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최주원 기자】 도널트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반도체 업계에서도 관세 정책 변화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반도체 보조금을 폐지하는 한편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회의 빠른 반도체 특별법 제정과 HBM(고대역폭 메모리) 경쟁력 강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는 상황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대선 승리와 함께 글로벌 산업계는 변화하는 환경에 각각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의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보조금 축소 및 높은 관세 부과 가능성은 반도체 업계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022년 ‘반도체·과학법(CHIPS Act)’을 제정하며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527억달러(한화 약 73조원)에 이르는 생산 보조금 및 연구개발 지원금을 약속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은 이를 ‘나쁜 거래’라고 비판했으며 보조금을 폐지하고 해외 생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는 높은 관세를 통해 지원금 없이도 해외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생산 거점을 만들게 하려는 취지로 읽힌다.
국내 기업 중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미국 내 대규모 공장 건설 대가로 보조금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트럼프 당선 이후 이 계획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보조금 64억달러(한화 약 8조8505억원), SK하이닉스는 보조금 4억5000만달러(한화 약 6200억원), 대출 5억달러(한화 약 7000억), 최대 25% 세제 혜택 등을 지원받는 것이 예비 협상을 통해 결정됐지만 아직 최종 계약에 이르지 못했다.
다만 조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당선인 취임 전, 보조금 지급을 마무리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바이든 임기까지 최대한 많은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 대만 TSMC가 지난 15일 애리조나 법인에 대한 보조금 66억달러를 지급받기로 결정되면서 국내 기업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대부분 기업이 바이든 행정부 임기 종료 전에 협상을 마무리하려 한다”며 “대외 상황을 면밀하게 주시하며 현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조금 지급이 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칩스법 철회와 함께 세제 혜택이 취소된다면 현지에서 사업을 이어가야 하는 국내 기업들에게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반도체 특별법’의 빠른 추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국민의힘은 보조금 재정 지원 조항 등을 포함한 특별법을 당론으로 채택·발의하며 업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도 “반도체 특별법 제정으로 현금화 가능한 재정 지원이 가능해진다면 숨통이 트일 수 있다”라며 “미국 내 정책 변화에 따라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보이는 만큼 국내 생산 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선택 가능한 옵션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가 칩스법을 쉽게 폐지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에서 HBM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만큼, 생산 시설 유치 및 투자를 적극 권장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산업연구원 역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칩스법 입법을 추진했다는 점을 들어 완전한 폐기까지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와 관련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이종환 교수는 “대만 TSMC가 보조금 삭감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상황은 다소 다르다”며 “삼성과 SK는 HBM 메모리와 같은 핵심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어 이들의 투자가 미국 경제에 기여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보조금 삭감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교수는 “삼성전자가 현재 반도체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파운드리 역량을 갖춘 유일한 한국 기업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라며 “AI 반도체 시장에서 TSMC의 주도권을 탈환하기 위해 메모리와 비메모리의 융합 기술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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