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의 폭로와 정부의 강도 높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끝내 3선 도전을 강행했다. 이 회장은 26일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후보자 등록 서류를 제출하며 공식적으로 출마 의사를 밝혔다.
체육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날 대한체육회 회장선거준비TF팀에 후보자 등록 의사 표명서를 제출하며 사실상 3선 도전을 공식화했다. 대한체육회 선거관리규정에 따르면 후보자는 회장 임기 만료 90일 전까지 등록 의사 표명서를 제출하고, 같은 기한 내에 직을 사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은 29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마감 사흘 전인 이날 서류를 냈다.
2016년 통합 체육회 선거에서 당선돼 체육계 수장이 된 이 회장은 2021년 재선에 성공하며 7년 넘게 대한체육회를 이끌었다.
이기흥 회장의 3선 도전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와 체육계 내 비판 여론이 거세기 때문이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공직복무점검단은 이 회장을 업무 방해, 금품 수수, 횡령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회장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현재 대한체육회는 김오영 부회장이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회장은 출마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13일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뒤 “선거 출마 결정을 유보했다”고 말했지만 “시도체육회나 경기단체 회장들은 ‘반드시 한 번 더 해줘야 한다. 이 상황을 정리해 줄 사람이 없다’고 요청한다”며 출마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실제로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지난 12일 이 회장의 3선 도전 신청을 승인하며 출마 자격을 인정했다.
이 회장을 둘러싼 체육계의 시선은 냉담하다. 체육계 부조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히는 그는 안세영의 폭로와 맞물려 더욱 큰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안세영은 지난 8월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 대한배드민턴협회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체육단체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이후 논란은 배드민턴협회를 넘어 체육회 전체로 확산됐다. 안세영은 마음 고생이 심했던 까닭인지 지난달 9일 경남 밀양배드민턴경기장에서 열린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배드민턴 여자 일반부 단체전 예선에서 2경기 단식을 승리한 뒤 취재진과 만나 ‘배드민턴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졌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 바 있다.
안세영의 폭로가 체육계 내 부패와 불공정을 고발하는 상징이 된 만큼 이 회장의 3선 도전은 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이 회장의 출마 선언은 그동안 체육계 개혁을 요구해 온 여론과 정부의 압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보로 평가된다. 특히 이 회장이 체육회 수장으로 재임하며 불거진 각종 논란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체육계 관계자들은 “체육회 개혁의 시급성을 외면한 결정”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의 후보자 등록은 오는 12월 24~25일에 진행되며, 본격적인 선거 운동은 등록 마감 직후 시작된다. 선거는 내년 1월 14일 선거인단 투표로 치러지며, 최다 득표자가 당선된다. 동점자가 나올 경우 연장자가 당선인으로 결정된다.
이번 선거에는 이 회장을 포함해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 김용주 전 강원도체육회 사무처장, 박창범 전 대한우슈협회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 등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 회장이 논란 속에서도 3선 고지에 오를 수 있을지, 아니면 개혁 요구에 직면한 체육계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대한체육회 수장을 뽑는 것을 넘어 체육계의 개혁과 신뢰 회복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안세영의 용기 있는 폭로가 체육계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로 확산한 만큼, 이 회장의 출마는 기존 체제를 고수하려는 시도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체육계가 이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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