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대한 무례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사과를 했는데 마치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하듯이 ‘뭘 잘못했는데’ 이런 태도, 저는 그 태도는 시정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 19일 국회 운영위원회 발언)
지금껏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진 기자가 무례했다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공개석상에서 주장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지난 3월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기자 회칼 테러’ 발언에 이어 대통령실 핵심 참모들이 언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언론계에 주는 충격이 적지 않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이 21일 “정무수석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발언을 한 점에 대해 부산일보 기자분과 언론 관계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진화에 나섰으나 여전히 언론계를 중심으로 비판이 이어지는 이유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1일 성명에서 홍철호 수석의 발언을 가리켜 “헌법을 부정하고 주권자의 권한을 위임받은 공복인 대통령을 만인지상인 왕으로 모시라는 시대착오적 발언”이라고 비판하며 “윤석열 정권은 헌법적 가치를 위반하며 민주 정부가 아니라 독재 정부를 자처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오만을 언론의 무례로 둔갑시킨 이 정권의 반헌법적 언론관은 이미 증명될 만큼 증명됐고, 확인될 만큼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언론노조는 “(윤석열정부는) 공식 석상에서 의견을 표명하겠다는 국민과 국회의원의 입을 틀어막고 ‘진압’했으며, 대통령 풍자 동영상 제작자를 색출하겠다며 경찰을 동원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언론에는 ‘회칼 테러’ 운운하며 겁박했고, ‘류희림의 방심위’를 내세운 보도 검열과 검찰을 동원한 압수수색으로 압박했다”고 비판했다. 또 “(윤석열정부는) 국민의 자산인 KBS를 박민과 박장범이라는 대통령의 꼭두각시들을 내리꽂아 ‘땡윤방송’으로 만들었고 YTN을 불량 자본에 팔아넘겨 언론장악을 외주화했다”고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윤석열 왕정이라도 만들 태세로 질문을 봉쇄하겠다는 이 정권의 한심한 작태를 비판할 문장이 이제 모자랄 정도”라며 “시대착오와 퇴행을 거듭하는 권력에 대한 주권자의 인내심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례한 건 언론과 국민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이라며 “헌정 질서를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으면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사죄하고 스스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제1야당은 홍 수석의 문책을 요구했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정당한 비판과 당연한 질문을 무례로 치부하고 겁박하는 대통령실의 언론관은 군사독재 시절 ‘보도지침’을 연상케 한다”고 비판한 뒤 “해당 발언 이후 대통령실 지역기자단이 대통령실의 사과와 해명을 촉구하고 심지어 보수 성향 언론에서도 일제히 비판이 쏟아졌다”며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언론을 겁박하고 대통령 심기 경호에만 몰두하는 홍철호 정무수석을 문책하라”고 대통령실에 요구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나아가 “지금 대통령이야말로 국민께 무례를 범하고 있다. 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대통령의 형식적인 사과를 지적하는 그 질문에 대통령은 결국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지금 필요한 건 어설픈 사과가 아니라 명확한 사실확인이다. 그날 대통령은 무엇에 대해 사과했던 것인지 지금이라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느꼈던 국민들의 답답함이 다른 이슈에 의해 묻힐 뻔했으나 홍 수석이 다시금 상기시켜 준 셈이다. 당시 부산일보 박석호 기자 질문은 아래와 같다.
“흔히들 사과를 할 때 꼭 갖춰야 될 요건이 몇 가지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어떤 부분에 대해서 사과할지 명확하게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대통령께서는 대국민담화에서 제 주변의 일로 걱정과 염려를 끼쳐드렸다, 어떻게 보면 다소 두루뭉술하고 포괄적으로 사과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명태균 씨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이런 일이 생긴 이유가 휴대폰을 바꾸지 못해서라든지 아니면 사람 관계에 대해서 모질지 못해서 생긴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마치 사과를 하지 않아도 될 만 한 일인데 바깥에서 시끄러우니까 사과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오해를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TV를 통해 회견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과연 대통령께서 무엇에 대해 우리에게 사과를 한 것인지 어리둥절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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