어진 게 없다고 강조했다.
‘대가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확산 여파로 시장이 어려운 가운데 최근 12·3 비상계엄 사태까지 겹쳐 혼란한 시국에 관객을 만나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 또는 공개하는 작품들이 홍보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상황에서 양 감독은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해제된 직후였던 4일 오전 예정대로 인터뷰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계엄령이 요건을 갖추지 못해 금방 해제될 줄 알았다”고 밝힌 그는 비상계엄과 이 이후 지속될 정국의 혼란 못지 않게 콘텐츠 산업의 위기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양우석 감독은 “우리나라의 인구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콘텐츠 산업이 지금까지 좋았던 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일”이라며 “그게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케이팝은 모르겠지만 영화와 드라마 같은 내러티브 콘텐츠 산업은 증발 직전”이라고 진단했다.
“영화의 경우, 선진국들은 극장 수익이 1이면 부가 수익은 그 세 배입니다. 우리나라는 비디오 산업이 증발하면서 오로지 극장의 힘으로 지금까지 기적적으로 버텨왔어요. 그랬다가 팬데믹 때문에 스트리밍이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위기를 맞았죠. 지금 시급한 건 산업 종사자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해왔다면, 앞으로는 산업의 지속가능한 확장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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