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지적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에 해당한다는 장애인 증명을 발급받은 사람이다. 지능지수(IQ)는 64로 판정됐고 성인 주의력 결핍, 과다 행동 증후군 진단도 받았다. 그런데 A씨가 사기 혐의로 기소되면서 재판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IQ 64로 지적장애가 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속여서 돈을 가로챌 수 있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이 사건은 일반 시민이 배심원이 되는 국민참여재판에 넘겨졌다.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사람은 형을 감경할 수 있다’는 형법 규정을 A씨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놓고 배심원 7명의 의견이 갈렸다.
◇IQ 64인 지적장애인이 13명 상대로 사기… 변호인 “감형 받아야”
A씨는 사기, 점유 이탈물 횡령,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등 혐의로 작년에 기소됐다. 온라인 직거래 플랫폼에서 물건을 파는 척 하면서 13명을 속여 돈만 받고 물건은 넘기지 않는 방식으로 400만원을 가로챈 혐의가 적용됐다. 다른 사람이 떨어뜨린 신용카드를 주운 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거나 버스·택시 요금을 내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에 대한 1심 재판은 지난달 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 방식으로 진행됐다. A씨의 변호인과 검찰이 10시간 넘게 공방을 벌였다.
A씨의 변호인은 “A씨가 지적장애로 인해 사물에 대한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므로 형을 감경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혐의는 인정하지만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행이니 감형을 받고 싶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검찰은 A씨의 범행이 “치밀한 하이재킹이었다”면서 “지적 장애가 없는 일반 성인을 상대로 교묘하고 치밀하게 사기를 저지른 A씨가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배심원 7명 중 4명 “감형 안된다” 2명 “감형” 1명 “일부 감형”
당시 재판에서 배심원단도 1시간 30분 동안 A씨의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에 대해 논의했다. 배심원으로 참여한 일반 시민 7명 가운데 4명은 “A씨는 사물에 대한 변별 능력이 부족하지 않다”고 봤다. 반면 2명은 “변별 능력이 부족하다”고 했고, 나머지 1명은 “사기 혐의 중 일부에서는 변별 능력이 부족했다”고 했다.
배심원단의 다수 의견은 A씨가 사기 범행 당시 판매자를 사칭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그는 직거래 플랫폼에서 실제 물건 판매자가 설정한 프로필 사진과 같은 사진을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했다. 판매자가 올린 글에 구매 의사를 댓글로 남긴 이들에게 접근해 자신이 실제 판매자인 척 휴대전화 연락처를 남기고, 연락이 온 구매자들에게 입금을 독촉했다. 입금이 되면 잠적한 후 자신이 남긴 댓글을 모두 삭제하기도 했다.
또 배심원단은 A씨가 사기 피해자에게 “변호인을 선임해서 대응하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친다”고 답한 사실에도 주목했다. 자신의 행위가 ‘범죄가 된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배심원단은 A씨에게 징역 4개월에 벌금 200만원을 선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도 배심원단 의견대로 형을 선고했다. 검찰과 A씨가 모두 항소하면서 이 사건은 2심 재판에 올라갔다. 앞으로 재판에서도 A씨의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논란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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