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나무그림자가 벽면에 드리워져 있다. 거기서 면벽수행자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나무에게 벽면은 더 이상 가로막이 아니다. 멈춤을 통해 자신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주의 중심이 된다. 이제 벽은 하늘이 되고 구름이 된다. 나무는 비로소 대자유를 얻게 된다. 박진흥 작가의 화폭이 주는 아우라다. 30일까지 갤러리 반디트라소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광기光記: 드리워지다 Archive of the Light : Cast’는 ‘쉼(멈춤)’과 ‘명상’을 주제로 한 박진흥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자아를 대변하는 인체 심볼 이미지와 오브제들, 그리고 그림자들을 확장시킨 회화와 설치작품 30여점을 볼 수 있다.
“어린시절 인도에서 보낸 경험들이 특별했다. 시간을 거슬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의 삶에 맞닥뜨리면서 시간이 정제된 순수공간을 마주한 것 같았다. 향토적인 순수풍경이랄까”(박 작가의 말)
강원도 양구 박수근마을에 정착하여 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유년시절을 인도의 우드스톡 국제학교에서 보냈다. 델리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이후 호주로 이주하여 웨스턴 시드니 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화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인간소외에 대한 자발적 물음과 해답을 ‘명상’과 ‘쉼’에서 찾고 이를 투영한 작품을 구현하고 있다.
“누구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지난 날, 나 역시도 때가 되면 따뜻한 빛을 받아 화려한 인생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살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살아왔다. 시간이 흐른 지금의 나는, 빛이 비춰지는 반대쪽의 음지에 더 어울리는 생명체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버섯이나 이끼처럼 말이다. 어쩌면 나에게는 그 편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자로서의 삶이 진정한 나의 삶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밝은 빛에 의해 육안으로 보여지는 화려한 색색의 형체보다는 공간에 드리워진 단순한 색채와 형체의 그림자가 좋다.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색상으로 꽃을 피운 나무보다는 바닥에 혹은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모습에 더 정감이 간다. 좋은 옷과 보석으로 치장을 한 사람을 마주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서있는 공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더 편하다. 아무리 높고 곧게 뻗어 있는 나무라도 그 웅장함을 우러러보기 다는 겸손하게 빛의 반대 방향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는 형상에 시선이 간다. 마치 그림자는 그 사물의 본질이 외치는 ‘쉼’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작품에서 박수근 화백의 작품 ‘나목’이 얼씬거린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아우라가 회폭을 채워나가고 있다. 생명의 율동이 느껴진다.
이에대해 김진엽 미술평론가는 “그림자는 화면의 이곳저곳에서 숨 쉬고 있는데, 그림자는 하나의 이미지로 정의되지 않는 포괄적인 것을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 그림자는 현실의 고통을 망각하려는 개인적인 몸부림과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고자 하는 소망을 동시에 표현한다. 그래서 그림자는 의식적인 현실의 모든 것들과 조화할 수 있는 상징적 존재로서 ‘추억의 공간’의 원형이 된다. 그림자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며, 현실의 아픔과 고통을 감내해 주기도 하고 더 나아가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주는 매개체이다. 따라서 그림자를 통해 우리는 허무와 고독은 벗어나야 되는 굴레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조건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또 그림자는 우리가 우리를 구속하는 한계를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실마리로 작용한다”고 평했다.
박진흥 작가는 몇 년 전까지만해도 자아를 대변하는 인간 심볼 이미지와 오브제들, 그리고 그들의 그림자를 그렸다, 요즘엔 인간 심볼 이미지를 조형물로 입체화 시켜 다양한 오브제들과 함께 설치 작품에 등장시키고 있다.
“근간엔 나무가 가진 의연함과 초연함에 매료되어 나무 그림자를 즐겨 그리고 있다. 그리고 나무 그림자들을 빈 하늘과 빈 땅, 빈 벽으로 확장하여 그리면서 비움과 채움이 가져오는 쉼과 명상에 대하여 여전히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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