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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대신 국제 중재 택하는 기업 급증… “영업 비밀 지키면서 중립적 판단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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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상사 분쟁에서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이나 특정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지 않고 제3국 재판부에 판단을 맡기는 방식을 ‘국제 중재’라고 한다. 미국계 투자 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국가‐투자자 소송도 국제 중재의 일종이다. 이 사건에서 우리 정부는 론스타가 요구한 손해배상 금액의 4.6%만 지급하면 된다는 중재 판정을 받으면서 사실상 승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제 중재 전문 로펌 피터앤김의 김갑유 대표변호사가 국내 대리인단을 이끌었다.

국제 중재 로펌 피터앤김(Peter & Kim) 공동창업자인 (왼쪽부터) 볼프강 피터, 김갑유 대표변호사가 2024년 11월 1일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 본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전기병 기자
국제 중재 로펌 피터앤김(Peter & Kim) 공동창업자인 (왼쪽부터) 볼프강 피터, 김갑유 대표변호사가 2024년 11월 1일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 본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전기병 기자

◇ 국제 중재 1년 만에 30% 늘어… “정치적 영향 없는 중립적 결정 가능”

피터앤김은 김갑유 대표변호사와 볼프강 피터 대표변호사가 2019년 공동 창업했다. 김갑유 대표변호사는 지난 15일 “조용하고 프라이빗하게 문제 해결을 선호하는 기업들이 많은 만큼 국제 중재가 앞으로도 각광받을 것”이라고 했다. 분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는 기업들이 소송 대신 국제 중재 재판부를 찾는다는 것이다.

같은 날 볼프강 피터 대표변호사는 “기업 간 국제 중재는 기업이 정치적 압력을 받지 않는 중립적인 재판부의 판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계속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국제 중재는 최근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영국·프랑스·싱가포르·홍콩 등에 있는 세계 주요 국제 중재 전문 기구 15개에 지난해 접수된 사건 수는 5만8404건으로 전년 대비 30%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세계 최대 국제 중재 기구인 프랑스 파리 국제상업회의소(ICC)에는 작년 890건의 사건이 접수됐는데 이는 1923년 설립 이후 3번째로 많은 것이다.

◇ “영업기밀 중시하는 금융·IT·바이오 기업들, 국제 중재 선호”

김갑유 대표변호사는 “특히 영업 기밀 보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금융, IT, 바이오, 게임 회사들의 국제 중재 수요가 많다”고 했다. 볼프강 피터 대표는 국제 중재 사건이 증가하는 산업 분야로 게임과 스포츠를 꼽았다. 그는 “새롭게 성장하는 산업에선 국제 중재 사건도 많다”고 했다. 주로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업종에서 영업 기밀 보호를 위해 소송 대신 중재를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재판이 영업 기밀이 쉽게 공개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 법원은 공개 재판이 원칙이기 때문에, 기업이 소송을 하면 소 제기 사실부터 변론 내용까지 외부에 알려질 위험이 크다. 반면 국제 중재 재판부는 해외에서 당사자만 참석한 가운데 절차가 진행된다.

김갑유 대표변호사는 기업들이 소송보다 국제 중재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로 ‘절차 진행의 유연성’을 꼽았다. 특정 국가에서 이뤄지는 소송에서 자료 제출, 증인 신문 등 변론 절차와 관련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면 그 나라 법이나 법원 내규 개정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국제 중재 재판부는 중재인 재량으로 다양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국제 중재 과정에서 종종 활용되는 ‘증인 대질 신문(witness conferencing)’은 볼프강 피터 대표변호사가 과거 중재인 시절에 고안한 방식이다. 상반된 주장을 하는 증인 여러 명을 재판정에 불러 동시 신문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아직 국제 중재 분야에서 강자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국내 국제 중재 전문 기관인 ‘대한상사중재원(KCAB)’에 접수된 중재 사건은 368건으로 전년 대비 7.6% 증가했다. 분쟁 가액은 1조5715억 원으로 2019년 이후 4년 만에 1조 원을 넘었다. 이는 분쟁 가액이 수십조 원에 달하는 싱가포르와 홍콩 중재 기구에는 못 미친다.

피터 대표는 국제 중재 중심지로 부상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로 ▲중재 친화적인 입법적 토양 ▲유능한 중재 전문 변호사 집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한국은 우수한 중재 전문 변호사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지만 싱가포르, 홍콩과 달리 중재 전문 재판부가 따로 없다”며 “일반 소송 하듯 국제 중재를 하게 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므로 소송 진행을 빠르게 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 피터앤김, 출범 5년 만에 미래에셋·포스코 등 대형 승소 이끌어

피터앤김을 공동 창업한 김갑유 대표변호사와 볼프강 피터 대표변호사는 국제 중재 재판부에서 변호사와 중재인으로 처음 만났다. 피터 대표는 1980년대부터 M&A, 기업공개(IPO) 전문 변호사로 활약하다 스위스 대형 로펌을 설립한 뒤 국제 중재인으로도 활동했다. 변호사인 김 대표를 눈여겨봤던 피터 대표가 공동 창업 제안을 하면서 지금의 피터앤김이 만들어진 것이다. 피터앤김은 현재 서울과 취리히·제네바·싱가포르·시드니에 사무소 5개를 두고 있다. 김 대표는 서울사무소, 피터 대표는 제네바 사무소를 각각 근거로 삼아 세계 여러 국제 중재 법원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피터앤김은 이제 5년 된 신생 회사이지만 굵직한 사건에서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1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중국 안방보험을 상대로 제기한 계약금 5억8000만달러(약 7000억 원) 반환 소송을 승소로 이끌었다. 2022년에는 인천 송도 국제업무단지 개발을 두고 포스코건설이 미국 부동산개발 회사 게일인터내셔널과 벌인 23억 달러(약 3조3000억 원) 규모 분쟁에서 포스코건설의 승소를 받아냈다.

피터앤김은 올해 창립 5주년을 맞아 회사 로고를 바꿨다. 김 대표는 “세포도 5년이면 늙는다”며 “향후 5년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준비하기 위해 바꿨다”고 했다. 창립 10주년 목표로 김 대표는 “국제 중재 분야 세계 1위 로펌이 되는 것”을 꼽았다.

피터앤김 기존 로고(위)와 새 로고(아래). / 피터앤김 제공
피터앤김 기존 로고(위)와 새 로고(아래). / 피터앤김 제공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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