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귀화자, 이민자 2세, 외국인 등 이주 배경을 가진 인구가 총인구의 5%를 넘으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도 다문화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은 전체 인구의 4.89%인 250만7584명을 기록했다. 역대 최다(2019년 252만4656명)보다는 적지만, 비율로는 2019년(4.87%)보다 많다. 조선비즈는 ‘코리안 드림’ 품고 한국에 온 외국인 중 자영업을 하는 이들을 만나 그들이 한국에 터를 잡은 이유,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에 대해 물었다. [편집자 주]
서울역에서 강릉행 KTX를 타고 약 1시간 30분을 달리면 나오는 둔내역. 여기서 택시로 갈아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15분을 가면 해발 고도 750미터(m),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에 위치한 수제 맥주 양조장 겸 펍인 ‘화이트크로우 브루잉 컴퍼니(이하 화이트크로우)’가 나온다. 화이트크로우(White Crow)는 평창의 옛 이름인 백오현(白烏縣·하얀 까마귀)에서 비롯됐다. 하얀 까마귀처럼 진귀한 맥주를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지난달 23일 찾은 화이트크로우는 주변은 고요했다. 차갑지만 상쾌한 바람, 구름 사이사이로 간혹 비추는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빛, 붉고 노랗게 변하고 있는 숲만이 화이트크로우를 감싸고 있었다. 금·토·일요일을 제외한 주중에는 포장 손님만 받기 때문에 드문 인적은 고요한 느낌을 더했다.
화이트크로우는 단독 건물을 쓴다. 지붕은 커다란 삼각형, 스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 형태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2층 층고에 원목을 사용해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다소 춥게 느껴졌던 외부와 달리 아늑했고, 한편에 놓인 화목난로가 아늑한 느낌을 더했다. 그리고 건물 중간에는 이곳의 주인장이 어느 곳에서 왔는지 알려주듯 나무로 만든 순록, 캐나다 국기가 걸려있었다. 그리고 순록이 걸린 복도 너머에 있는 양조장 문을 열고 화이트크로우의 대표인 레스 팀머멘즈(43)가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왔다.
◇ 교사 꿈꾸던 캐나다인, 1년 머물려던 한국서 19년째…직업도 사업가로 전향
팀머멘즈는 캐나다인이다. 2006년에 캐나다에서 교육학 전공을 마치고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을 찾았다. 당초 계획은 한국에서 1년을 머무르고 돌아가 캐나다에서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한국에서 지낸 지 19년째다. 그동안 한국인 부인을 만나 결혼했고, 교사가 아닌 사업가로 변신했다. 현재 4명의 한국인 정규직 직원을 고용 중이다.
팀머멘즈는 “한국 방문의 목적은 영어교육이었다”며 “2006년에 처음 한국에 왔고, 서울에서 약 5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다”고 했다. 팀머멘즈는 서울의 공립고등학교는 물론 이화여대 어학원 등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 그러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 역시 영어 교사였고 당시 팀머멘즈는 서울의 한 중학교, 아내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두 사람은 2010년 결혼 후 서울을 떠나 강원도 평창으로 이사했다. 등산과 캠핑을 좋아한 영향이었다. 팀머멘즈는 “서울은 정말 신나고 흥미로운 도시지만, 나와 아내는 자연을 좋아하기에 텃밭과 나무가 있는 정원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어느 날 아내와 평창에 와서 집을 몇 군데 둘러봤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발견했다”고 했다. 때는 2012년. 그렇게 두 사람은 서울을 떠나 평창에 왔다.
◇ 수제 맥주 사업하려 캐나다로 유학, 평창 땅 사고 ‘우물’ 파며 시작
수제 맥주 사업을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평창으로 이사 온 뒤 홈브루잉(집에서 맥주는 만드는 것)으로 20리터만큼의 맥주를 소량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팀머멘즈는 “2012년 무렵에 취미로 홈브루잉을 시작했는데,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고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마실 수 있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며 “더 많은 사람들과 맥주를 나누고, 맥주를 통해 사람들이 평창에 오도록 해서 평창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평창은 아름답고 스키장·골프장도 있지만, 서양식 식사를 하면서 맛있는 맥주도 마실 수 있는 좋은 장소가 없는 것 같아 그런 곳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화이트크로우의 시작이었다.
팀머멘즈 부부는 적극적으로 사업을 준비했다. 팀머멘즈는 2015년 영어 교사 일을 그만두고 캐나다에 맥주를 공부하러 갔다. 팀머멘즈는 2년 동안 캐나다 올즈 칼리지에서 브루마스터 과정을 공부했다. 팀머멘즈는 “이미 성인이 된 상태였고, 꿈과 비전이 있었기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며 “수석으로 졸업했고, 비어캐나다 어워드에서 캐나다상을 받았다”고 웃어 보였다.
팀머멘즈는 2018년 한국으로 돌아와 화이트크로우를 세울 땅을 사고, 우물을 팠다. 수제 맥주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었기 때문이다. 팀머멘즈는 “건물을 짓기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우물을 만드는 것이었다”며 “여기에는 수돗물이 없다”고 했다.
화이트크로우는 지하 220m 천연암반수로 수제 맥주를 만든다. 팀머멘즈는 “화이트크로우가 만드는 모든 맥주는 산에서 나오는 물로 만들어진다”며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매우 특별한 재료이자, 깨끗한 맛을 내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어 “화이트크로우 맥주가 깨끗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물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 “평창을 느끼게 하고 파, 더 머물 수 있는 공간 마련이 꿈”
팀머멘즈는 2019년 1월, 화이트크로우 설립을 전후로 수많은 방송에 출연했다. 원주 MBC의 ‘나는 산다’(2018년)를 시작으로 KBS ‘인간극장’(2019년), KBS ‘같이 삽시다’(2021년), 허영만의 ‘내일 출근 안 해’(2021년), KBS ‘이웃집 찰스’(2022년), KBS 동물극장(2022년)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그것도 강원도 평창에서 수제 맥주를 만드는 과정은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고, 팀머멘즈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화이트크로우를 찾는다. 팀머멘즈는 “평창이나 강릉으로 여행을 온 서울과 경기도 사람들이 화이트크로우를 휴게소처럼 찾는다”며 “4시간씩 운전해서 오는 손님들을 볼 때마다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방송에 출연한 것은 내 인생에 있어 매우 영광스럽고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팀머멘즈는 “만약 오늘 하얀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것을 본다면 절대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라며 “이곳에 오는 손님에게 아주 특별한 경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이어 “화이트크로우만의 깔끔한 맛의 맥주, 맛있는 음식,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환대를 제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화이트크로우에가면 수제 맥주 외에도 이탈리아 돌판 오븐에 구운 피자, 캐나다 대표 음식인 푸틴을 맛볼 수 있다. 팀머멘즈는 “손님들이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며 “맛있는 맥주와 피자를 먹으며 자연 속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캠핑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평창 인근 캠핑장이나 글램핑장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화이트크로우가 평창에 있다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더 많은 사람이 화이트크로우의 수제 맥주를 접할 수 있는 접점을 늘릴 수 있게 하겠다는 복안이다.
팀머멘즈는 향후 목표는 평창을 관광 명소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평창에서 많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고, 머물고 싶은 장소를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팀머멘즈는 “평창의 자연을 제대로 경험하고 즐기기에는 맥주 한 잔, 피자를 먹고 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평창에서 더 머물며 하이킹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더 오래 머물도록 해 지역 경제에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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