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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그의 진심은 ‘선별된’ 약자만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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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국민께도 더 잘하고, 정말 잘하고 싶은 진심이 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8일 중앙여성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한 말이다. 여성과 여성정책에 대한 한 대표의 따스한 진심을 듣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얼마 전 그의 ‘페이스북’ 글이 떠올랐다. 정치판 ‘리걸 마인드’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한 대표는 다소 뜬금 없는 타이밍에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용납될 수는 없다”며 역시나 엄밀한 ‘리걸리스트’의 모습을 과시했다. 그는 야당이 “젠더나 세대갈등을 부추겨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얄팍한 정치적 계산”이라고 비판하자 “이건 젠더 갈등 문제도 세대 갈등 문제도 아니다. 상식의 문제”라고 맞받기도 했다.

「경향신문」 등이 이미 지적했듯 그의 ‘엄밀함’은 선택적이다. 전당대회 상대 후보였던 나경원 의원을 겨냥한 그의 ‘패스트트랙 공소취하 청탁’ 발언은 의원들의 반발 속에서 “폄훼할 의도는 없었다”는 전략적 사과로 이어졌다. 한 대표는 왜 그때 ‘공수처 도입은 절차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그러나 폭력은 안 되며, 폭력을 행사한 주동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이건 상식의 문제’는 식으로 본인의 ‘엄밀함’을 밀어붙이지 못했을까? 이미 몇 번이고 지적된 사안을 구태여 가져와 다시 비꼬려는 질문은 아니다. 한 대표의 사과를 받아낸 여당 국회의원들과, 그러지 못하는 동덕여대 학생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 말하고 싶을 뿐이다.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은 저서 「말을 부수는 말」에서 권력의 소유 여부와 그 정도에 따라 사용 가능한 언어 또한 기울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납작하게 비유하면 당정갈등 상황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와 장애인 이동권 요구를 위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분노가 가진 차이를 들 수 있겠다. 전자가 쉽고 빠르고 합법적으로 알려진다면, 후자는 어렵고 느리고 심지어 제도권 내에서는 불법적이다. 장애인들은 20년 넘게 대중교통을 멈추며, 대중의 경멸 속에서 본인들의 분노를 표현해왔다. 시위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서, 박경석 대표가 사무실 책상 앞에서 ‘격노’를 했다고 해서 그걸 기사로 써주는 언론은 드물 것이다.

기성 권력을 소유한 제도권의 시각에서 볼 때 비합리적이거나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언어와 행위와 감정들이 누군가에겐 ‘저항의 언어’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저항’들은 지역·성별·자본·지식 등 여러 계급요소와 맞물려 다중적으로 작용한다. 사측에 저항하던 남성 임금노동자도 집에 돌아오면 한 집에 사는 여성 가사노동자의 ‘독박육아’ 주장에 불쾌해할 수 있다. 여성의 권리를 외치던 비장애인이 열차를 늦추는 장애인 시위를 경멸할 수 있다. 모든 개인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되지 않고 여러 갈래로 교차해 존재한다. 약자 간의 연대가 쉽지 않은 이유고, 동시에 자멸을 피해 연대해내야만 하는 이유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난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여성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난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여성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대표가 본인의 정책적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는 ‘격차 해소’에도 이와 유사한 개념이 있다. 그는 “그냥 격차도 아닌 다중의 격차”를 강조하며 그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몇 번이고 공언해 왔다. 남성·여성이면서 임금·가사 혹은 무노동자일 수 있고 비장애인일 수도 장애인일 수도 있는 ‘다중의’ 정체성을 고려해 격차를 파악하고 해소하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격차 해소에 “진심”이라던 집권여당 당 대표가, 동덕여대 시위에 ‘절차’와 ‘폭력’이라는 기준만을 들이대는 것은 아이러니다. 애초 학교 측도 적절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전제는 제쳐두더라도, 격차를 고려하고 연대를 도모하는 정치적 행위로는 보이지 않는다.

본인이 누차 강조한 대로 정치는 “이견을 조율”한 끝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예술”일진대, 정치인이라면 ‘주동자의 법적 책임’을 강조하기 전에 스스로 조율해야 했던 ‘이견’에 집중해야 했다. 한 대표 말대로라면 ‘절차’가 평화롭게 해결해줬을 남녀공학 전환 이슈에 왜 이토록 강력한 이견이 표출됐는가. 공학 전환의 당위와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자 싫다고 시위하는 여대생들’에 대한 조리돌림이 들어찬 데에는 과연 문제가 없는가. 시위자들에 대한 사이버불링과 신상공개 위협, 혹은 모 공단 이사장의 채용차별 예고는 ‘패스트트랙 충돌’ 때와 같은 ‘착한’ 폭력인가. 그 폭력을 부추기거나 거기에 손을 얹는 정치는 또한 온당한가.

동덕여대 시위의 모든 과정이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전략적으로 적절했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 사회엔 여전히 여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하라는 말도 아니다. 여대의 탄생 배경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있었다. 여대 존속에 대한 논쟁의 핵심 또한 그 구조적 차별의 인지 여부일 것이다. 적어도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정치인이라면 이를 인지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구조적 차별은 없다”던 윤석열 대통령이었다면 일관성이라도 갖췄다고 할 것이다. 현안의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을 발췌한 채 필요한 논의를 간과하거나 방기한다면 한 대표의 ‘진심’은 최소가 무능이고 아마도 기만이다.

정치인들이 전략적인 ‘페미니즘 때리기’를 구가하는 것이 보기 어려운 풍경은 아니다. 국회 내 안티-페미니즘의 기수인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이대남 전략’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윤 대통령은 ‘외교참사’ 등 위기의 국면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전면에 앞세워 국면 전환을 꾀한 바 있다. 한 대표 또한 총선 당시 이종섭 주호주대사 사태 직후 수도권 위기론이 이는 가운데 ‘비동의간음죄’ 띄우기에 나서 비슷한 풍경을 연출했다.(☞ 관련기사 : “비동의간음죄 반대” 꺼낸 한동훈 , 또 ‘反여성주의’로?) 이번 동덕여대 주모자론도 당내 당원게시판 논란과 시기적으로 겹쳐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당 여성위 행사에서 한 대표는 “국민의힘이 그동안 여성들에 대해서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자인하기도 했다. 남성층 유권자들을 흡수하려 적극적 반(反)여성주의 기조를 채택한 윤 대통령의 대선 행보가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대표의 행보는 이 의원의 ‘이대남’ 결집 전략과도 또 다른 차이가 있다. 한 대표는 ‘약자를 보호’하고 ‘탈락자도 존중’한다는 등의 발언을 반복하며 중도보수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격차 해소와 리걸리즘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결국 폭력은 단죄하고 고분고분한 약자만 보호하겠다는 보수 엘리트주의로 귀결될 것이다. 그것이 한 대표가 최근 행보로 얻게 될 최종적인 이미지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열린 한국노총-국민의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열린 한국노총-국민의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대표는 지난 2월 총선 국면에서도 이번 ‘주모자론’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당시 그는 광진구 CCTV 관제센터에서 현장간담회를 열고 ‘시민이 안전한 대한민국’ 공약을 발표했다. 해당 공약은 당초 ‘여성이 안전한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공지됐으나 당일 오전 돌연 ‘여성’이 아닌 ‘시민’으로 단어가 바뀌어 재공지됐다. 그는 그 사유에 대해 “(공약 취지가) 여성을 더 배려하자는 건 맞다”면서도 “안전 문제는 성별로 나눌 문제는 아니”라는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여성의 범죄 취약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구조적 원인으로 꼽히는 젠더 문제에는 눈을 감는다. 이 역시 ‘약자의 연대’ 대신 ‘엘리트의 보호와 배려’를 강조한 것이다.

노동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19일 한국노총을 찾은 한 대표는 “우리 국민의힘이 상대적으로 ‘노동이슈를 좀 경시한다’, 이런 오해와 편견을 받아왔지 않나”라며 “진심으로 근로자의 힘이 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1주일 전, 국정성과보고회에서는 ‘화물연대 불법 파업 원칙 대응’을 정부의 대표 성과로 꼽는 등 야권과 노동계로부터 ‘반 노동’이라는 질책을 받아온 정부·여당 주도 ‘윤석열표 노동개혁’에 대해 상찬에 가까운 긍정 평가를 했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차별에는 눈을 감고, 그 구조에 대한 반발은 ‘리걸마인드’로 엄정 대응하면서도 ‘어떤’ 근로자에게만 대화의 손을 내민다. (☞ 관련기사 : ‘근로자의 힘’ 되겠다는 한동훈 “국민의힘이 노동 경시한다는 오해 있다”?)

격차를 해소하고 싶다는 그의 진심은 결국 그가 존중해주고 보호해줄 만한 ‘선별된’ 약자만을 향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고려해야 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에 반대하지만, 애초 중대재해법의 취지인 ‘기업과 노동자 간 격차’에는 침묵하는 것처럼 그의 ‘격차 해소’에는 끝없이 사각이 존재한다. 걸핏하면 “진심”을 강조하는 그의 정치적 퍼포먼스는 ‘격차’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보수 엘리트 한동훈’의 이미지만 남긴다. 약자를 향한 그의 ‘진심’이 최소 무능, 아마도 기만이라고 했는데, 그 ‘진심’은 최악의 경우 나르시시즘적 욕망일 것이라고 덧붙이겠다.

한 대표의 말대로 정치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예술”이 맞다. 그러나 리걸리즘과 격차 해소를 선택적으로 활용하며 사회적 논의를 본인 입맛에 맞게만 구성하는 그의 행보에서, 최우선 순위는 과연 어디 있는가. 앞서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자 당내 친윤계 의원들은 ‘본인 이미지만 구축하려 한다’는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을 가지고 있으니, 나르시시즘이 최고 권력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동력이 된다면 오히려 긍정적이겠다. 다만 국민을 기망해 그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이건 여야 문제도 계파 문제도 아닌 “상식의 문제”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월 서울 광진구 CCTV 관제센터에서 열린 '시민이 안전한 대한민국' 공약 발표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월 서울 광진구 CCTV 관제센터에서 열린 ‘시민이 안전한 대한민국’ 공약 발표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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