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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 죽으며 100명 처형하라”…1800만 독일군 모두가 자발적 처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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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글에서 친위대(SS)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와 그의 핵심 측근인 국가보안본부(RSHA) 본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지휘 감독하는 아인자츠그루펜이 유대인 130만을 포함한 200만 명의 희생자를 냈음을 살펴봤다. 나치 독일의 군인들은 유대인을 죽이지 못해 안달을 했던 전쟁광들일까.

이런 질문 자체가 어리석고 잘못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에서 총을 든 독일 젊은이는 모두 합쳐 1,800만에 이른다. 이 가운데 직업군인이 아닌 징집병이 90%를 넘는다. 그 많은 군인이 모두 골수 나치들처럼 “유대인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며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군사작전을 펴온 이스라엘 병사들이 모두 아랍인을 극도로 증오하는 광신적 유대인들이라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군대에 가야 하는 징병제 국가다. 엷은 올리브 색깔의 군복을 입고 가자 지구에 파견된 이스라엘 병사들 가운데는 탈영을 꿈꾸는 젊은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어제 뉴스를 보니,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를 겨냥해 체포영장이 내놨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다. 4만 3,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희생자들을 떠올리면, 늦어도 한참 늦은 조치다. 이미 피가 묻을 대로 묻은 네타냐후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울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매우 희박하다. 다른 무엇보다 초강대국 미국이 그의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는 지구촌 평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 독일군 병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유대인 자본이 지배하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만들어낸 대부분의 영화들은 유대인 학살을 고발하면서 독일군을 피에 굶주린 살인마로 그려낸다. 그런 영화들을 자꾸 보다보면, 이즈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유대인 병사들이 마구잡이 학살을 벌이는 상황을 너그럽게 바라보기 십상이다. “지난날 유대인들이 나치 독일에게 그토록 엄청난 고난을 겪었으니, 안보를 지키려면 저럴 만도 하겠네”라며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눈감아주게 된다. 역사적 사실의 작은 틈새를 파고들어,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무서운 힘이다.

영화 얘기가 나온 김에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 한 편을 짚어보려 한다. 미 영화감독 더글러스 서크의 1958년도 작품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는 유럽 동부전선을 무대로 한 영화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전쟁 로망스 가운데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우수작이다. 아마도 독자분들 가운데 이 영화를 ‘추억의 명화’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널리 알려졌듯이,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독일의 반전(反戰)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1898-1970)의 동명 원작소설(Zeit zu Leben und Zeit zu Sterben, 1954)을 스크린에 옮긴 것이다. 전쟁의 허망함을 문학적으로 잘 드러낸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개선문」 등을 써낸 레마르크는 유대인은 아니다. 일찍이 나치즘을 비판했던 그는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나치정권의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레마르크의 책들은 분서(焚書) 목록에 올려 불태웠다(연재 85 참조).

1800만 독일군, 모두가 살인 기계였나

영화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독일군 병장 에른스트 그래버(존 게빈 분)은 징집병 출신이다. 병역 의무에 따라 총을 든 많은 청년들 가운데 하나일 뿐, 나치 당원은 아니다.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이 후퇴를 거듭할 무렵, 붙잡힌 유격대원 용의자들을 총살하려는 골수 나치 병장과 주먹다짐을 하다가 그를 죽이고 만다. 그래버는 나치의 침략전쟁과 무분별한 살육과 파괴에 반감을 지녔고, 타자에 대한 증오심만을 불러일으키는 전쟁 자체에 대한 환멸을 느꼈던 젊은이였다. 적국인 러시아인들의 눈으로 보자면, ‘착한 나치’였다.

유격대원들을 풀어주며 도망치라고 한 뒤 그래버 병장은 물가에서 아내 엘리자베트 크루제(릴로 퍼버 분)가 보내온 편지를 읽는다(크루제는 그래버가 휴가 중 귀대 직전에 서둘러 결혼해 아내로 맞이했던 신혼주부였다). 안타깝게도 그래버는 그가 풀어줬던 유격대원이 되돌아와 쏜 총에 맞아 쓰러지고 만다. 물 위로 떨어뜨린 아내의 편지를 잡으려 손을 뻗던 그래버는 끝내 쓰러져 숨을 거두고, 영화는 애달픈 배경음악과 함께 막을 내린다. 많은 영화팬들의 가슴을 울린 마지막 장면이다.

영화 속 그래버 병장처럼, 독일군으로 참전해 총을 든 1800만 젊은이 모두가 살인 기계는 결코 아니었다.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국가의 부름에 따라 군복을 입었을 뿐이었다. 아인자츠그루펜이 독일군 점령지역에서 마구잡이 학살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버 병장과 같은 독일의 젊은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전쟁범죄를 저질러선 안 된다”며 군대의 전통적 가치와 명예를 존중하는 일부 독일군 장병들 사이에선 “아인자츠그루펜의 전쟁범죄를 조사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오갔다고 알려진다.

동부와 서부, 2개의 전선에서 전쟁을 이끌었던 독일 지도자((Führer) 히틀러는 특히 동부전선에서 악명 높은 인종 절멸정책을 폈다. 그는 걸핏하면 “필요한 경우 즉결처형과 같은 가장 가혹한 방법을 써서라도 점령지의 치안을 안정시키라”는 ‘특별 명령’을 내렸다. 그런 명령은 문서가 아닌 입으로 한 것으로, 빼도 박도 못할 전쟁범죄의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그만큼 히틀러가 교활했다는 얘기가 된다.

‘유대인 절멸’을 외치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들어 독일의 적을 무자비하게 없애라는 문서들을 잇달아 만든 곳이 독일국방군(Wehrmacht) 최고사령부다. 지난 글에서 살펴봤듯이, 최고사령부는 1941년 5월13일에 내린 ‘전시 군사법권에 관한 명령’에서 독일 장병들이 ‘적대적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가혹행위를 군사법원에서 다루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독일군은 ‘적국 민간인’ 살해 면죄부를 갖게 됐다(연재 93 참조).

▲ 에리히 레마르크의 반전 소설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54)와 이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1958) 포스터. ⓒ위키미디어
▲ 에리히 레마르크의 반전 소설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54)와 이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1958) 포스터. ⓒ위키미디어

카이텔, “독일병사 1명 죽으면 인질 100명 처형”

1941년 6월22일 소련을 침공하기 바로 직전에 국방군 최고사령부의 빌헬름 카이텔 장군(1882-1946, 육군 원수,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교수형)은 동부전선의 300만 육군 장병들에게 ‘곧 벌어질 전쟁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관한 문서를 내려 보냈다. 제목은 ‘러시아 지역에서의 부대 행동 지침’이었다. 독일 역사가 볼프람 베테(프라이부르크대, 전쟁사)의 글을 보자.

[이 지침에서 볼셰비즘은 민족사회주의(나치) 독일민족의 치명적인 적으로 묘사됐다. 그러므로 이에 맞선 전쟁에서 독일군은 ‘적을 가차 없이 쳐부수고’ ‘적극적․소극적 저항 모두를 완전히 분쇄’해야 할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국방군 명령에서 유대인이 적 집단에 명확히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즉 볼셰비키 선동분자, 파르티잔, 파괴분자, 유대인을 적으로 설정하였다](볼프람 베테, 「독일국방군」, 미지북스, 2011, 128쪽).

독일국방군 최고사령부가 ‘유대인을 포함한 적대세력을 잔인하게 없애라’는 지침을 내려 보낸 것은 위 문서뿐 아니다. 소련 침공 1개월 뒤인 1941년 7월23일 ‘독일군 장병들은 한층 더 잔인하게 행동하라’는 또 다른 지침을 내려 보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독일의 범죄사 연구로 이름이 알려진 영국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엑스터대 명예교수, 유럽현대사)의 글을 보자.

[(최고사령부의 지침에 따라) 독일군은 소련 인민이 ‘불복종에 대한 모든 관심을 잃어버리도록’ 만들 ‘테러를 확산’시킬 수 있게 됐다. 9월16일 히틀러의 최고사령부 수장인 카이텔 장군은 독일군 한 명이 (파르티잔에게) 살해될 때마다 소련 시민 50명에서 100명을 처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인질 명령을 내보냈다. 카이텔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목숨은 소련에서는 하잘 것 없었다](리처드 오버리, 「독재자들」, 교양인, 2008, 726쪽).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아 처형하라”는 카이텔의 명령은 실제로 그대로 실행됐다. 베르너 베르그홀츠란 이름을 지닌 한 독일군 상병은 동부전선으로 온 지 2주가 지났을 때 무자비한 보복 살인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보초 2명이 유격대원의 습격으로 죽자, 곧바로 100명의 인질이 사살됐다. 그날 베르그홀츠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이었다”(리처드 오버리, 726쪽).

위의 두 개 인용문에 나오는 ‘파르티잔'(partisan)은 곧 반독 게릴라 투쟁을 펴는 유격대원을 가리킨다. 한국에는 ‘빨치산’으로 널리 알려진 단어다. 아인자츠그루펜(이동학살부대)을 지휘․감독했던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는 ‘파르티잔’이라는 중립적인 용어를 쓰지 말고 ‘산적'(bandit)이나 ‘갱'(gangster)으로 낮춰 부르라는 지침을 내려 보냈다. 일본 관동군이 만주의 항일 독립투사들을 가리켜 ‘산적’ 또는 비적(匪賊)이라 낮춰 불렀던 것과 같다. 2001년 9.11테러 뒤 미 부시 행정부가 ‘테러 용의자’들을 쿠바 관타나모수용소에 가두면서 이들을 (포로 대우와 관련된 제네바협약을 비껴가려는 꼼수로) ‘적성 전투원'(enemy combatant)이라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골드하겐, “독일인들은 모두 자발적 처형자였다”

1990년 중반 “독일인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유대인을 죽이려 했기에 홀로코스트가 가능했다”는 주장을 펴 화제를 모은 연구자가 있다. 유대인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부모로 둔 작가 다니엘 골드하겐(전 하버드대 교수)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어 낸 책 「히틀러의 자발적 처형자들」(Hitler’s Willing Executioners, 1996)에서 골드하겐은 “홀로코스트는 소수의 ‘광신적인’ 나치 추종자들이 저지른 전쟁범죄가 아니라, ‘평범한’ 독일인들의 열성적인 참여로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학살을 거부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데도 골드하겐은 독일인 전체에 책임을 물으며 유대인 대량학살의 공범자라는 아픈 구석을 찔렀다. 그로 말미암아 연구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골드하겐 논쟁’이다. 골드하겐은 101예비경찰대대의 유대인 강제이송과 학살을 들여다보면서, 이미 앞서 같은 주제를 다루었던 크리스토퍼 브라우닝(노스캐롤라니아대, 독일현대사)을 공격했다.

지난 글에서 살폈듯이, 홀로코스트 연구자 브라우닝은 1960년대에 101예비경찰대대의 전쟁범죄를 조사했던 함부르크 검찰의 문서보관실 자료와 관련자 증언을 바탕으로 「아주 평범한 사람들」(Ordinary Men, 1992)이란 역작을 써냈다. 이 책에서 브라우닝은 △대대원들이 모두 광신적인 반유대주의자는 아니었으며, △대대원 다수는 ‘내키지 않아도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학살자로 바뀌어 갔지만, △학살 임무를 거부하고 총기를 반납한 뒤 전출을 요청한 대원들도 있었다는 점을 밝혀냈다(연재 92, 93 참조).

학살 임무를 거부한 대원들은 나치 군 형법에 따른 명령 불복종 등의 처벌을 받지 않았다. 골드하겐은 바로 이를 근거로 삼아 “독일인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유대인들을 죽이려 했기에 홀로코스트가 가능했다”는 주장을 폈다. 브라우닝과 마찬가지로 101예비경찰대의 행태를 조사했던 골드하겐의 주장을 들어보자.

[경찰대대에 대한 연구는 두 가지 근본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첫째, 평범한 독일인은 쉽게 대량학살의 살인자가 됐다. 둘째, 그들은 반드시 사살조로 나서지 않아도 됐는데도 학살을 저질렀다](Daniel Goldhagen, , Vintage Books, 1996, 277쪽).

[경찰대대 대원들에게는 각자 학살임무를 완전히 피하거나 적어도 대량학살의 처형자(genocidal executioners)로 계속 복무하지 않을 기회가 있었다. 많은 경찰대원들에게 그런 기회가 있었다는 것은 입증 가능한 사실이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대다수 대원들이 그런 기회를 이용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8개의 다른 경찰대대와 9번째 유사 부대인 기동헌병대대에서는 대원들이 (유대인을 겨냥한) 사살을 거부해도 처벌당하지 않을 것이란 통보를 받았다는 증거가 있다. 101경찰대대의 경우도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다] (Daniel Goldhagen, 278쪽)

▲ 1943년 동부전선의 독일군 저격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싸운 1,800만 독일군이 모두 유대인을 죽이지 못해 안달했던 골수 나치라 말할 수는 없다. ⓒEbert, 위키미디어
▲ 1943년 동부전선의 독일군 저격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싸운 1,800만 독일군이 모두 유대인을 죽이지 못해 안달했던 골수 나치라 말할 수는 없다. ⓒEbert, 위키미디어

“학살 거부해도 처벌 받지 않았다”

이와 관련, 골드하겐은 101경찰예비대대의 상급부대인 25경찰연대 작전 부서를 맡았던 한 소령의 증언을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의 렘베르크(르비우)에 주둔하던 한 부대의 대령이 ‘양심에 따라 살인을 계속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직위 해제를 요청했고, 그 대령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베를린으로 전출돼 또 다른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소령은 “대량학살(genocide)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이 처벌을 받은 사건은 단 한건도 없었다”고 전했다. 소령 자신이 그런 문제를 처리하는 자리에 있었기에, 25경찰연대에서 처벌이 있었다면 분명히 알 수 있었다는 얘기다.

나아가 골드하겐은 “증언에 비춰볼 때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는 치안경찰과 보안대원들에게 학살을 거부할 수 있는 일반 명령(general order)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경찰대대의 대원들은 학살에 나서길 거부할 경우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럼에도 학살에 나선 것은 “그들이 기꺼이 유대인을 살해하도록 이끌 만큼의 강력한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고, 학살에 나선 대원들이 모두 ‘광신적인’ 열렬한 히틀러 추종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101예비경찰대가 첫학살 임무에 나설 때 함께 했던 대원의 증언을 옮겼다.

“대원들이 (내키지 않으면) 유대인 사살 작전에 빠져도 된다는 (대대장 트라프 소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학살에 나선 것은 그것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동료들 가운데 단 한 명도 (학살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Daniel Goldhagen, 279-280쪽).

‘의도주의’와 ‘구성주의'(기능주의)

독일의 보통 사람들이 모두 ‘광신적인’ 열렬한 히틀러 추종자였기에 홀로코스트가 일어났다는 골드하겐의 주장은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 언론과 「디 차이트」를 비롯한 독일 언론도 잇달아 크게 보도했다. 하지만 골드하겐은 세찬 비판에 부딪쳤다. 크리스토퍼 브라우닝을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이 골드하겐의 주장에 반박하고 나서면서 1990년대 후반기에 논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골드하겐 논쟁’이다.

참고로, 이 논쟁이 벌어지기 전 홀로코스트 연구자들 사이엔 두 가지 다른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의도주의, 다른 하나는 구성주의(또는 기능주의)다. 의도주의(intentionalism)란 글자 그대로 유럽 백인 기독교사회의 해묵은 반유대 정서를 바탕으로 히틀러를 정점으로 한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절멸시킬 ‘의도’를 지녔고, 그를 지지하는 독일인들이 기꺼이 유대인 집단 살해에 함께 나섰다는 해석이다.

이와는 달리 구성주의(또는 기능주의, functionalism)는 히틀러를 정점으로 한 나치 정권이 (입으론 유대인 절멸을 외치면서도) 처음부터 유대인을 대량학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바뀌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유대인을 처음엔 게토에 가두어 두었다가, 독일 바깥이나 유럽 바깥으로 내쫓으려 했다가, 점령지가 더 늘어나지 않고 전쟁의 국면이 기울면서 대량 학살에 나섰던 사실에서 보듯이) 유대인 억압 정책들이 점점 더 과격한 쪽으로 ‘구성'(‘기능’하게) 됐고, 마침내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고 본다. 아우슈비츠 같은 죽음의 수용소들은 나치 유대인 박해의 최종 ‘구성품’인 셈이다.

1990년대 ‘골드하겐 논쟁’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다수의 홀로코스트 연구자들은 나치 지도부에게 처음부터 유대인을 학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나치 권력기관들이 히틀러의 눈길을 끌기 위해 경쟁을 벌이면서 여러 유대인 억압 정책들이 점점 더 과격한 쪽으로 ‘구성’되면서 끝내 대량학살에 이르게 됐다고 봤다.

“모든 독일인이 학살 의도 지닌 것은 아니다”

골드하겐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나치가 유대인을 죽일 ‘의도’를 처음부터 가졌을 뿐 아니라 독일의 보통사람들도 그런 ‘의도’에 따라 적극적으로 학살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의도주의자’인 골드하겐이 보기엔, 독일 함부르크 출신 보통사람들이 대부분인 101예비경찰대원들도 유대인 학살 ‘의도’를 지닌 ‘적극적인 반유대주의자’들이다. 그들처럼 독일의 많은 보통 사람들이 유대인에 증오심을 지닌 상태에서 학살에 적극 가담했기에 홀로코스트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한국의 홀로코스트 연구자인 이진모(한남대, 서양사)는 골드하겐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했다.

[의도주의자들이 유대인 학살의 주원인이라 파악하는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적 이상은 히틀러 주변의 소수 광신적 추종자들뿐 아니라 상류계층 및 중산층의 대부분, 심지어 노동자계층에서도 광범위하게 발견된다고 골드하겐은 주장했다. 따라서 홀로코스트는 지금까지 주장되어온 것처럼 히틀러 개인이나 SS(나치 친위대) 같은 과격한 나치 핵심단체의 소행이 아니라 다수의 독일인이 가담한 ‘전독일적인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 (이진모,「나치의 인종말살 전쟁과 ‘평범한’ 독일군인의 역할」,『역사비평』2001년 가을호, 통권 56호).

이진모 교수는 골드하겐의 주장에 비판적이다. 학문적 엄밀성이란 잣대로 보면, ‘골드하겐은 기존의 의도주의자들의 해석을 과도하게 확대시켰고’ 독일인의 반유대 논리를 너무 일원론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지적한다. 골드하겐이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는 과정에서 모든 독일 군인들을 싸잡아 자발적인 학살범으로 모는 무리한 일반화를 고집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나치의 전쟁범죄에 함께 하지 않았던 군인들에 대한 설명이 어려워진다. 유대인이 아닌 장애자(정신, 신체), 집시(로마, 신티),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나치의 또 다른 희생집단에 대한 설명도 궁색해진다.

크리스토퍼 브라우닝을 비롯한 다른 많은 연구자들도 골드하겐에 비판적이다. 브라우닝은 골드하겐이 학살에 참여한 대원들의 증언을 신중하게 살펴보지 않았고, 자료를 선택적으로 추려 자신의 논리를 세웠다는 점을 지적한다. 골드하겐이 이미 정해진 결론을 갖고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는 ‘결정론적 방법론의 오류’에 빠졌다는 것이다.

나치의 대량학살에 책임이 있는 소수의 집단들(히틀러를 비롯한 전시지도자, 힘러의 친위대와 아인자츠그루펜 등 학살부대)과는 달리,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나치의 반유대 선전에 세뇌 당한 것은 아니며, 다들 적극적으로 학살에 나선 것도 아니라는 것이 브라우닝의 요점이다. 필자도 이런 해석이 옳다고 본다.

한편으로 보면, 골드하겐은 긍정적인 역할을 하긴 했다. 많은 독일인들이 쉬쉬 하며 애써 잊고자 하는 아픈 구석(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나치 히틀러 정권을 지지했고, 전쟁 중에 독일이 저질렀던 전쟁범죄의 공범자 또는 방관자라는 집단적 죄의식)을 들춰냈다는 점에서다. 그렇기에 한때나마 골드하겐은 언론과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대로, 무리한 일반화 주장으로 홀로코스트 연구자들로부터 따끔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면서 한때 관심을 모았던 ‘골드하겐 논쟁’은 짧게 끝났다.

▲ 1940년 6월23일 파리 에펠탑 앞에 선 히틀러와 그의 측근 막료들. 독일 장군들은 홀로코스트 전쟁범죄를 저지른 히틀러의 공범자들이란 비판을 받는다. ⓒ위키미디어
▲ 1940년 6월23일 파리 에펠탑 앞에 선 히틀러와 그의 측근 막료들. 독일 장군들은 홀로코스트 전쟁범죄를 저지른 히틀러의 공범자들이란 비판을 받는다. ⓒ위키미디어

“총통의 말살전쟁은 군인정신에 어긋나”

여기서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골드하겐 테제처럼 ‘독일군=광신적 학살자’라는 논리는 틀렸다 해도, 독일군이 ‘정말로 깨끗하고 기사도적으로’ 전쟁을 치렀다고 말할 수 없다. 독일 역사가 볼프람 베테(프라이부르크대, 전쟁사)는 독일국방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른바 ‘독일군 무오류 신화’를 비판적으로 살펴본 연구자다. 베테에 따르면, 소련 침공 80일 전인 1941년 3월30일, 히틀러는 자신의 집무실인 베를린 제국수상청에서 250명쯤의 장군들을 불러들여 비밀모임을 가졌다.

히틀러가 불러모은 장군들은 ‘바르바로사 작전’이란 이름 아래 동부전선에서 싸우게 될 300만 독일국방군의 지휘관들이었다. 그 모임에서 히틀러는 ‘왜 전쟁을 해야 하는가’를 놓고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히틀러식의 동어반복으로) 혼자서 길게 말을 이어갔다. 베테의 글을 보자.

[약 2시간 30분간 이어진 담화에서 히틀러는 자신의 (극단적인) 신념을 밝히면서 인종말살 전쟁계획을 공표했다. 그는 볼셰비키를 ‘반사회적 범죄 집단’으로 규정하고, 앞으로 치르게 될 전쟁은 ‘볼셰비키 정치 지도원들과 공산주의 지식인들을 절멸하기 위한 인종 말살전쟁(Vernichtungskampf)이 될 것이라 말했다. 육군 참모장 프란츠 할더 원수가 채록한 문서만으로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언급했는지가 불분명하다. 그렇지만 히틀러가 유대인을 확실히 언급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치 정권이 1941년 6월22일 이후 만든 문서들에는 ‘유대 볼셰비즘’이란 문구가 늘 들어있었기 때문이다](볼프람 베테, 128쪽).

히틀러가 ‘인종 말살전쟁’을 주제로 장광설을 늘어놓은 뒤 자신의 안가로 떠나자, 그 자리에 있던 장군들 사이에서 항의와 불만이 담긴 볼멘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고 한다. 몇몇 장군들은 육군 총사령관 발터 폰 브라우히취에게 “총통이 계획하는 인종 말살전쟁은 군인정신에 어긋나고 나아가 군 규율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 지적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훗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나왔다.

“장군들은 히틀러와 한통속이었다”

하지만 비판적 연구자들은 ‘그런 발언은 장군들이 자신들의 죄를 덜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베테에 따르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프라이부르크 군사사(軍事史)연구소가 이 문제를 연구해보니 (일부 장군들 사이에서 ‘개별적인 불만과 염려’가 나오긴 했지만) ‘결연한 단합된 항의 의사’는 없었다고 한다. 아래는 베테가 내린 비판적인 결론이다.

“그러므로 1941년 봄의 국방군 장군들은 히틀러와 한통속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들 사이에서 이데올로기 문제(반유대-반볼셰비즘)에 대한 충분한 정도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볼프람 베테, 131쪽).

독일국방군의 범죄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포로 학대와 죽음이다. 독일군에 포로가 된 소련군 장병은 570만을 넘었다. 이 가운데 40% 가량이 포로로 붙잡혀 있는 동안 총살 또는 굶어 죽었다(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유대인의 파괴 1」, 개마고원, 2008, 467쪽). 또 다른 범죄는 약탈이다. 독일군 사령부는 점령지에서 식량 등 기본 물자들을 되도록이면 자급하도록 했다. 독일군 병사들은 집집마다 뒤져 쓸 만한 것들을 탈탈 털어갔다. 오죽하면 피점령지 주민들로부터 “독일군은 마치 메뚜기처럼 덮쳤다”는 비난을 들었을까.

글이 길어져 다음으로 미루고 이만 마쳐야겠다. 독일국방군은 실제로 어떤 전쟁범죄와 관련됐고, 누가 그런 범죄를 부추겼을까. “독일국방군은 손을 더럽히지 않았고 큰 잘못이 없다”는 이른바 ‘흠 없는 방패로서의 독일국방군 신화’의 문제점을 다음 글에서 좀 더 살펴보려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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