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김대우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영화 ‘히든페이스’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또 하나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빚어낸 배우 조여정은 “오로지 앞에 있는 배우들에게 의지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조여정은 지난 20일 개봉한 ‘히든페이스’로 영화 ‘기생충’(2019) 이후 오랜만에 관객 앞에 섰다. ‘히든페이스’는 실종된 약혼녀 수연(조여정 분)의 행방을 쫓던 성진(송승헌 분) 앞에 수연의 후배 미주(박지현 분)가 나타나고 사라진 줄 알았던 수연이 그들과 가장 가까운 비밀의 공간에 갇힌 채 벗겨진 민낯을 목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 ‘음란서생’(2006), ‘방자전’(2010) ‘인간중독’(2014) 등을 통해 파격적인 시도와 탄탄한 연출력을 보여준 김대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동명의 콜롬비아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방자전’ ‘인간중독’에 이어 또 한 번 김대우 감독의 선택을 받은 조여정은 ‘히든페이스’에서 벗겨진 진실을 목격하는 수연으로 분해 인물의 내적, 외적인 변화를 세밀하게 담아내며 전작과는 또 다른 얼굴로 감독의 믿음에 완벽 화답한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조여정은 작품을 택한 이유부터 캐릭터 구축 과정, 송승헌‧박지현과의 호흡 등 ‘히든페이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해당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원작은 봤나. 캐릭터 구축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
“원래 원작이 있어도 안 보는 편이다. 이 작품도 원작을 보지 못한 상태로 했다. 시나리오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싶더라. 수연이라는 역할이 너무 어려웠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과 무서움을 느꼈다. 원작은 촬영이 다 끝나고 봤는데 우리 작품이 관계가 훨씬 더 풍성하다고 생각했다. 관계가 얽히다 보니 층이 더 생겼더라.”
-어떤 지점이 어렵게 느껴졌나.
“특수한 상황이니까. 이 인물 자체가 나와 전혀 다른 성장 배경을 갖고 있잖나. 작품을 하다 보면 나와 비슷한 캐릭터를 만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인물을 만나기도 하는데 멀수록 어려운 건 당연하다. 이 인물의 성장 배경과 형성된 인격, 이런 지점들이 어렵게 다가왔다. 또 너무 특수한 상황이잖나. 사람이 살면서 겪어볼 수 있을까 싶은 상황에 놓인다는 것도 어려웠다.”
-어떻게 다가가고자 했나.
“상상하는 것밖에는 없다. 그냥 그 상황을 믿는 것밖에 없다. 시나리오에 많은 걸 느끼고 알게 쓰여 있어서 머리로는 이해를 했는데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하는 게 중요했다. 그건 온전히 나의 몫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자란 사람이라면 어떻게 말할까 계속해서 생각하고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접근했다. 송승헌, 박지현에게도 도움을 진짜 많이 받았다. 오로지 앞에 있는 배우들에게 의지했다. 내가 준비하는 건 의미가 없더라. 이들을 봐야 내가 마음이 일으켜졌다. 현장에서 원래도 집중을 하려고 하지만 이번 작품은 특히 더 집중을 많이 하려고 했다.”
-수연의 엄마 역을 맡은 박지영과 함께 나오는 신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모녀 같은 케미스트리가 느껴지더라.
“나도 첫 시사를 하고 너무 놀랐다. 진짜 엄마 같은 거다. 따로 조율하지도 않았는데 똑같이 하더라. 진짜 신기했다. 말투가 똑같잖나. 그래서 엄마 나오는 신에서 엄청 웃었다. 엄마(박지영)도 엄청 웃었다고 하더라. 시나리오에서 풍기는 뉘앙스, 리듬감을 나만 느낀 게 아니었나 보다. 서로 연기하는 걸 보지 못하고 찍었는데 똑같아서 정말 깜짝 놀랐다.(웃음)”
-수연에게 성진, 미주는 어떤 존재였을까.
“잘생기고 지휘를 잘하는 남자, 그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구색을 갖추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용보다 구색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인 거다. 끔찍하지. 미주는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거리에 둘 수 있는 사람. 내 입으로 이야기하면서도 진짜 (수연이) 너무 나쁘다.(웃음) 선생님 휠체어를 밀면서 ‘사람을 잃으면 안되는 거잖아요’라는 말을 하는데 진짜 너무 웃기더라. 그런 거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배우로서는 이런 캐릭터를 해볼 수 있었다는 게 소중한 경험이고 캐릭터로서 애정이 있지만 관객에게 이해해달라고 하기엔 쉽지 않다. 그냥 영화적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하하.”
-송승헌과 ‘인간중독’에 이어 다시 호흡을 맞췄다. 어떤 파트너인가.
“한결같이 편안한 사람이다. 같이 작업할 때 배려를 많이 해준다. ‘인간중독’ 때 어떤 남자길래 이렇게 자랑스러워하고 진급시키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될까 했는데 (송승헌이) 제복을 입고 있는데 말이 되더라.(웃음) 중요한 부분이잖나. 납득이 돼야 움직이니까. 이 여자의 동기가 확실히 이해되더라. 하하. 그런 파트너다. 이번에도 머리를 기르고 지휘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말이 된다 싶었다.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인물로서 믿어주게 하는 파트너다. 좋았다.”
-수연과 미주의 ‘케미스트리’도 중요했다. 박지현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이 캐릭터가 어렵다고 느낀 큰 이유 중 하나가 수연과 미주의 과거 장면들이었다.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지 어려웠다. 박지현만 바라보면서 했다. 이 친구가 교복을 입고 서 있는데 예쁘더라. 그 친구의 눈이 나를 보는데 정말 미주 같았다. ‘언니가 엄청 좋아’ 이런 눈으로 나를 보는데 ‘내가 그렇게 좋아?’하며 리액션이 그냥 나오더라. 정말 멋지고 대단하고 고마웠다. 박지현의 매력에 빠져서 할 수 있었다.”
-‘방자전’ ‘인간중독’ ‘히든페이스’까지 김대우 감독의 선택을 받았는데 세 작품 속 모두 다른 결의 캐릭터라는 점도 흥미롭다.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고 꺼내준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을 것 같은데.
“그냥 감사하기만 한 게 아니다. 연출은 무대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배우는 무대를 기다리는 사람이라서 무대를 만들고 그 무대에 나를 믿고 선택해 준다는 것 자체가 배우에겐 늘 감사한 일이다. 나도 믿지 못하고 확신이 없는데 감독이 나를 믿고 확신을 가져주는 거잖나. 또 나는 나를 아직 잘 모르는데 어떤 지점을 보고 선택을 해주고 매번 새로운 인물을 제안받는다는 게 큰 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만한 복은 없다. 그러니까 더 잘 해내고 싶은 거다. 감독이 믿어줬는데 잘 못해내거나 내게 그런 면이 없으면 정말 슬픈 결말이잖나.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다. ‘기생충’도 ‘나에게 이 역할을? 어떤 지점을 봤지?’ 싶었다. 그렇다면 해내야지. 너무 감사한 일이다.”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힘, 원동력은 무엇인가.
“연기가 좀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 그게 원동력인 거 같다. 나아지고 싶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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