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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기자의 스포츠人] 한국인 첫 복싱 명예의 전당 헌액 된 ‘불멸의 아이콘’

아시아투데이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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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WBC 명예의 전당 헌액식. 장정구(왼쪽)과 마이크 타이슨/ 사진제공=장정구

한국인 최초로 복싱 WBC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전설’이 있다. 무려 15차례나 세계타이틀을 방어한 불멸의 아이콘, ‘한국의 매’ 장정구(61)다.

– 18연승(7KO)의 전적으로 도전했던 WBC 라이트 플라이급 타이틀매치 힐라리오 사파타 전은 당초 날짜보다 일주일 연기했다.

“맞다. 1982년 9월 11일에서 18일로 늦춰졌다. 당시 마무리 운동을 맨발로 잔디밭에서 했다. 어린이 대공원 후문 안쪽 잔디밭에서 스트레칭을 하는데 뭔가 쿡 찌르는 느낌이 왔다. 깨진 유리병을 밟은 거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난리가 났다. 경기 3일 전이었는데 피가 나고 상처도 깊고…일단 병원에 가서 몇 바늘 꿰맸는데, 의사 선생님은 최소 3주는 쉬어야 한다고 했다. 그건 불가능하니, 챔피언 측에 5000달러를 현금으로 주고 겨우 일주일 연기했다. 나중에 들으니 방송국하고 일정 다시 잡고, 포스터 다시 찍고, 입장권 미리 산 분들에게 일일이 안내하고,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 경기는 졌다. 장소는 전북묵 전주였다.

“142-144, 144-147, 148-145로 2:1 판정패였다.”

– 완치 전인데, 할만 했나?

“경기하다 보면, 무아지경으로 펀치를 날릴 때가 있다. 신체적으로는 무리를 하는 건데 몸이 그냥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느낌? 그날은 달랐다. 11라운드 사파타를 코너에 몰고 찬스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전기총 맞은 것처럼 갑자기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15라운드까지 여러 번 몸이 먼저 알아서 브레이크를 건다는 느낌을 받았다.”

– 사고가 없었다면 이겼을까?

“유명우 VS 장정구처럼 가정에 대답하기는 힘들지만, 아마 내가 졌을 거다. 사파타는 그 당시의 나보다 확실히 한 수 위의 복서였다. 사파타는 라이트 플라이급을 10차례나 방어하고 나중에 플라이급으로 올려 또 세계 챔피언을 지내며 5차 방어에 성공했다. 빈틈을 주지 않았다. 경기 중반까지 3점 정도 앞서 나가기도 했는데,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사파타의 작전이었다. 내 부상을 아니까, 후반에 승부를 걸고 판정으로 가자고 나온 거다. 확실한 것은, 그 경기 패배가 없었다면 15차 방어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 다시 맞붙은 2차전 대전 충무체육관 격전(1983년 3월)에선 3회 TKO로 이겼다.

“사파타가 1차 계체량에서 실패했다. 1라운드에 처음 펀치를 교환할 때 ‘오늘은 이겼다’라는 감이 왔다.”

– 1라운드 초반, 장정구의 앞손 펀치를 맞고 사파타가 살짝 흔들리며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장정구는 결정타를 날리는 대신 사파타의 품으로 뛰어들며 먼저 클린치했다.

“그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 어차피 이기는 경기라고 보고 살짝 늦춰준 건가.

“복싱에서 누굴 봐준다는 건 없다. 봐주면 내가 당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 그 상황은 예비타로 던진 잽이 너무 힘차게 잘 들어가서 얻어맞은 사파타가 움찔한 거다.”

– 느낌이 왔나.

“나도 그렇게 잘 들어갈 줄 몰랐다. 다른 펀치를 치려다가 목표물이 흔들리니까 내 중심도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사이에 혹시나 사파타의 역공에 걸릴까 봐 펀치 각도를 줄이며 클린치하듯 ‘적극 방어’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복싱에선 단 한 순간도 상대를 봐줄 수 없다. 몸도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경기 후 상대에게 최대한의 존중을 표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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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3월 사파타를 3회 KO로 누르고 세계 챔피언에 오른 장정구/ 사진제공=장정구

– 2차 방어까지는 쾌속진군이었다.

“1983년 6월 1차 방어는 이나미 마사하루에게 2회 KO승, 동년 9월 2차 방어는 극강의 도전자 헤르만 토레스에게 10라운드에 두 번 다운을 빼앗으며 판정승으로 이겼다.”

– 그후 6개월 간 경기를 못했다.

“슬럼프가 찾아 왔다. 2차 방어는 1983년 9월 10일, 3차 방어 날짜는 1984년 3월 31일이다. 6개월 동안 링에 오르지 못했다는 건 당시 관행으로는 사고에 가까운 일이었다.”

– 뭐가 문제였나.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고, 집중력이 떨어졌다. 아무리 훈련해도 기량이 느는 느낌이 아니라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훈련이 귀찮아진 것이 아니라, 무기력한 느낌이 들었다. 이때가 1차 고비였다.”

– 박찬희, 김철호 챔프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6차 방어 실패 후 김철호가 ‘무기력증’ 이야기를 꺼내자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박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꼭 같은 느낌이었다’는 선배의 말에 김철호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눈빛으로 박찬희를 바라보았다는 기사가 ‘주간 스포츠’에 실려 있다.

“그 상황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연습 스파링 때 국내 챔피언에게 정타를 맞고 연습을 중단한 적도 있을 정도다. 왜 그렇게 권투가 안 되는지 미칠 것 같았다.”

– 3차 방어는 어땠나.

“왼쪽 눈 위도 찢어지고 정말 힘들게 이겼다. 그래도 전원일치 판정승이었다. 상대가 4전 4승의 소트 치탈라타였다. 태국 킥복싱 전적이 많아서 정말 노련한 선수였다. 나중에 세계챔피언을 지냈다. 세계타이틀전 승전만 11승 1무다.”

– 1984년 8월 18일 포항에서 벌어진 4차 방어 도카시키 가츠오 전은 명승부였다.

“도카시키는 WBA 챔피언을 역임했던 선수다. 우리나라의 김환진 선수에게 타이틀을 뺏고 5차 방어까지 했다. 1983년 7월에 판정으로 타이틀을 잃었으니 실력은 현역 세계 챔프나 마찬가지였다.”

– 9회 KO로 이기고 가격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경기 후 거의 탈진하다시피 했다. 이기고 나서 링에 엎드려서 우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더라. 몸에 수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체중을 빼가며 링에 오른 거다.”

– 5차 방어 구라모치 다다시 전은 12~15점 차의 원사이드한 판정승이었지만 1985년 4월 6차 방어전부터 1986년 4월 9차 방어전까지가 2차 고비였다.

“헤르만 토레스와는 3차례 붙었다. 2차, 6차, 9차 방어전이다. 6차 방어전이 가장 힘들었다. 겨우 이겼다. 이 경기부터 9차 방어 때까지가 5연속(5~9차) 판정승이다.”

– 언론에서는 ‘장정구가 딱 판정으로 이길 만큼만 훈련한다’라며 비판적인 기사를 냈다

“사실이 아니다. 죽어라 훈련해도 상대를 2~3점차 판정으로 밖에는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장기 슬럼프였다. 사파타와의 1차전이 없었다면 이 무렵에 타이틀을 잃었을 것이다.”

– 왜 그런가?

“사파타에게 지고 나서 상대의 경기 테이프를 정밀하게 보는 습관을 들였다. 사파타에게 재도전할 때 하루에 그의 경기를 네 번씩 봤다. 머릿속에서 사파타의 동작이 그려질 정도였다. 분석을 열심히 하면 자연스럽게 대응 전략이 떠오른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할 때까지 훈련했다. 매 경기를 이렇게 준비했다. 철저한 사전 분석이 없었다면 롱런 못 했을 것이다.”

– 10차 방어 ‘천재 복서’ 오하시 히데유키를 KO로 물리치며 긴 터널을 벗어났다.

“1986년 12월이다. 지금은 없어진 인천 선인체육관에서 5회 KO로 이겼다. 일본에서 150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고 했다. 1988년 6월 도쿄에서 벌어진 2차전, 15차 방어전에서도 8회 KO로 이겼다.”

– 3회에는 3차례나 다운시키고 카운터를 맞았다. 장정구 챔프가 휘청했다.

“제대로 맞았다. 얼른 붙들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연습량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쓰러졌을 것이다. 오하시 히데유키도 나중에 2차례나 세계 챔피언에 오른다. 지금은 세계적인 복서 이노우에 나오야의 프로모터다.”

– 훈련 이외의 일상생활은 어떻게 했나.

“24시간 복싱에만 전념했다. 방 안에도 딱 필요한 물건만 놓고, 잠을 푹 자려고 커튼도 두꺼운 검정 천으로 꾹꾹 막았다. 아예 빛이 안 들어오게. 이렇게 살았어도 쉽게 이긴 경기는 없다. 도전자도 다 세계 랭커 아닌가. 평생의 꿈이던 세계 도전이니 얼마나 준비를 열심히 하고 왔겠나.”

– 한국 복싱은 지금 침체기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제게 보내주신 사랑과 응원 잊지 않고 있다. 감사하다. 한국 복싱 아직 죽지 않았다. 꼭 다시 일어설 것이다. 기다려 달라. 그리고 예전과 같은 사랑을 다시 보내 달라.”

▲ 장정구는 1963년 부산 생으로 1980년 프로 데뷔, 통산 전적 38승(17KO) 4패를 기록했다. 1983년 3월 힐라리오 사파타를 누르고 WBC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이 되었고 1988년 6월까지 15차 방어에 성공했다. 2000년 WBC 선정 ’20세기 위대한 복서 25인’에 선정되었고 2009년 프로복싱기자협회선정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 최초로 헌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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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구 챔프(왼쪽)와 장원재 전문기자/ 사진제공=전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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