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명예훼손(뉴스타파 vs 윤석열)’ 재판에서 총 9번의 기일을 진행했음에도 뉴스타파 보도 중 허위 부분을 명확하게 특정하지 못하자 재판부가 “공소기각 판결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공소기각은 공소의 형식적·절차상 문제를 이유로 공소가 적법하지 않다고 인정해 사건 실체, 즉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허경무)가 지난 19일 진행한 6차 공판에선 오후 내내 검찰 측에서 허위보도라고 문제 삼은 지난 2022년 3월6일자 뉴스타파 보도와 관련 김만배·신학림 대화 녹취에 대한 서증조사를 진행했다.
해당 뉴스타파에 취재 자료 중 하나인 2021년 9월15일자 김만배·신학림 대화 녹음 파일, 공개되지 않은 2021년 9월17일자 김만배·신학림 대화 녹음 파일을 법정에서 들으며 어떠한 부분이 허위인지 특정해보도록 했다. 해당 뉴스타파 보도는 ‘2011년 대검 중수부의 부산저축은행 대출 브로커 조우형에 대한 수사 무마 의혹’을 제기했는데 이 사안을 보도한 또 다른 매체인 경향신문과 뉴스버스 기사에 대해서도 서증조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이번 재판 피고인인 김만배와 신학림의 허위 언론작업을 알아보기 위해서 경향신문과 뉴스버스 기사도 살펴봤다.
이날 서증조사는 검찰 공소장이 부실해서 진행한 절차다. 지난달 31일 시작한 공판준비기일에서 허경무 판사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재판인데 마치 공직선거법 사건인 것 같다며 이재명 대선 후보에 대한 이야기 등 불필요한 내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재판부의 수차례 지적에 검찰은 70여쪽에 달하는 공소장을 50여쪽으로 줄였지만 여전히 범죄사실, 특히 뉴스타파 보도 중 어떤 부분이 허위인지 특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해왔다. 검찰은 김만배·신학림 대화 녹취와 남욱의 검찰조서 등을 편집해 만든 해당 뉴스타파 보도가 전체적으로 김만배가 만든 ‘허위프레임’의 결과라는 입장이다.
검찰 측 증인인 남욱·조우형 등 두명을 신문했고, 남욱에게는 재판부가 뉴스타파 해당 기사를 직접 법정에서 읽게 해 허위부분을 특정해달라고 했지만 역시 명확하게 어떠한 부분이 허위인지 특정하지 못했다. 이에 지난 19일 6차 공판에선 증인신문을 미루고 검찰 측에 허위 부분을 특정하기 위한 서증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공판준비기일 3회, 정식 공판 6회 등 9번의 기일을 거쳤음에도 결국 뉴스타파 보도에서 어떠한 부분이 허위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날 검찰은 3시간30분에 걸쳐 어떤 부분이 허위인지 설명했다. 김만배·신학림의 9월15일자와 9월17일자 녹음 파일은 일부를 듣고 해당 부분에 대해 검사가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당초 피고인들은 녹음 파일 전체를 들어보면 김만배와 신학림의 사적인 대화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 설명 이후 피고인 신학림 측 신의철 변호사는 “오늘 허위사실 특정이 잘 됐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뉴스타파 등의) 보도에서 제기한 의혹은 (조우형을) ‘왜 불입건했나’로 줄일 수 있을 텐데 (언론보도에선) ‘왜 불입건했냐’, ‘왜 수사 대상이 아니냐’고 하는데 검찰에서는 ‘무혐의가 아니라 입건된 적이 없다’, ‘수사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파 등 언론보도는 ‘왜 조우형이 불입건됐는지, 왜 봐줬는지’를 묻고 있는데 검찰은 ‘당시 조우형은 수사대상이 아니었다’며 언론보도가 허위라고 주장하는 양상이다.
신 변호사는 “사람들이 생각할 때 (윤석열 검사와 연이 있고 조우형이 선임한) 박영수 변호사를 통해 수사 대상에서 (조우형이) 빠졌을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검찰이 뉴스타파 보도의) 허위사실을 특정하기 위해서는 왜 (조우형이) 불입건됐는지 타당한 이유, 즉 충실한 수사로 불입건됐다는 걸 (검찰이) 제출해야 한다”며 “결국 왜 수사하지 않았는지 해결되지 않는다면 허위사실 특정에 대한 진도가 나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학림 측에선 2021년 9월~10월 김만배와 신학림 대화 녹음파일 4개와 통화 녹음파일 11개를 모두 들어보는 방법을 제안했다. 신 변호사는 “녹음파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없이 듣는 것이 이 사안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적대화라는 부분을 입증할 수 있는 부분은 (이날) 검사들이 제시하지 않은 부분(대화)에 담겨 있고 (사적대화 여부) 그 자체가 쟁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모두 듣는데 4시간가량 걸린다고 한다.
이후 허경무 판사(재판장)는 작심한 듯 다시 이날 서증조사와 검찰 공소장을 지적했다. 허 판사는 “재판부 입장에서 보면 어떤 게 허위사실일까 혼란이 있어 어떤 허위표현이 들어갔는지 확인해보겠다는 것이었다”며 “검사들이 배임수증죄(김만배·신학림의 또 다른 혐의) 관련 부분으로 확대된 설명도 하고 허위사실을 특정하기보다 ‘이렇게 해서 음모를 꾸몄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며 가이드라인(판사가 요청한 서증조사 범위)을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허 판사는 “왜 증인신문을 두명이나 하고 있는데도 (허위사실이 특정이 안돼) 문제가 되고 있는가”라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부터 (공소장에서) 필요 없는 부분 빼라고 검찰에 요구해서 어느 정도 빼 20페이지가 없어졌지만 공소장을 처음 검토하던 상황에서 한걸음이라도 나아갔나 생각해보면 부정적이다”라고 말했다.
허 판사는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다음 기일을 잡겠다고 했다. 피고인 측과 조율 이후 그는 “일단 (다음 공판을) 12월10일로 하는데 재판부가 기일 텀을 두면서 검찰의 설명이 공소장에 어떻게 반영이 됐는가, 기사에 (허위가) 특정이 됐는가, 불특정으로 공소기각 판결을 해야하는가 검토를 하겠다”고 했다.
이어 “원래 검찰이 신청한 배성준(전 YTN 기자, 천하동인 7호 소유주)에 대한 증인신문이 있어야 하지만 피고인 측 의견을 받아들여 네시간이면 된다고 했으니 녹음파일을 다 들어보겠다”며 (다음 기일까지) 검토 결과에 따라 12월10일 증거조사가 아닌 다른 것이 진행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자 김재원 판사(우배석)도 관련 내용을 지적했다. 김 판사에 따르면 검찰이 제출한 의견서에서 ‘취재원이 기자에게 보도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행위만으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는 1993년 대법원 판결 내용이 나온다. 김 판사는 “(검찰이) 이 판결을 근거로 김만배가 신학림에게 허위사실을 얘기한 것 자체를 명예훼손으로 특정한 것으로 검찰 의견서를 이해했는데 그렇다면 검찰은 (범죄시점을 김만배·신학림 대화가 이뤄진) 2021년 9월15일로 특정하는 건지, 범죄 완료시점인 경향신문·뉴스버스·뉴스타파 보도로 완성이 됐다는 건지(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검찰 측에 1993년 대법원 판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추가 의견을 요청했다.
김 판사는 “명예훼손 사건에서 첨예한 건 사실과 의견을 나눠 다투는 건데 (검찰은) 보도가 전체적으로 허위라고 하면 의견표명에 해당하는 부분까지도 전부 허위사실 적시가 돼버리는 건가”라며 “공소장이 70여장인데 해소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명예훼손 혐의는 ‘의견’이 아닌 ‘사실’ 영역에 대해 다투게 된다.
앞서 국회에서도 이 재판의 경우 공소기각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달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검사 출신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번 재판에서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해 불필요한 내용을 공소장에 적은 문제를 지적하며 공소기각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황정수 서울남부지법원장은 “(검찰의) 일종의 편법”이라며 “(공소기각) 취지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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